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남짓 개원을 앞둔 에덴 기도원의 최경화목사와 한혜숙 사모. 그들은 ‘에덴 기도원’이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의 모습과 같이 순수한 ‘영혼의 쉼터’가 되길 원한다고 말한다.
둘루스에서부터 뷰포드 하이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20분 남짓 올라가다 보면 야트막한 하얀색의 고즈넉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흡사 가정집 같기도 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햐얀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진 벽면과 미세하게 남아있는 페인트 냄새는 방금 단장을 마친 손길을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다가올 5월 첫째 주일인 5일 이 곳에서 ‘에덴 기도원’이 첫 걸음을 뗀다. 건물 수리부터 페인트 칠, 바닥 카펫 깔기 등 팔을 걷어붙이고 모든 준비 과정을 손수 진행한 에덴기도원 원장 최경화 목사는 ‘힘들지 않았나?’하는 질문에 고개를 가로젓더니 ‘오히려 너무 즐거웠다’고 대답하며 헛헛하게 웃는다.
- 보통 목사로서 교회 목회를 생각하기 마련일텐데, 기도원이라니 조금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교회가 아니라 기도원 설립을 생각하게 됐는지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가?
=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가야 할 것 같다. 튼튼한 기독교뿌리를 가진 집안에서 태어나 어렸을적부터 교회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자랐다. 자연히 중 고등학교 시절 영성 집회나 수련회와 같은 계기로 기도원도 자주 찾곤 했다. 고향 인천의 송월감리교회 박장원 목사님이 당시 한국에서 아주 유명한 ‘마가다락방’이라는 기도원을 함께 운영하고 계셨다. 그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전국 각지의 교회에서 그곳을 찾아와 기도하고 뜨겁게 예배하는 것을 보고 굉장히 깊은 인상을 받았다. 특히 그곳에 종탑이 하나 있었는데 그 종탑을 세웠던 창녀촌에서 일하던 여성분이 그 종탑 앞에서 ‘나 같은 죄인 살리신’이라는 찬양을 하는 것을 봤을 때, 가슴속에 뜨거운 뭔가를 느꼈던 것 같다. 그때부터 ‘기도원’이라는 곳과 어떤 긴밀한 내부적 끈이 생긴 게 아닌가 한다. 그런 인상을 마음에 품고 살아오다 기도원설립 결심을 하게 됐던 결정적 계기는 아내가 ‘갑상선암’으로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면서부터다.
- 그런 일이 있었나? 하지만 지금 사모(한혜숙)의 모습에서는 전혀 예상이 안 간다. 완치 된 건가?
= 뉴욕 맨체스터 지역에서 86년부터 교회를 개척해 한 교회에서 큰 어려움 없이 오래 시무했다. 그러던 중 2004년도에 우연히 한국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고 또 우연히 건강 검진을 받게 됐다. 그때 아내의 검진결과 갑상선암 이라는 판정이 난 거다. 처음에는 다행히 초기라 그 부위를 간단히 절제하는 수술로 완치 될 수 있다는 결과였다. 물론 가슴이 철렁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수술과 회복기간까지 15일이면 충분하다는 이야기에 나는 아내를 두고 먼저 미국으로 돌아왔다. 목회하던 교회일로 오래 자리를 비워둘 수가 없어서였다. 그렇게 돌아오고 얼마 후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전해 듣게 됐다. 부인의 수술결과 당초 예상했던 부위 외에 다른 쪽에도 전이가 됐기 때문에 2차 수술을 해야 한다는 거다. 게다가 수술 성공률도 5% 안팎에 수술 중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어쨌든 수술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보호자의 동의와 방문이 필요 하다는 게 병원측 설명이었다. 앞이 캄캄했고 심지어 그 동안 내가 살아왔던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질 만큼 원망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열심히 살아왔는데…’왜 내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도무지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생사의 기로에 서있을 때, 불현듯 이런 결심을 하게 됐다. 아내가 살아나기만 한다면 지금껏 손에 쥐었던 모든 것을 놓고 마음에 품었던 자유롭게 매이는 것 없이 하나님만을 전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이다. 정말 기적적으로 보다시피 아내의 삶을 하나님께서 지켜 주셨고, 그때 결심했던대로 손에 쥐고 있던 20년간 애지중지 키워왔던 본 교회를 ‘놓고’ 애틀랜타까지 오게 된 거다. 나뿐 아니라 아내도 당시 그 기로에 서 있으면서 ‘이제껏 나름 열심히 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진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했나?’하는 의구심과 함께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고 이야기 하더라. 그런 극적인 계기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고 또한 계획하심과 예비하심을 느낄 수 있게 하셨다. 또 그렇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 연고도 없는 애틀랜타까지 와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그리고 이제 한달 남짓 개원을 앞두고 있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 오늘에 오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굴곡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런 시간들이 다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의 일부였다고 생각한다. 우리를 연단하고 더욱 단단하게 준비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햇수로 4년간 애틀랜타에 머물면서 들었던 생각은 이곳은 다른 이민자 사회와는 달리 한국에서 직접 온 이민자들 보다 다른 지역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이 대부분이라 그런지 상처 입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다. 물론 이곳에 터전을 잡았던 것은 어찌 보면 정말 우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런 점들을 하나하나 느껴가면서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는 확신이 든다. 앞으로 ‘에덴 기도원’은 그런 상처입은 사람들의 ‘영혼의 쉼터’이자 치유의 장소로 사용되길 원한다. 교회 교파를 초월해서 기도하기 원하고 하나님을 만나기 원하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장소로 세미나나 바이블 스터디 클래스 운영도 계획 중이다. 여러 강사를 초빙해 집회도 부지런히 마련하려고 한다. 우리 기도원 이름 ‘에덴’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밝고 깨끗하며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는 ‘낙원’의 모습을 닮아가는 장소가 되기를 소망한다.
<김은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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