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보 콜럼버스
이번 주말은 금년 마지막 연휴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올핸 크리스마스가 금요일이므로 연말에 ‘보너스 연휴’가 한 번 더 있다. 민족 최대축제인 추석연휴를 본국 사람들처럼 즐기지 못하는 미주 한인들에겐 중추가절의 ‘콜럼버스 데이’ 연휴가 큰 위안이다.
지금은 한국 공휴일에서 빠진 한글날(9일) 사흘 뒤인 콜럼버스 데이는 그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과 동시대 인물인 이탈리아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본명은 크리스토포로 콜롬보)가 미 대륙을 ‘처음 발견’한 날(1492년 10월2일)을 기념하는 연방공휴일이다.
콜럼버스 데이는 연중 11개 연방공휴일 가운데 특정인의 위업을 기리는 세 공휴일 중 하나다. 다른 둘은 마틴 루터 킹 탄신일(1월 셋째 월요일)과 조지 워싱턴-아브라함 링컨을 기리는 ‘대통령의 날’(2월 셋째 월요일)이다. 콜럼버스는 그 4명 중 유일한 외국인이다.
콜럼버스 데이의 역사는 꽤 길다. 1934년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매년 10월12일을 연방공휴일로 선포했다. 지금처럼 10월 둘째 월요일로 바뀌어 연휴가 된 건 1971년이지만 그보다 거의 100년 전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지의 이탈리아계 이민사회는 이날을 민족축제일로 삼았었다. 콜로라도주는 1905년 전국최초로 콜럼버스 기념일을 선포했다.
콜럼버스는 이탈리아계뿐만 아니라 이민조상을 둔 모든 미국인들로부터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그래선지 콜럼버스라는 도시가 전국적으로 수두룩하다. 오하이오는 주도가 콜럼버스이다. 인디애나·조지아·네브라스카·텍사스·위스컨신·미시시피에도 콜럼버스 시가 있고 노스캐롤라이나엔 콜럼버스 카운티가 있다. 메릴랜드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콜럼비아 시’나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디스트릭트 오브 콜럼비아’), 워싱턴-오리건의 주 경계선인 콜럼비아 강도 콜럼버스를 지칭한다. 중미의 콜럼비아는 아예 나라 이름을 콜럼버스에서 땄다.
미국 외에도 많은 나라들이 콜럼버스 기념일을 두고 있다. 스페인 식민지였던 대다수 중남미 국가에선 이날이 ‘조상의 날’이다. 코스타리카는 ‘문화의 날,’ 바하마 군도는 ‘발견의 날,’ 우루과이는 ‘아메리카의 날’로 부른다. 콜럼버스 덕분에 가만히 앉아서 중남미 대륙을 거의 통째로 챙긴 스페인은 이날을 ‘히스파니아의 날’ 또는 ‘국민 축제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콜럼버스를 떠받드는 사람 못지않게 그를 증오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원주민 인디언들은 콜럼버스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 그가 1492년 10월12일 첫발을 밟은 바하마군도의 타이노 부족은 그의 학살로 거의 멸종됐다. 수많은 원주민들이 스페인으로 끌려가 아프리카에서 잡혀온 흑인들과 함께 노예로 팔렸다. 원주민의 눈엔 콜럼버스가 탐욕스런 노다지꾼이요, 노예상인이요, 인종말살 주의자요, 토착문화 파괴자로 보일 뿐이다.
그래서 콜럼버스 데이만큼 시비가 따르는 연방 공휴일도 없다. 그의 ‘미 대륙 발견’이 엉터리임은 누구나 다 안다. 얼어붙은 베링해를 건너간 아시아인들이 이미 수천년 동안 살아왔고, 콜럼버스보다 500여년 앞서 바이킹 해적들이 출몰했었다. 무엇보다도 콜럼버스는 플로리다 남쪽 90마일 지점의 쿠바까지만 왔을 뿐 정작 미국본토 땅은 보지도 못했다.
콜럼버스 데이는 네바다와 하와이에선 공휴일이 아니다. 사우스다코타에선 ‘원주민의 날’로, 베네수엘라에선 ‘원주민 저항의 날’로 대체됐다. 이날 이름을 ‘최초의 아메리칸스 데이’로 바꾸자는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고 ‘콜럼버스 데이 명칭 교체 연맹’이라는 단체까지 생겼다. 아이비리그인 브라운대학 학생들은 올해부터 이날을 ‘가을 주말’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필자는 콜럼버스의 공과와 관계없이 연방정부가 중추가절의 이 좋은 연휴를 취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뺀 한국정부를 흉내 내면 곤란하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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