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은중씨 2176마일 대장정 나서
▶ “자신과의 싸움서 이길것”
‘평범한’ 중년 윤은중씨가 5일을 시작으로 6개월에 걸쳐 애팔래치안 종주에 도전한다. 오른쪽은 지난해 종주에 성공한 이운선씨.
한국의 중년 남성이 애팔래치안 종주 출사표를 들고 애틀랜타에 나타났다.
3일 밤 0시30분 애틀랜타 공항에 모습을 나타낸 도전의 주인공은 54세의 윤은중씨. ‘꼬깔콘’ 박스 두 개에 담긴 짐이 나온 뒤 1시간 30분이 지난 뒤에야 걸어 나오는 그의 첫 인상은 작고 왜소한 체격에다 말씨마저 느릿느릿하다. 어디 한군데 야무지고 단단한 맛이 안 난다.
첫 인상에서 느낀 것처럼 그는 산악인이 아니다. 백두대간 종주는커녕 지리산 종주도 한 번 안 해본 초짜 중에 초짜다. 그런 그가 산 설고 물 설은 총거리 2176마일에 이르는 애팔래치안 종주라는 대장정길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산을 좋아했어요. 그런데 밤에 일하고 낮에는 잠을 자다 보니 도무지 시간이 안 나서 갈 수가 없었어요.”
윤씨는 잇따른 사기사건에 휘말려 집과 상가 건물 등 수억원의 재산을 날리고 빚만 남게 됐다고 말했다. 그 후 부부가 7년여 동안 밤낮없이 12시간 맞교대로 피시방에서 일을 해 빚을 거의 다 갚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도 담담히 풀어놓았다.
“이런 불경기에 남들은 먹고 사느라고 발버둥을 치는데 팔자 좋게 외국 산에나 놀러 다닌 사람이라고 비난해도 할말이 없어요. 하지만 나도 이 정도는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7년여 동안 먹고 자고 일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한 것이 없거든요.”
미국 산에 오르려면 영어라도 잘하겠지? 라는 기대도 금새 저버리고 만다. 말이라도 통하면 가다가 사람도 사귀고 도움도 받을 수 있을텐데 더구나 영어도 한마디 못한다.
그런데 왜 하필 애팔래치안인가 하는 물음이 생긴다. 해마다 5천 여명이 도전하지만 성공자는 200~300여명으로 5% 안팎에 불과할 정도로 지난한 과정이다. 지난해 자타가 인정한 애틀랜타 최고 산악인 이운선씨가 첫 도전에서 성공했던 바로 그 길이다.
“피시방을 팔아 넘기고 백두대간 종주를 한번 해볼까 관심을 가지다 신문에서 백두대간 훼손을 지적하는 기사를 봤어요. 그리고 미국의 애팔래치안 산맥은 자원봉사자들이 자발적으로 등산로를 정비하고 관리한다는 소식도 접하게 됐죠. 그게 제게는 굉장히 감명 깊게 다가왔어요”
그 뒤에 주한 미국 대사관 등 백방으로 수소문을 한 끝에 우연히 인터넷에서 작년 이운선씨가 종주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실마리를 찾아냈다고 한다.
산사랑 산악회 김홍명 회장과 통화에 성공하고 곧장 훈련에 들어갔다. 배낭에다 25kg 무게의 벽돌을 담아 동네 뒷산과 북한산 오르내리기 한 달간 훈련도 마쳤다고 했다.
“중간에 포기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어요. 보통 5개월 걸린다는데 저는 나이도 있고 하니 6개월 잡고 천천히 가려구요.”
도전을 불과 하루 앞두고 각오가 어떠냐는 질문에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갑자가 떠나온 집 생각에 마음이 울컥한다며 한국에 있는 아내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집사람이 처음에 반대를 많이 했어요. 말도 안 된다면서 계속 말렸죠. 그래도 결국 보내 주더라고요. 물론 중간에 혹시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바로 돌아와야 한다는 당부는 마지막까지 하더라고요”
종주 완주를 위해 가장 중요한 체력관리에 대해 묻는 질문에는 자신감에 찬 얼굴로 이야기 한다.
“체력관리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잘 먹는게 중요한데 다행히 제가 음식 가리는 건 없어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도 다른 건 몰라도 그건 아주 마음에 든다고 그러더라구요(웃음). 그래도 비상대비 체력유지용 홍삼분말 같은 영양제도 든든히 챙겨 뒀죠.”
누구도 주목하지 않고,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완전히 자신과의 싸움. 그가 그 지난하고 고독한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까. <김은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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