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몸이 아파서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진찰을 하고 난 후에 하는 말이 중병에 걸려서 얼마 살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니 가서 먹고 싶은 것 먹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라고 한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병원을 찾아가서 다시 진찰을 받았다. 의사의 진찰이 오진이기를 바라고 이번 병원에서는 심각한 병이 아니라는 진단이 내려지기를 기대하면서.... 그러나 결과는 똑 같았다. 얼마 살지 못한다고 한다. 환자와 가족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의사가 이렇게 말한다.
“현대 의학으로서는 어찌 해 볼 수 없지만, 그래서 저는 가망이 없다고 했지만, 그러나 신은 아직 가망이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신께 맡기고 마음을 평안히 가지십시오. 현대 의학은 고칠 수 없지만, 신은 얼마든지 고칠 수 있다는 것을 저는 종종 보았습니다.
또 그 신께 모든 것을 맡기고 최선을 다하면, 신은 죽음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평안함을 주시는 것 또한 보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남은 건 신에게 맡기고 기다리는 겁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고, 마음을 잘 다스리십시오.
이것이 오늘 내게 주어진 현실이고, 내 삶에 내려진 진단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똑 같은 의사지만 같은 상황을 놓고 그 상황을 대하는 서로 다른 모습들, 이왕이면 누구의 말에 희망을 걸고 싶은가? 누구의 말을 붙잡고 살고 싶어지는가?
현대의학의 진단은 부정적이지만, 그리고 의사로서 그 사실을 정확히 말해주는 것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절망적이라도 용기와 소망을 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들은 소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하면서 있는 그대로 말을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대단히 똑똑하고 지혜로운 듯이 보인다. 그러나 똑 같은 상황 일지라도 듣는 이의 마음에 희망의 불꽃을 밝혀주는 이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절망을 준 사람들과 희망을 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그리고 우리 역시 다른 이들에게 이 둘 중의 한 사람으로 기억에 남게 된다. 여러분들은 어떤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더 많으며, 또 어떤 사람으로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고 생각 하는가?
물론 소망을 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더 많이 갖고, 또 그런 사람으로 다른 이들의 기억에 남기를 원한다.
그런데 사실 그렇게 산다는 것이 어디 생각처럼 쉬운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좋은 기억들 속에서 살고 싶은데, 오히려 좋지 못한 기억들이 자꾸만 고개를 치켜든다는 것이다.
희망의 말을 끌어안고 살고 싶은 데, 오히려 절망의 말들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는 거다. 그래서 이것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이것 때문에 힘들어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런 것이 우리의 삶에 걸림 돌 이었지만, 이제 부터는 우리의 인생을 얼마든지 역전시킬 수 있다.
우리의 삶에 희망을 회복시킬 수 있다. 그 방법을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있다.
여러분의 짐을 여호와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그분이 여러분을 돌보실 것입니다. 그분은 절대로 의로운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쉬운성경 시편 55편 22절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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