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츠의 만화 ‘피너츠’에 등장하는 라이너스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삶을 꿰뚫는 안목을 가졌다. 친구 스누피와 찰리 브라운에게 문제가 생길 때마다 철학적이고 설득력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막상 라이너스 자신은 ‘담요 증후군’에 걸려있다. 손에 담요를 쥐고 있어야만 안정감을 느끼고, 담요가 없으면 불안에 휩싸여 손가락을 빨며 어쩔 줄 모른다.
라이너스의 담요가 독립심을 키우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라고 설명하는 위스컨신 주립대 심리학자 리차드 패스만은 어린이가 위급한 상황 또는 새로운 교과목을 접할 때 엄마보다 오히려 담요가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한다고 피력한다.
무엇에든 매개체가 있어야 안정되거나 일이 진행되는 ‘담요 증후군’현상을 사회와 교육에 확대해석 해보자.
전세계 변호사의 70%를 가진 미국은 일본보다 25배, 영국보다 4배, 독일보다 3배가 많은 인구대비 변호사 비율을 가졌다. 변호사가 중간에 끼지 않고는 아무 일도 진행되지 않는 나라에서 누가 라이너스 담요 역할을 하겠나. 당연히 인구 250명중 1명 꼴인 변호사다. 예를 들면 벨뷰와 이사쿠아 학군의 수학 교과서 선정을 놓고 학교와 학부모 사이에 전통적 방법이냐, 개념중심 접근이냐로 의견이 갈라져 주법원과 변호사가 개입되었다.
지난주 알라바마 주립대 헌츠빌 캠퍼스에서 생물학 여교수가 교수회의에서 종신교수(tenure) 신청이 기각되자 총기를 난사해 동료 교수들을 숨지게 한 사건이 벌어졌다. 종신교수직을 라이너스의 담요로 삼은 여교수가 담요가 사라지자 손가락을 빤 것이 아니라,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학생과 부모들은 대학을 라이너스의 담요로 여긴다. 과외활동에서 뚜렷한 특징도 없고, SAT는 전국평균 점수에도 미치지 못하고, 학점은 평균 B도 안 되는데 무조건 사람들의 귀에 익은 유명대학에만 지원하겠다고 우기는 학생과 부모가 적지 않다. 유명대학 출신이라면, 취업 인터뷰에서 인정을 받고, 맞선자리에서 상대방이 우러러 보겠지라고 상상하는 것이다.
하긴 대학이 놀이터로 변했으니 그런 상상을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다. 지난주 UC-버클리의 학부연구소는 UC계열 9개 캠퍼스에 재학중인 6만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학생 시간사용 연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생들은 하루에 6.5시간 자고, 일주일에 41시간을 파티와 여가활동으로 보내고, 정작 공부하는 시간 (강의와 숙제시간 포함)은 일주일에 28시간밖에 안 된다.
보고서는 대학생들의 전반적인 추세가 “점점 노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대학교육의 장래를 우려했다.
존 마코니의 ‘평판 마케팅’이란 책은 두 가지 다른 표지로 출판되었다. ‘하버드 클래식’이라는 로고를 곁들인 것과 로고 없이 제목만 있는 두 종류다. 책 내용은 똑같지만 가격이 두 배 높게 책정된 전자가 후자보다 판매량이 두 배나 높다. 이렇듯 브랜드 이름 앞에서는 판단력이 흐려져, 유명대학보다 지원자에게 걸맞은 학업내용, 교수진, 재정보조 등을 제공하는 대학이 있더라도 눈길을 돌리지 못한다. 정치인과 마케팅 회사는 그런 인간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한다. 그 둘이 합친 재주를 능가하는 곳이 대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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