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음악회’라는 인기 TV 프로그램이 있다. 한국의 KBS가 일요일 저녁 한시간동안 클래식, 가곡, 대중가요, 창(국악), 팝, 재즈 등 모든 장르의 음악을 한 무대 위에서 펼치는 대형 뮤직 쇼로 다양한 연령층 및 사회계층을 망라한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다.
열린 음악회는 꼭 17년 전인 1993년 5월9일 첫 방송을 내보낸 뒤 지난 2일 835회째를 맞았다. 이날 쇼엔 1970년대 인기 듀엣 ‘서수남과 하청일’의 꺽다리 서수남이 예의 앙증맞은 꼬마차림으로 나와서 동요 ‘과수원 길’과 ‘구름’을 부른 뒤 그룹 ‘멋진 친구들’과 함께 전성기 대표곡이었던 ‘동물농장’을 불렀다. 소프라노 송혜영이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매기의 추억’을, 원미연이 ‘분홍 립스틱’을, 홍경민이 ‘그대에게’를 각각 불렀고 기악인 전경호가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을 마림바(남미형 실로폰)로 연주했다.
열린 음악회는 장르만 아니라 녹화지역도 열려 있다.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대도시는 물론 고양, 서산, 포천, 경주 등 중소도시에서도 무대를 차렸다. 2005년 6월12일엔 금강산 편이, 2004년 11월14일엔 모스크바 편이 방영됐다. ‘감지중국(感知中國) 콘서트’(2006년 10월), ‘한국-베트남 평화음악회’(2005년 9월)라는 별도 타이틀이 붙기도 했다.
특히, 이 쇼는 그때그때 기념일이나 사회 관심사를 반영한다. 2000년 10월15일자 열린 음악회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을 기념하는 ‘평화음악회’가 됐고, 2007년 10월7일분은 ‘세계 한인의 날’을 기념했다. 같은 해 6월10일엔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으로 차려져 양희은, 윤형주, 김세환 등 당시 통기타 가수들이 바리톤 최현수, 소프라노 김원정 및 인천 오페라 합창단과 함께 한때 금지곡이었던 양희은의 ‘아침 이슬’을 합창했다.
그 기세당당한 열린 음악회가 속된말로 ‘작살’났다. 지난 4월4일자 쇼를 신세계백화점 후원으로 부산에서 녹화하면서 ‘호암 이병철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이 문제였다. “국영 TV의 간판 뮤직 쇼를 삼성의 홍보물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이 전국에서 빗발쳤다. KBS는 담당 PD를 인사조치하고, 때마침 터진 천안함 사건을 빌미로 4월4일자 쇼를 쉰 뒤 11일자 방송분에서 ‘이병철의 이’자도 보이지 않게 편집해 내보냈다.
필자가 생뚱맞게 열린 음악회 얘기를 길게 늘어놓은 이유는 시애틀에서도 이 쇼가 열리기 때문이다. 물론 KBS 것은 아니다. 다음 토요일(15일) 저녁 7시30분 워싱턴대학 미니 홀에서 열리는 ‘미니’ 열린 음악회는 정통 성악가들과 인기가수 장계현을 비롯해 대학생 그룹, 한인 연합합창단 등으로 구색을 갖춰 열린 음악회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특히 이 음악회는 재벌홍보 따위와 전혀 관계없다. 행사를 주최하는 워싱턴주 동문회연합 소속 의사들이 3년째 매월 2 차례씩 자원봉사로 벌여오고 있는 저소득층 한인 대상의 무료진료활동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려는 것이 취지이다. 자비만으로는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신경내과 전문의인 신창범 연합회장의 꿈은 더 원대하다. 그는 열린 음악회가 모든 장르를 포용하는 듯 시애틀지역의 모든 한인과 단체들도 이 행사를 통해 마음을 열고, 소통하고, 공감하고, 하나 되는 계기를 차근차근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KBS의 열린 음악회도 마음이 활짝 열린 시애틀 한인사회에서 녹화되도록 제의하고 싶다고도 했다.
한인의사들이 연합회를 만들어 조직적으로, 정규적으로 무료진료를 펼치는 곳은 아마도 전국에서 시애틀이 유일할 듯싶다. 자기 시간과 주머닛돈을 써가며 불우동포를 돕는 봉사활동도 훌륭하지만 병든 육신의 치료는 물론 닫힌 마음도 열겠다는 뜻이 매우 가상하다.
이들의 열성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다. 다음 토요일엔 많은 사람이 만사 제쳐놓고 열린 음악회에 참석해 이들을 격려하며 이웃 한인들과 열린 마음으로 소통했으면 좋겠다.
윤여춘(편집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