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채취 실종’ 이원덕씨가 들려준 생생한 생환기
체온 잃지 않기 위해 최대한 웅크리고 새우 잠
“산에 갈 땐 라이터, 지도 꼭 가져가라”충고도
산 속에서 길을 잃어 이틀간 밤을 지새고 무사 귀가한 이원덕씨가 들려준 생환기는 송이버섯 채취 철을 맞아 시애틀지역 한인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
1981년 이민온 뒤 타코마 제일침례교회에 출석하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이씨는 교회 동료신자들과 함께 해마다 봄철엔 고사리, 가을철엔 버섯을 따왔다. 이번에 길을 잃고 헤맨 아담스 산엔 지난해 처음으로 송이를 따러 갔었다.
이씨는 본격적인 송이채취 철이 시작되면 베트남인 등이 싹쓸이를 하는 통에 다소 시기가 이르지만 지난 20일 친지들과 송이를 따러 나섰다.
산속에서 빵으로 점심을 때우고 상당량의 송이를 채취한 후 하산하던 이씨가 조금 쉬다 내려가겠다며 일행과 헤어져 혼자 남은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 주차장과 그리 멀지 않았는데도 갈래 길이 나오자 주차장 쪽이 아닌 다른 길로 접어들어 길을 잃게 된 것이다. 이씨는 “어떻게 길을 잃게 됐는지 지금도 알 수 없지만 길을 헤매다 보니 깜깜하게 어두웠다”고 말했다. 그는 짐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배낭에 넣어뒀던 송이도 모두 버렸으며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되자 그 자리에서 웅크리고 앉아 최대한 체온을 유지했으며, 가능한 한 잠을 자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술회했다.
이렇게 첫날 밤을 보낸 이씨는 다음날 날이 밝자 차가 다니는 도로를 찾기 위해 헤매기 시작했다. 목도 마르고 배도 고파 배낭을 샅샅이 뒤졌더니 고사리를 딸 때 사용했던 작은 물병이 나왔다. 물이 반 정도 남아있었다.
그는 “물을 한꺼번에 마셔버리면 나중에 자칫 물이 없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목만 축이며 견뎠다”며 “결국 반 병의 물이 나를 살렸다”고 말했다.
산 속을 헤매다 조그만 협곡(Creek)을 발견했는데 그 협곡을 따라 가다 보면 차량이 다니는 길이 나올 것으로 판단했으나 오르락 내리락 반복하다가 결국 낭떠러지에 봉착했다고 이씨는 말했다. 더 깊은 산속으로 더 들어간 것이다.
이날은 수색 대원들이 호루라기를 불고, 수색견과 구조 헬리콥터까지 동원해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평소와 달리 보청기를 끼지 않았던 이씨는 전혀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헬리콥터가 상공에 3차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었지만 자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라이터를 갖고 있었더라면 연기를 피워 위치를 알릴 수 있었을 것이고, 지도라도 있었으면 방향 감각을 잡을 수 있었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결국 협곡을 따라 다시 내려오다가 산속에서 이틀 째 밤을 맞은 이씨는 또다시 웅크리고 앉아 체온을 유지했는데, 이날은 최저기온이 31도까지 떨어진데다 이슬도 많이 내려 바지까지 완전 젖었다고 이씨는 말했다.
이씨는 “거의 잠을 못 자고 22일 아침 일어나 움직이려고 했더니 다섯 발짝도 뗄 수 없을 정도로 다리가 마비돼 혼자 앉아 주물렀고, 호흡도 곤란해져 평소 익혔던 대로 입과 코를 옷으로 가리는 호흡법을 통해 정상을 되찾았다”고 말했다.
그는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무릎을 꿇고 “이젠 준비가 됐으니 데려가시려면 데려가시고 아니면 오늘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렇게 기도를 하고 15분 정도 지나서 잘 들리지도 않던 귀에 트럭 소리가 들려 50여m를 내려갔더니 길이 나왔고 트럭운전사에 의해 발견돼 길을 잃은 지 41시간 만에 구조됐다.
이씨의 딸인 인수ㆍ경숙씨와 아들 병옥씨는 “아버님이 워낙 건강하고 침착해서 반드시 살아오실 것으로 믿었지만 이틀 밤이 지나고 3일째가 되니 불안한 생각이 많이 들었다”며 “하지만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도 “첫 날 산속을 헤매는데 ‘3일간 가족을 못 볼 것’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고생을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매 순간 침착하게 대응해 살아난 것 같다”며 자신을 위해 수고해주고 기도해준 관계자들에게 거듭 감사함을 표했다.
황양준기자 june66@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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