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에 오른 인간
경제침체로 인문학이 도마에 올랐다. 대학이 더 이상 “인간은 무엇이며 삶의 의미는 어디 있을까”같은 근본적인 것을 토론하거나 가르치지 않는다며 예일대의 안소니 크론맨 교수는 “인문학은 죽었다”고 지난주에 선포했다. 이에 발맞추어 미국 대학협회는 “기술자, 과학자, 연구원, 경영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 미국의 경쟁력을 키우는 일이다. 대학은 과거의 인문학을 중심으로 한 상아탑 이상향을 포기해야 한다”고 부추겼다.
실례로, 지난 3개월간 30여개 주요 대학에서 인문계열 학과의 신임 교수임용을 취소했고, 영어, 문학, 외국어 교수의 공채광고는 작년에 비해 무려 21%나 감소했다. 이공계와 인문계 교수 사이의 봉급차이도 더 넓게 벌어져 인문계 PhD는 ‘Poor Hungry Doctor’라고 불릴 정도다. 이 와중에 수많은 대학에서 인문학 강의가 줄줄이 폐강되어 졸업을 앞둔 학생들이 필수학점을 따지 못해 혼동과 진통을 치르고 있는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미국에서 인문학의 위기는, 이성과 실험을 기초로 하는 자연과학의 주도권을 추구하는 19세기 독일의 연구대학을 모방하려는 교육목표에서 시작되었고, ‘주체의 좌절’ 바람을 불러일으킨 칼 맑스의 사상과 포스트 모던이즘이 1960년대 대학 캠퍼스를 휩쓸며 본격화 되었다. “별로 쓸모는 없지만 어쨌든 존재하는” 맹장 같은 기능을 가진 인문학은 최근들어 또다른 궁지에 몰렸다. 만일, 인문학이 인간 자체를 이해하려는 학문이라면 인간의 DNA 분자구조를 연구하고, 뇌신경학, 인공지능, 경영학의 인사관리론을 탐구하는 것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파헤치는 현대적 방법이므로, 전통적 인문학은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이다.
여기서 두가지 간과한 것이 있다. 첫째, 경제학자 갤브레이스가 “경제는 도덕의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라고 언급한 것처럼, 응용 또는 실용학문을 움직이게 하는 생명력은 인문학이라는 것을 놓쳤다. 이것은 마치,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다”라는 구절을 “남편이 머리라면 아내는 목이다”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한 예로, 줄기세포 연구 같은 새로운 테크놀러지가 가져온 윤리적인 문제점에 대한 해답은 인문학의 손에 달려있다.
둘째, 응용 또는 실용학문은 시시각각 변하지만 인간의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내다보지 못했다.
그동안 잘 나가던 실용학문의 대표인 미국의 MBA가 최근의 경제파탄으로 밑천이 드러나 인간의 가치, 문화, 예술 등 인문의 세계를 기웃거리며 살아남으려는 숨구멍을 찾고 있고, 한국에서도 삼국지, CEO 세종, 유비 리더십 등 인문의 나무들로부터 경영의 숲을 보려는 노력이, 결국, 본질적인 것은 무시할 수 없다는 증거다.
중국의 문예평론가 왕깐은 “인문정신은 사회의 오류, 잘못된 인식을 비판하는 역할이다”라고 역설했다. 대학의 인문학 축소는 최근 유수의 신문사들이 재정적자로 인해 워싱턴 특파원 수를 줄이는 것과 같다.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쳤던 워싱턴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같이 위험을 무릅쓰고 저항과 비판을 불사한 인문정신의 화신을 줄인다면 정치인들의 부정과 부패가 넘치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인문학을 도마에 올린 것은 인간자체를 도마에 올린 것이다. 인문학의 쇠퇴는 시장경제에 대한 굴복이다. 돈뭉치를 향해 치닫는 시장경제에는 관능적인 만족, 그리고 적자생존 담론만 존재할 뿐이다. 그 경제의 천박함을 고발하고, 초월케 하는 것은 인문학이다. 다른 실용학문처럼 뚜렷한 형체는 없지만, 그것을 바로 보고 주역(周易)은 “인문을 관찰하면 천하를 변화시킨다”라고 갈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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