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옮기자
중국의 두 큰 산 중간에 우공이라는 90세 노인이 살았다. 그는 집을 감싸고 있는 산 때문에 나들이할 때 장장 700리 길을 돌아가는 것이 귀찮아 아예 두 산을 없애기로 결심하고 아들, 손자들과 함께 산을 파헤쳐 바다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바다에 흙을 한번 버리고 오는데 1년이 걸렸지만 우공은 괘념치 않았다. 한 과객이 그를 정신 나간 사람이라고 비웃자 우공은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파면 언젠가는 산이 평지가 될 것”이라며 오히려 과객에게 속 좁은 사람이라고 나무랐다.
우공의 말에 두 산의 뱀들이 질겁했다. 그의 외골수 성격을 잘 아는 뱀들은 천제에게 산을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간청했고, 천제는 그 소원을 들어줬다. 우공은 힘 안들이고 하루아침에 대업을 이뤘다. 고사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의 내용이다.
지난 주말 필자는 우공이산을 거꾸로 실행했다. 산을 파헤쳤지만 허물지 않고 더 튼튼하게 보수했다. 한인들이 즐겨 찾는 시애틀 인근의 명산 래틀스네이크 레지(노스 벤드)에서 시애틀 한인등산회가 자원봉사로 벌인 트레일 보수작업에 참여한 것이다.
여성회원 8명을 포함해 선착순으로 지원한 25명이 4~5명씩 6개 조로 나뉘어 트레일을 따라 올라가며 허물어진 갓길을 통나무와 돌로 보강하고 관목을 심었다. 빗물에 휩쓸려 패인 곳엔 수로를 파고 바위를 옮겨 다리를 만들었다. 쓰러지거나 늘어진 나무를 톱으로 잘라 정비하고 상습적으로 물이 고인 곳엔 흙을 돋우고 자갈을 깔았다.
회원들은 아침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땀 흘려 일하며 옷이 흙투성이가 됐지만 모두 싱글벙글했다. 그동안 등산길에 미국인 자원봉사자들을 수없이 대할 때마다 미안하고 계면쩍은 마음이었는데 이젠 그 빚을 조금이나마 갚은 기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그날 작업장을 지나는 미국인 등산객들은 한결같이 “고맙다” “훌륭하다”고 치하했다. 평소 우리가 미국인 자원봉사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그날 산에 온 동포 등산객들도 한인 자원봉사자들은 처음 본다며 “덕분에 떳떳해진 기분”이라고 말했다.
필자도 무척 흐뭇했다. 그러나 내심 기가 많이 죽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하루 자원봉사를 했지만 우리를 안내하며 작업요령을 가르쳐준 워싱턴주 트레일 협회(WTA) 소속 자원봉사자 6명은 매주 다른 팀을 이끌고 트레일을 손본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인 WTA는 이들 외에도 수많은 자원봉사 회원을 두고 있다. 이들을 통해 매년 600회 이상 트레일 보수작업을 펼친다. 올 들어 지금까지 2,000여명, 8만7.167 시간의 자원봉사 실적을 기록했다. 첫 참가자들의 선물은 간식뿐이지만 2회 참가자에겐 연간 무료 등산로 주차패스, 5회 참가자에겐 본인 이름이 새겨진 WTA 헬멧이 추가된다.
그날 작업을 끝내자 WTA 감독관이 “시애틀 한인등산회는 내가 본 자원봉사 팀 중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최고”라고 치켜세웠다. 다른 팀들에게도 그렇게 말할지 모르지만 듣기 싫지 않았다. 필자가 보기에도 회원들은 몸 사리지 않고 일을 했기 때문이다.
WTA 감독관보다는 실제로 트레일을 이용하는 미국인 등산객들로부터 칭찬 듣고 인정받아야 한다. 요즘은 어느 산엘 가도 한인들을 만날 수 있을 정도로 동포 등산인구가 늘어났지만 그동안 트레일 보수작업에 자원 봉사한 한인단체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
꾸준히 하면 어떤 큰일도 해낼 수 있다는 것이 ‘우산이공’의 교훈이다. 산을 옮기는 큰일도 삽으로 흙을 뜨는 작은 일이 모아져 이룩된다. 변변한 자원봉사 실적이 없는 한인들에겐 트레일 보수가 작은 일이면서도 실속 있고 보람 있는 자원봉사일 것 같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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