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에서나 경찰은 곧잘 ‘민중의 지팡이’로 미화된다. 예전에 한국경찰도 지팡이를 표방했지만 정작 민중의 뇌리에 각인된 경찰 이미지는 ‘몽둥이’였다. “순사 온다고 겁주면 울던 아이도 뚝 그친다”는 일제시대의 경찰상이 해방이후 거의 바뀌지 않았었다.
학창시절 공부보다 데모에 더 열중했던 필자세대는 민중의 몽둥이와 친숙하다. 길에서 필자와 친구를 장발족으로 족친 것도 그 몽둥이였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난 요즘 한국경찰은 웬일인지 데모대에 얻어맞기 바쁘다. 민중의 몽둥이가 ‘민중의 펀치 백’이 돼버렸다.
시애틀 경찰도 요즘 달라지고 있다. 용의에게 주먹질하기 일쑤고, 낌새가 좀 이상하면 무뢰한과 대결하는 서부영화의 보안관처럼 먼저 총을 뽑아 쓰러뜨린다. 최근엔 거꾸로 무뢰한들이 보안관을 사살하는 사태가 빈발해 경찰이 우범자들의 사격 타깃처럼 돼버렸다.
기억에도 새롭지만 1년전인 작년 할로윈 밤, 시애틀 다운타운을 순찰하던 티모시 브렌튼 경관이 느닷없이 총격을 받고 숨졌다. 그의 파트너 여순경은 총탄이 목을 스쳐지나가 구사일생으로 화를 면했다. 범인 크리스토퍼 몬포트는 엿새 후 턱윌라의 자기 아파트를 덮친 경찰과 대치하다가 등에 총격을 받고 불구가 된 채 체포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훨씬 더 끔찍한 경찰관 집단피살 사건이 한달 후 11월29일 레이크우드에서 터졌다. 이른 아침 커피숍에서 근무교대를 위해 인수인계 중이던 경찰관 4명이 폭력 전과범 모리스 클레몬스의 무차별 총격으로 모두 숨졌다. 미국 경찰사상 최악의 재앙을 안겨준 클레몬스는 이틀 후 시애틀에서 한밤중에 또 권총을 들고 순찰차에 접근하다가 경관의 선제총격을 받고 죽었다. 요즘 시애틀타임스는 클레몬스 범행의 자초지종을 파헤친 ‘자비의 다른 면’이라는 제목의 책을 요약해 시리즈로 연재하며 사건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캐내고 있다.
클레몬스는 죽어서 말을 못하지만 몬포트는 “못돼먹은 경찰에 따끔한 맛을 보여줬을 뿐”이라고 큰소리친다. 그는 셰리프대원이 구치소 감방에서 소녀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시멘트 바닥에 내팽개치는 장면을 TV 뉴스에서 봤다며 “이런 경관은 민중의 지팡이가 아니라 공공의 적”이라고 주장했다. 그런 공공의 적은 그 후에도 TV에 여러 번 ‘출연’했다. 무고한 히스패닉 청년을 폭행용의자로 몰아 땅에 엎드리게 한 후 구둣발로 찼고, 도로를 무단횡단 한 젊은 여자를 단속하다가 그녀가 고분고분하지 않자 면상에 주먹을 날리기도 했다.
닷새 전 주상원 법사위원회는 특별회의를 열고 지난 6개월간 13건이나 발생한 경찰의 폭력행위를 성토했다. 법사위는 특히 지난 8월30일 시애틀 다운타운 교차로에서 경찰관의 총격으로 숨진 원주민 존 윌리엄스 사건을 강도 높게 따졌다. 뜨내기 장승 조각가인 윌리엄스는 길가에 앉아 주머니칼로 나무토막을 조각하다가 새내기 이안 버크 경관의 총격을 받고 숨졌다. 그는 술중독자인데다가 한쪽 귀가 멀어 ‘칼을 버리라’는 버크 경관의 명령을 못 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목격자들도 윌리엄스가 버크에게 위협이 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시애틀경찰국은 자체조사 끝에 지난주 버크경관의 총격행위가 정당하지 않다는 잠정결론을 내리고 그의 경찰배지와 권총을 회수했다. 현재 킹 카운티 지법이 별도로 진행하고 있는 배심조사에서도 버크는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할 공산이 크다. 경찰관이 임무수행과 연관된 총격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한 전례가 없다는 점에서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한인들이 신경 쓸 대목은 따로 있다. 경찰에 사살되거나 폭행당한 사람들이 한결같이 소수계라는 점이다. 시애틀경찰이 인종표적 단속을 벌인다는 의혹을 받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반면에 ‘미친개 눈에는 몽둥이만 보인다’는 속담도 있다. 어쩌다 속도위반으로 적발만돼도 단속 순찰대원이 몽둥이로 보이게 마련이다. 한국에서든, 미국에서든 경찰관이 항상 몽둥이 아닌 지팡이로 보이도록 한인들이 준법정신을 더 고양할 필요가 있다.
윤여춘(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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