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시인의 표정은 맑고 단아했다. 그의 삶을 수놓은 수많은 기이한 행적들, 여러 번의 자살소동과 광란의 행태, 술독에 빠져 살기도 했고, 민주화 운동에 몸을 던져 투옥과 고문으로 청력을 잃은 정열의 화신이자 다작의 시인 고은(77)은 이제 폭풍우가 지나고 고요해진 물처럼 잔잔한 모습이었다. 이달 초한국서 ‘만인보’ 완간으로 크게 주목 받은 고은 시인을 인터뷰했다. 이틀간의 바쁜 일정 중 22일 아침에 잠깐 만난 그는 해외 한인들을 위한 연작시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22일 UCLA에서의 시낭송회와 카파미술재단 리셉션에 참석한 시인은 오늘(23일) 오후 7시30분 LA한국문화원에서 영문시집 ‘내일의 노래’(Songs for Tomorrow)와 ‘만인보’(Ten Thousand Lives)의 리딩과 북사인회를 갖는다.
-만인보 완간에 대한 소식을 읽었습니다. 이제 만인보는 더 이상 쓰지 않습니까
▲세상과의 약속은 마쳤습니다. 내가 써야할 생각이 들면 또 쓸지도 모르죠. 아직 정하지 못했어요. 만인보의 본질은 처음도 끝도 없는 것이고, 그 도상에 있는 것이니까요.
-만인보의 첫 인물은 누구였습니까
▲너무 오래 돼서 모르겠어요. 기억나지 않습니다.
-마지막 인물은 기억합니까
▲울릉도에 전설이 있는데, 그 소년에 대해 쓴 것입니다. 특별한 이유는 없고, 우리나라 동해의 끝에 있는 소년을 생각했습니다.
-만인보에 해외 한인은 들어있지 않나요
▲더러 있을겁니다. 그러나 이민자를 의도적으로 조명한 것은 아니에요. 만인보는 한반도 안에서의 여러 시대를 그려 넣었기 때문에 이민자에 대해선 다른 계획이 들어가야겠죠.
-다른 계획이 있습니까
▲지금 당장 계획은 없으나 옛날부터 별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근대가 한민족의 이주 역사이기 때문이죠. 연해주로, 중앙아시아로, 중국, 일본, 그리고 하와이, 멕시코, 미대륙으로 나갔지 않습니까. 따라서 만인보에 가둬놓을 수 없어 별도 상정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자체가 커다란 실체니까요.
-만인보는 총 30권인데 미국에서 한 권이 나왔습니다. 계속 영역되나요
▲영어, 불어, 스웨덴, 러시아, 스패니시 등 여러 언어로 번역됐습니다. 다들 그 일부를 번역한 것이죠. 그 나라들에서 원할 때 계속 번역이 될 것입니다.
-시에서 언어는 매우 중요한데, 다른 언어로 번역될 때 어떤 우려는 없는지요
▲역으로 생각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의 근대는 외국문물의 번역으로 시작됐습니다. 특히 서구문학은 압도적으로 번역에 의해 알게된 것이고 무조건적으로 번역해왔지요. 우리 문학 역시 번역이 어렵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번역될 것은 번역돼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받아들인 것처럼 우리 것도 주어야 하니까요.
-해마다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 국민들의 기대가 굉장히 큽니다. 부담이 될 것 같습니다
▲아는 바가 없어요. 내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내 입에서 나올 것은 없습니다. 한 해 두해가 아니어서, 그저 어느 하루처럼 여겨집니다.
-UCLA와 한국문화원의 리딩에서 어떤 시를 들려줍니까
▲한국어로 내가 읽고, 영어로는 더글라스(Douglas Messerli-Green Integer 출판사 대표)가 읽을 겁니다. 시는 아직 정하지 않았으나 모든 시가 대상이고 자유롭게 선택할 거에요.
-LA 한인들을 위해 특별히 생각한 시는 없나요
▲여기 오면 미국인지 한국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인데요. 한인들의 미국이민 100년 역사가 담긴 곳이라 여기 오면 마음이 푹 놓여집니다. 동포들이 100년 이상 고독한 곳에서 삶의 뿌리 내리고 이웃을 만들고 공동체를 만든 은혜 위에 와서 하룻밤 자고 이틀밤 자고 합니다. 빈손으로 100달러 들고 태평양을 건너와 시작한 사람들이 지금은 미국에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면 조국이 확대되는 것 같아 기쁩니다.
-50년 이상 시를 썼는데 이제 와서 돌아볼 때 시는 시인에게 어떤 것이었습니까
▲내 삶이 시이기를 바라고, 시가 나의 삶이기를 바란다는 두 마디밖에 없습니다.
-몇년전에 그림 개인전 하신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50주년으로 친구들이 전시회를 주최해주었지요. 어릴 때 꿈이 화가였는데 그때 처음으로 색깔 칠해봤습니다.
-후배 시인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시의 길은 1년의 길이 아니고 최소한 10년 이상의 길이라는 것을 꼭 마음에 담고 시를 쓰기 바랍니다.
<글 정숙희 사진 이은호 기자>
고은 시인
본명 고은태.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나 18세에 출가해 승려생활을 하던 중 1958년 ‘현대시’와 ‘현대문학’ 등에 추천돼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첫 시집 ‘피안감성’(1960)을 비롯해 ‘햇빛사냥’, ‘조국의 별’, ‘산하여 나의 산하여’, ‘백두산’(전 7권), ‘고은 전집’(38권) 등 저서가 150여권에 달한다. 1989년 이래 영미, 독일, 프랑스, 스웨덴을 포함 20여개 국어로 시선 및 시선집이 번역됐다. 만해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대산문학상, 은관문화훈장, 스웨덴 시카다상 등을 받은 그는 해마다 노벨 문학상 후보 중 한 사람으로 거론되고 있다.
만인보
2010년 4월9일 전 30권이 완간된 대하 연작시편으로, 시인이 1986년부터 25년간 써온 총 작품수 4,001편, 등장인물 5,600여명의 ‘시로 쓴 한민족 호적부’다. 시인이 걸어온 길에서 만난 사람 1만명을 통해 한국역사를 훑어보겠다는 의도로 시작돼 해방과 한국전쟁, 4.19와 5.18 광주항쟁이 그려졌는가 하면 고승들의 행적을 좇으며 신라시대 이후 한국 불교의 모습도 담고 있다.
이 연작시는 1980년 교도소 수감 중 구상한 것으로, 그는 한 인터뷰에서 "문익환 목사나 나나 이제 구차하게 살 필요 없다며 마음을 정리하고 있던 차였는데 광주 얘기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우리는 살아있고 그들은 죽었다는 것… 살 수 있으면, 살아서 이걸 써야지 하고 구상했다"고 말했다. 머슴으로부터 시작해 노무현, 법정스님, 함석헌, 문익환, 김수환 추기경 등 수많은 정치인, 운동가, 전·현직 대통령, 예술가들은 물론 평범한 인물들도 시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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