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와 킹의 축제
클리브랜드 그로버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20명의 대통령이 바뀌는 것을 보며 살아온 미국의 최장수 할머니에게 기자들이 “어느 대통령이 가장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다. 대답을 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오바마를 꼽았을 듯싶다. 같은 흑인이기 때문이다.
올해 114세인 저트루드 베인스 할머니(LA 거주)는 한 살 위인 포르투갈의 마리아 드 헤수스 노파가 지난 2일 별세한 후 미국은 물론 지구촌 전체의 최고 연장자로 등극했다. 흑인으로는 미국최초의 기록이다. 미국사상 첫 흑인대통령인 오바마의 취임과 위대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기념일을 코앞에 두고 흑인사회에 경사가 겹쳤다.
노예의 딸로 태어난 베인스 할머니가 오바마의 취임식을 보며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감격할 만하다. 미국의 수도, 그것도 그 한 복판인 의사당과 링컨기념관 광장이 두 거물 흑인을 기리며 이틀간 들썩이는 걸 보면 누구라도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식을 구경하기 위해 전국 및 전 세계에서 최고 400만 명이 워싱턴DC에 몰려올 것으로 예상된다. 의사당 밖 취임식장의 앞자리 티켓을 구입한 사람만 24만명이다. 킹 목사가 1963년 의사당 맞은편의 링컨기념관 앞에서 주도한 집회에 25만명이 참가했었다. 비슷한 규모의 인파가 반세기만에 시위자에서 축하객으로 바뀐 셈이다.
취임식 경비에 경찰관 8,000명이 동원된다. 시애틀경찰관 42명과 킹 카운티 셰리프 요원 8명도 포함돼 있다. 군인도 1만1,500명이나 투입된다. 당일 취임식장 주변에 설치되는 간이화장실이 5,000개, 음식이나 기념품을 팔도록 허가받은 업소가 1,000개이다.
규모가 아니라도 오바마의 취임식은 한마디로 ‘꿈’이다. 솔 음악의 대모인 아레사 프랭클린이 축가를 부르고, 이츠학 펄먼(바이올린)과 요요마(첼로)가 낀 4중주단이 축하 연주를 펼친다. 시인 엘리자베스 알렉산더가 축시를 낭송하고, 세계최대로 꼽히는 남가주 새들백교회의 릭 워렌 담임목사와 조셉 로워리 목사(인권운동가)가 축복기도를 맡는다.
킹 목사는 46년전 링컨기념관 광장 시위에서 “나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는 불후의 명연설을 남겼다.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불식되는 날을 보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 연설이후 채 반세기가 지나기 전에 오바마는 ‘꿈이 실현됐음(Dream Come True)’을 증명한다. 킹 목사가 ‘꿈 목록’에 감히 포함하지 못한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세상은 참으로 빨리 변한다.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이후 흑인들의 인권이 실제로 향상되기까지 한 세기가 걸렸지만 킹 목사의 링컨기념관 인권시위 이후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기까지는 반세기도 안 걸렸다. 링컨이 사용한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할 오바마의 선거공약이 바로 ‘변화’였다. 앞으로 미국사회가 더 빨리 변화할 것임을 시사한다.
한인사회도 변화의 물결에 합류해야 한다. 이민역사가 한 세기를 넘겼지만 사고방식은 아직도 20세기다. 내년 오리건 주지사 출마를 일찌감치 선언한 임용근 전 주하원의원은 “오바마의 대통령 당선은 흑인들 덕분이 아니며 미국사회가 흑인대통령을 수용할 만큼 변화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안도 변화를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을 사흘 앞둔 오늘 시애틀 한인사회는 제2회 ‘워싱턴주 한인의 날’ 행사를 벌인다. 바람직한 변화이긴 하지만 그 행사를 통해 더 큰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한인의 날이 1세들 위주의 자위행위가 돼서는 곤란하다. 2세들을 더 많이 참여시켜 한인사회의 실상을 바로 알려줘야 한다. 그들 가운데서 미래의 킹과 오바마를 길러내야 한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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