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을 코앞에 두고 성공한 리커 스토어 사장에서 비행조종학교 강사로 180도 인생 전환한 이형(69·사진)씨. 늦은(?) 나이에 과감한 도전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간암 선고를 받은 뒤 인생을 포기하고 벼랑 끝까지 내몰렸던 힘든 시기가 계기가 됐다.
1970년대 초 미국에 건너 온 이씨는 이민 직후 곧바로 맨하탄 할렘에 리커스토어를 열어 터전을 잡아 말 그대로 승승장구한 이민생활을 보냈다. 그의 업소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한 흑인의 어린 아들을 돌보며 대학 학비를 지원해 성공한 의사로 키워낸 일은 지역주민들의 입에 두고두고 오르내리는 미담이기도 하다. 80년대 말 맨하탄이 정전으로 암흑에 휩싸였을 때 절도꾼들로부터 가게를 지키느라 발전기를 켜놓고 악착스레 장사하던 모습은 뉴욕타임스 1면에 크게 소개돼 주목받기도 했다.
한인리커스토어협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자신의 경험과 성공을 바탕으로 이민 새내기들에게 사업성공 요령도 아낌없이 나눠줬다. 그에게 성공 노하우를 배워간 수많은 한인들 가운데 일부는 이씨의 가게 바로 인근에 같은 업종의 업소를 개업하면서 한때는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그를 괴롭힌 것은 성공가도를 달리던 시기에 찾아온 뜻하지 않은 간암 선고였다.
당시에는 치료약도 변변치 않았던 터라 아직 시판되지도 않은 임상 실험용 치료약을 받아들고 그는 무작정 짐 가방부터 꾸렸다. 식구들에게 환자 취급받으며 천덕꾸러기가 되기 싫다는 그의 자존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암 선고를 받고 난 후 오랫동안 꿈꿨던 일을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당시 향한 곳은 비행조종학교. 한국에서 육군 항공대 소령으로 예편한 그는 60년대 중반부터 비행기를 조종해 온 경험자였지만 이민 후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던 터였다. 다시 비행기 조종간을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죽기 전에 꼭 다시 하늘을 날고 싶다는 꿈 하나만으
로 투병생활을 버텨냈다.
비행기에 몸을 싣고 하늘을 나는 동안 그는 그간 집착하며 쌓아두려 했던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먼저 마음을 비우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그렇게 두 달을 보내고 검진을 받은 결과 5개의 암 덩어리는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는 자신에게도 기적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아직도 믿기 힘들다고 말한다. 현재까지 그가 비행한 기록은 5,000시간을 넘는다. 웬만한 항공사 기장의 최소 비행시간이 1,000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그의 오랜 비행경험은 해당분야에서는 모두가 넘버원을 외치는 기록이다.
연령 제한에 걸려 항공기 기장으로 취업할 수 없었기에 그가 택한 길은 비행조종사를 양성하는 일이었다. 본격적인 비행 강사로 뛰어든 지난 5년간 그는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고 최근 2년간 그를 거쳐 간 55명의 제자 가운데 한인 1명을 포함한 5명은 항공사 기장으로 취업했다. 그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에게는 무료 강습도 마다치 않는다.큰 아들에게 가게를 넘겨주고 무소유의 삶을 살며 제2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있는 이씨는 “살다보면 억울하고 밑지는 일이 많아도 큰 욕심을 버려야 요즘처럼 어려운 시기를 극복할 수 있다”며 위기가 기회임을 증명한 산 증인다운 삶에 대한 열정을 내비쳤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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