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소중한 책
미셸 오바마는 대통령 취임식 날 미국 역사에 없었던 뜻밖의 광경을 연출했다. 취임식 직전, 부시 내외를 접견하기 위해 백악관에 도착한 후 리무진에서 나와 계단을 오르다가 마중 나온 로라 부시에게 무엇인가 건네주었다.
백악관 이후의 생활을 회고록으로 남겨달라는 의미로 로라에게 만년필과 공책을 선물한 것이다. 공책에 자신의 느낌과 주변의 돌아가는 상황을 기록함으로 후대에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앤 프랭크는 13세 살 때 선물로 받은 일기장에 1942년 6월12일부터 1944년 8월1일까지 독일의 점령아래서 겪은 고난을 낱낱이 적었다. 그 당시 그녀는 암스테르담의 아파트에 숨어서 상세히 적어 내려간 나치의 잔인한 학살 이야기가 죽어간 수 백만 명의 목소리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하였다. 다만, “글을 쓰고 있는 동안은 모든 근심을 잊을 수 있다”는 것에만 집착했다.
버지니아 울프는 15살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하여 가족들로부터 ‘비공인 가족역사 기록자’라는 별명이 붙여졌다. 자신의 성장과 변화과정, 남편 레오나드와 결혼 이후로 겪은 고통, 우울증 증세 등을 상세히 기록한 그녀의 일기는 우울증 환자 치료에 도움되는 자료로 심리학자들 사이에 평가되고 있다.
이와 비슷하게, 1660년대에 영국의회 의원을 지낸 사뮤엘 펩피스가 기록한 일기는 현대 역사학자들이 그 당시 유럽을 휩쓴 대역병(大疫病), 런던 대 화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사용하고 있다.
조지 워싱턴, 토마스 제퍼슨 같이 일기를 쓴 대통령도 적지 않다. 역시,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일기는 생각을 맑고 뚜렷하게 만들어 결단을 내리는데 도움된다”고 고백했던 해리 트루만이다. 대통령의 하루 생활을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기록한 그의 일기는 사람들에게 “대통령도 사람이구나”라는 공감대를 형성케 했다.
설사 위의 사람들처럼 후대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적어나가는 것은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된다.
일단, 시간을 정해놓고 무엇인가 기록한다는 것은 관찰력, 상상력, 집중력, 표현력을 한꺼번에 훈련시키는 기회가 된다. 또한, 주변환경과 사람을 향한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기에 인간관계 기술 습득은 물론, 심리적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
뉴욕 주립대의 연구에 따르면 하루에 20분씩 일기를 쓴 유방암, 류머티스 성 관절염, 섬유 조직염 환자들은 일기를 안 쓴 환자들 보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훨씬 빠른 치료효과를 나타낸다.
자신을 개발하고 발견케 하는 도구인 일기, 요즘 청소년들도 쓰고는 있다. 블로그, 마이스페이스, 페이스북, 사이월드 등을 통해 생각을 털어놓기는 하지만, 여전히 그것들은 남에게 보이려는 오락성 도구이기에 자신 속을 냉정히 들여보고 솔직히 드러내는 장소는 아니다.
또한, 그들은 컴퓨터 자판기와 셀폰 문자판 위에서는 손가락이 안보일 정도로 빠르지만, 정작 필기체 글씨를 써본 경험이 없어 SAT시험장에서 감독관이 칠판에 진술과 서명의 예를 써 보여야 하는 해프닝도 일으키게 한다.
가장 소중한 책은 남들이 저술한 책이 아니다. 남이 써놓은 글을 읽는 것은 그 사람의 의견에 끌려가며 소극적, 수동적으로 남아 있게 만드는 반면, 일기는 적극적, 능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담게 한다. 깜짝 선물로 주는 빈 공간만으로 가득 찬 책이야 말로 받는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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