카트리나 폐허재건활동 리더십 인정받아
사제지망생 출신 변호사
베트남 난민출신인 안 ‘조지프’ 카오(41) 변호사가 베트남계로는 최초로 지난 6일 미국 루이지애나 주에서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 극적 승리를 거둬 베트남계는 물론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새로운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새 영웅으로 등장해 화제가 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가 흑인으로는 최초로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데다 이에 맞설 차기 대권후보로 인도계인 보비 진달 루이지애나 주지사가 거론되는 시점에 카오의 승리는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오바마의 대선 구호만큼이나 다양한 이민자들로 구성된 미국에서 호소력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카오가 민주당의 텃밭이나 다름없는 흑인 밀집지역인 루이지애나 뉴올리언스에서 9선 관록의 윌리엄 제퍼슨(61) 하원의원을 꺾으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제퍼슨 의원이 각종 뇌물수수 스캔들에 시달리고 있긴 하지만 흑인 지지층이 워낙 두터워 그를 꺾을 것으로 예상하지 않았다. 카오는 49.6%의 득표율로 46.8%의 제퍼슨을 간신히 따돌렸다.
게다가 카오의 인생 역정도 베트남 난민에다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생존자로서 이번 승리에 못지않은 고난을 이겨낸 새로운 영웅 탄생의 드라마나 다름없기 때문에 더욱 그에 대한 관심을 키우고 있다.
카오는 8살 때인 1975년 사이공(호치민)이 함락된 뒤 헬리콥터를 타고 다른 형제 2명과 함께 극적으로 탈출해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초등학교 시절 학교 바로 옆에서 폭탄이 터진 일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베트남군 장교였던 아버지는 그가 탈출할 당시 체포됐다.
미국으로 건너온 뒤에도 한동안 제대로 정착도 하지 못하고 여러 주(州)를 전전했으며 1991년전까지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지도 못한 채 친척집에서 생활하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처음에 그는 예수회 계열인 가톨릭신학교에 들어가 사제의 길을 걸으려고 했다. 세계의 가난한 빈민지역에서 몇 차례 선교활동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 진로를 바꿔 변호사가 됐다. 변호사로 개업한 뒤 고문 피해자를 돕는 프로그램을 시작했고 가난한 소수계 주민들을 위한 사회 문화적 개발프로그램을 지원했다.
정치지도자의 길은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집과 변호사 사무실이 모두 파괴되고 나서도 다시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하고 베트남 지역사회를 복원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참여, 보험회사들 그리고 정치인들과 투쟁하면서 리더십을 인정받아 걷게 됐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그야말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무명 정치인이었다.
그에게 선거자금을 지원한 공화당 유력인사는 아무도 없었다.
카오는 선거직후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아주 무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였다.
존 베이너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는 카오를 한 번 만나본 적도 없으며 다른 하원의원들도 단돈 한 푼 그에게 건네본 적이 없다.
하지만, 공화당 지도부는 이제 이구동성으로 카오를 새로운 희망이자 미래의 상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카오는 오바마와 진달에 이어 `칼러 블라인드’(인종을 차별하지 않는)라는 새 시대의 변화를 주도해야 나갈 차세대 지도자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카오는 히에우 `케이트’ 호앙과 결혼해 두 딸을 두고 있다.
(워싱턴=연합뉴스)
김재홍 특파원
jae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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