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일인지 요즘 지구가 화를 내고 있다. 속탈이 크게 났는지 올 들어 다섯 번이나 몸을 뒤트는 변고를 보였다. 그 중 4 차례는 최근 8일 새 집중적으로 일어났다.
엊그제 진도 6.4의 강진이 대만과 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를 흔들었다. 2월27일엔 칠레에서 진도 8.8, 2월26일엔 일본에서 7.0의 ‘빅 원(Big One)’이 각각 발생했고, 1월12일엔 역시 7.0의 강진이 아이티 한복판을 뒤흔들어 30여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전문가들은 지진이 요즘 갑자기 늘어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구촌에서 크고 작은 지진이 매년 수백만 번씩 발생하지만 진원지가 대부분 오지 아니면 해저여서 감지되지 않을 뿐이란다. 최근의 5 차례 연속 대지진도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지진대에 함께 속해있지만 각각 멀리 떨어져 상호 연관성이 없는 것 같다고 지진학자들은 말한다.
한 학자는 이 지진대가 캐나다 BC주에서 오리건 남단에 이르는 서북미 연안에서 300년 전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가 지금 휴면상태일 뿐 언제 잠이 깰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서북미 지진대에서 50년 내에 빅 원이 발생할 확률이 80%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필자는 LA에서 1994년 1월17일 새벽 진도 6.9의 ‘노스리지 지진’을 잠자다가 겪었다. 탱크가 집 옆을 지나가는듯한 굉음에 잠이 깼다. 전기도 나가 캄캄한 가운데 거의 20초 동안 집 전체가 삐거덕거리며 흔들렸다. 침대가 방바닥을 미끄럼질하며 다녔다. 두려움은 차치하고 속수무책의 무기력감 때문인지 속이 메스껍고 배가 뒤틀리는 것 같았다.
그로부터 7년 뒤 필자는 LA 아닌 시애틀에서 두 번째 강진을 만났다. 2001년 2월28일 오전 11시경 서북미를 뒤흔든 진도 6.8의 ‘니스퀄리 지진’이었다. 갑자기 신문사 건물이 흔들려 편집국 밖으로 뛰어 나가보니 직원들이 모두 놀란 표정으로 엉거주춤 해있었다. 주차장 마당이 45초 동안 흔들려 어지러울 지경이었고 건물지붕이 파도처럼 출렁댔다.
두 지진은 진도가 거의 똑같았다. 그러나 도심에서 일어난 노스리지 지진은 57명의 사망자와 200억 달러의 재산피해를 냈다. 미국 재해 역사상 최악의 수준이다. 반면에 니스퀄리 지진은 앤더슨 섬 지하 31마일 깊은 곳에서 일어나 사망자가 전무했고 재산피해도 비교적 적었다. 그 때문인지 시애틀 주민들은 LA주민들보다 지진 경계심이 느긋한 편이다.
그렇다고 시애틀이 LA보다 안전하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전문가들은 칠레지진과 맞먹는 빅 원이 시애틀에서 당장 내일이라도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태평양 연안의 ‘불의 고리’ 지진대 외에 시애틀 지하에는 브레머튼 인근에서 퓨짓 사운드와 다운타운을 거쳐 새마미시 레이크까지 연결되는 각각 다른 4개 지층대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시애틀 지진대에서 진도 6.7의 강진이 30초 동안 발생한다는 시나리오를 놓고 5년 전 전문가들이 영향을 심층 분석한 적이 있다. 그 결과 건물, 다리, 고가도로 등이 무너져 사망자 1,600여명, 부상자 2만4,000여명 등 인명피해와 함께 이재민 4만5,000여 가구가 발생하며 재산 피해액이 노스리지 지진을 능가하는 33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 곳곳에서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지진은 홍수, 태풍, 토네이도처럼 우리가 공존해야 할 자연현상이다. 빅 원을 피하고 못 피하는 건 ‘복불복’일 뿐이다.
지진 때문인지 요즘 ‘말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2012년 12월21일 인류가 멸망한다는 헛소문이 힘을 받는 모양이다. 성경에 나오는 말세 징조 가운데 ‘잦은 지진’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그 날짜가 엉터리임이 분명한 것처럼 언젠가 빅 원이 올 것도 분명하다. 말세론에 현혹되기보다는 빅 원에 대비해 각자 비상용품을 확보해두는 것이 현명하다.
윤여춘(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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