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 캠페인’
미국인들은 식당에서 웨이터가 음식을 가져오면 마치 공짜로 얻어먹기라도 하듯 ‘땡큐’라고 말한다. 웨이터가 물을 한잔 더 따라주면 ‘땡큐’에 ‘베리 머치’가 따라붙는다. 미국인들의 ‘땡큐’ 입버릇이야 말로 사회를 매끄럽게 하는 윤활유 같다는 생각이 든다.
캐나다 BC주의 오지에 사는 콰키우틀 인디언 부족은 ‘감사’라는 말을 모른다. 원래 그런 단어가 없다. 그 사회가 엄청 삭막할 것 같지만 정반대다. 이들은 남이 자기를 도와준 만큼(때로는 더 많이) 행동으로 되갚는다. 그러니 감사라는 말이 필요 없음직 하다.
미국인들은 11월에 특별히 감사를 많이 한다.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이 끼어 있지만 추수하는 농부들만 감사하는 건 아니다. 너나없이 감사를 베풀고 받는다. 한국에서 추석을 앞두고 귀성전쟁이 벌어지듯 미국에선 땡스기빙 데이에 고향을 찾아가 가족들과 못 다한 사랑을 확인하고 감사를 나누려는 여행객들로 전국의 공항과 고속도로가 붐빈다.
감사의 달이지만 필자는 은근히 초조하다. 한국일보가 매년 감사절 직후 시작하는 연발연시 불우이웃 돕기 모금운동의 전망이 올해도 별로 밝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올 연말에 자선기부금을 내겠다는 미국인은 전체 응답자의 38%에 불과했다. 작년의 49%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응답자의 74%는 ‘경기가 풀리면’ 기부금액수를 늘리겠노라고 말했지만 문제는 연말까지 경기가 크게 풀릴 것 같지 않다는 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본보 외에도 시애틀타임스를 비롯한 전국의 유력지들이 연말연시 모금 캠페인을 시작한다. 그런 분위기를 밀어주려는 듯 ‘미국 기부금 도전’이라는 비영리기관은 지난 한해 동안 기부금을 많이 낸 각계 유명 인사들의 명단을 때맞춰 공개한다.
올해 명단에선 배우 사업가인 폴 뉴먼이 2,100만 달러로 톱을 차지했다(전해엔 1,000만 달러로 4위). 스타부부인 앤젤리나 졸리-브랫 피트가 2위(1,340만 달러), 배우 겸 감독인 멜 깁슨이 3위(650만 달러)에 올랐고, 2007년에 5,020만 달러를 기부해 톱을 차지한 TV 토크쇼 여황제 오프라 윈프리는 지난해엔 ‘고작’ 240만 달러를 내 6위로 떨어졌다. 프로복서 오스카 드 라 호야가 350만 달러, 프로 농구선수 야오 밍도 200만 달러를 냈다.
이런 ‘큰손 기부금’은 불경기를 타지 않지만 불우이웃 돕기와도 거리가 멀다. 각자 보건·교육·환경·스포츠·연예 등 지원분야가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불우이웃 돕기 성금은 그 불우이웃을 끼고 사는 소시민들로부터 거둬지게 마련이고, 또 그래야 의미가 있다.
미국 최대 자선모금기관인 유나이티드 웨이의 킹 카운티 지부도 올해 연말 모금전망에 회의적이다. 불경기로 퓨짓 사운드 일원의 실업자 수가 퀘스트 필드를 세 번 이상 채울 정도로 늘어났지만 “내미는 손에 비해 돕겠다는 손길은 상대적으로 뜸하다”며 한숨이다.
그래서 이 모금기관은 올해 ‘10-10’이라는 새로운 캐치프레이즈를 개발해냈다. “1인당 10달러씩 기부하고 다른 10명에게 기부하도록 독려해달라”는 뜻이라지만, 좀 생뚱맞다. 본보가 거의 30년간 벌여오고 있는 불우이웃 돕기 운동의 주제인 ‘10-1-1’(십시일반: 열 사람이 한 숟가락씩 떠서 한 사람 분 식사를 마련한다)보다 별로 나을 게 없다.
십시일반은 불경기일 때 더 위력이 있다. 작년 연말도 불황을 겪었지만 킹 카운티 유나이티드 웨이는 1억30만 달러를 모아 전국 1위를 지켰다. 시애틀타임스도 66만8,000여 달러를 모아 30년 모금사상 최고액을 기록했다. 본보도 우려했던 것과 달리 전년보다 많은 2만9,000여 달러를 모아 지난 2월 불우이웃 22명에 700~3,000 달러씩 배분했다.
올해도 십시일반의 기적을 고대한다. 감사는 말보다 실천이 앞서야 한다는 콰티우틀 인디언 부족의 교훈을 배우자.
윤여춘(편집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