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비 리그니까?

삼국시대의 불상과 그 당시 중국ㆍ일본의 불상을 구분하는 방법은 불상의 뒷모습을 보면 안다고 한다. 앞면은 비슷하지만 불상 뒷면까지 깔끔하게 마무리된 것은 일본 것이고, 뒷부분이 거친 상태로 남아 있는 것은 한국과 중국의 불상이라는 것이다.
좋게 해석하면 어차피 사람들이 불상의 뒷모습은 보지 않으므로 구태여 손을 볼 필요가 없다는 융통성이 있다고 하겠지만, 중국인의 ‘마마호호’(??虎虎: 세심하지 않고 얼렁뚱땅 넘어간다), 한국인의 ‘대충대충’ 기질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고구려ㆍ백제ㆍ신라 때부터 전해 내려온 대충대충 방식은 근래에 와서 남쪽에서는 성수대교ㆍ삼풍백화점 붕괴를 가져왔고, 북쪽에서는 기근을 겪게 했다.
자유 아시아방송에 따르면 북한이 식량난에 시달리는 가장 큰 이유는 비료나 날씨 문제가 아니라 협동농장의 분위기, 즉 어차피 농장원들이 받는 몫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애써 일을 하려 들지 않고 씨뿌리기부터 추수까지 대충대충 눈가림 식으로 일을 하는 데 있다.
대학 지원서 보충 에세이에도 대충대충, 얼렁뚱땅 정신이 반영되고 있다. “왜 우리 대학에 진학하려는가” 질문에 “아이비리그니까” “유명하니까”라고 대답한다.
이것은 “점심때 무엇을 먹었나”라는 질문에 “음식 먹었다”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대학이 상세한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고 “왜 우리대학인가”라는 폭넓고 열린 질문을 하는 것은 지원자 스스로가 얼마나 조직적으로 상세히 서술하나를 알아보려는 의도다.
또한 지원대학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도 없고, 알려고 들지도 않으면서 이름 하나 때문에 못 먹는 감 찔러나 보자는 식의 지원자를 가려내기 위함이다.
“왜 우리대학인가”라는 질문은 장기간의 심사숙고를 요구하는 질문이다. 그것을 귀찮게 여기는 지원자는 명문대 이름을 포기해야 한다. 여학생은 얼굴을 가꾸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 남학생은 컴퓨터 게임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화장을 깨끗이 지우지 않거나 대충 세수를 할 때 피부 노폐물이 남아 얼굴 군데군데에 소화산이 폭발하는 것을 막으려고, 눈과 입술을 클린서로 따로 닦아내고, 메이크업 리무버를 얼굴 전체에 발라 물로 씻어낸 다음, 피부 보습용 마스크를 하거나 수분크림을 사용하는 번거로운 과정을 불평 없이 해내지 않는가. 남학생은 컴퓨터 게임에 점수를 올려보려고 용의주도한 작전을 짜고 게임관련 웹사이트를 찾아 다니느라 밤을 꼬박 새워가며 몰두하지 않는가. 그런데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대학 지원서 에세이는 니트를 짜듯이 얼기설기 엉성하게 엮어내는 태도는 무엇일까.
올해 시카고 대학에 조기 지원한 J군은 보충 에세이를 이렇게 썼다. “할아버지의 결장암, 어머니의 허리통증 등 집안 내력으로 물려받은 허약 체질 때문에 나는 콩팥이 약하고 면역성이 부족하다. 해서 시카고 대학에서 생체분자 학을 연구하여 졸업 후 메디컬스쿨에 진학하고 싶다. 여름방학 동안에는 리서치 자료를 제공하는 폴 스트릴만 교수와 상의하여 생물 물리학 연구소에서 연구하고, 학기 중에는 시카고 메디컬센터에서 인턴을 하고자 한다. 그리고, 소설가 커트 보네커트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나는 대학의 익살스런 문예지인 시카고 요괴업자 클럽에 가입해 어릴 때부터 써온 일기의 연장으로 창작을 계속하고 싶다. 또한 고교시절 내내 고민해온 신의 존재에 대해 ‘문학을 통해본 종교연구’ 전문가인 리차드 스트라이어 교수의 강의를 통해 궁금증을 해소하고 싶다.”
이런 에세이를 쓴 J군은 물론 합격통지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