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칠면조
살아있는 칠면조 20마리가 헬리콥터에서 내던져졌다. 잠시 후 그들은 땅으로 추락하며 모두 사망했다. 1978년도 시트콤 ‘신시네티의 WKRP’에서 방송국 매니저가 추수감사절을 맞아 슈퍼마켓의 판촉광고를 찍으려고 칠면조 낙하를 시도했던 장면이다. 야생 칠면조는 날 수 있지만 농장에서 기른 칠면조는 무거워서 날지 못한다는 것을 몰랐던 시트콤 제작진은 의도하지 않았던 칠면조 몰살 해프닝을 연출했다.
칠면조 낙하는 추수감사절 휴가를 맞아 집으로 돌아온 대학 신입생이 고교 때 사귀던 여친 혹은 남친과 “헤어지자”고 통보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추수감사절 때 집에 온 대학생이 휴가가 끝나도 대학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고교 때까지 아무리 공부를 잘했던 학생이라도 대학에 진학하면 “작문 수준이 고교 때와 이렇게 다른 줄 몰랐다. 소설류만 읽다가 비소설류를 읽으려니 힘들다”라는 예상외 어려움을 겪고, 난생처음 받은 C학점에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기 시작, 추수감사절쯤 되면 자신감이 칠면조 떨어지듯 곤두박질한다.
게다가 “어머니의 김치찌개가 그립다”에서부터 “룸메이트와 못살겠다”에 이르는 갈등을 겪으며 “대학을 잘못 선택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 생긴다.
신혼여행 후 현실로 돌아와 “내가 어떻게 이런 사람과 결혼했을까”라는 의구심을 갖는 것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시기가 바로 추수감사절 전후다.
시각과 촉각이 아닌 청각으로 새끼를 인식하는 어미 칠면조는 새끼가 칠면조 특유의 울음인 ‘칩칩’ 소리를 내면 극진히 보살핀다. 칠면조가 모성애를 발휘하는 것은 동물 생태학에서 말하는 ‘고정행동유형’ 자동장치에 따르는 것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로 그런 자동장치가 입력돼 있다. 기숙사에 떨어져 있는 자녀가 평소에 자주하지 않던 전화나 이메일이 급작스럽게 증가하거나, 교내외 활동을 게을리하고, 학점이 급속도로 떨어질 때는 칠면조의 ‘칩칩’ 소리로 여기고 자동장치를 작동해야 한다.
대학진학을 앞둔 학생은 귀납적 논리를 접어야 한다. 학교선배ㆍ친구ㆍ친척의 경험 또는 대학 선전물에 근거하여 앞으로 자신이 대학에서 처할 새로운 상황을 예측하는 방법이다. 대부분 학생은 “들어가기만 하면 남들도 다하던데 나라고 못하겠나”라는 결론에 이른다.
버트란트 러셀은 칠면조를 통해 그런 귀납적 예상의 허점을 지적했다. 농장 주인이 매일 아침에 모이를 주는 것을 알아챈 칠면조를 다양한 조건 아래 관찰을 반복했다. 주중과 주말, 따뜻한 날과 추운 날, 비 오는 날과 맑은 날, 관찰을 되풀이한 결과 “나는 항상 아침 9시에 모이를 받아 먹는다”라는 일반규칙, 즉 귀납적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추수감사절 아침 9시에는 먹이를 먹는 대신 자신의 목이 잘리는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이런 귀납적 논리는 다수결 원리와 흡사하다. 대다수가 대학에서 살아남는다 해서 자신도 그럴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칠면조의 그릇된 추측과 같다. 창공을 나르는 독수리가 되는 것을 기대했지만 추락하는 칠면조로 도태되는 것을 예방하는 방법은 “과연 진학하려는 대학이 나하고 궁합이 맞을까”라는 실질적 질문에 솔직히 답하는 것이다. 아니면 추수감사절 날 소녀시대의 ‘초콜릿 러브’ 보다는 백설희의 ‘인생은 칠면조’를 듣게 된다. “푸른청춘/붉은가슴/검은연기/긴 한숨/색깔없는 눈물은/달고 쓰고 맵다네/설마에 물어봐도/사전에 찾아봐도/나는 몰라/인생은 칠면조/이리하고 저리하면/그리될 줄 알면서도/알면서도 바보처럼 개 놀고 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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