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중의 프로다. 헤어컬러리스트(hair colorist)로서 도, 화려한 싱글로도 그녀를 따를 자는 없다. 세계적 인 팝스타 레이디 가가의 헤어컬러리스트 패티 송(46) 씨“. 한 인물의 라이프 트렌드를 헤어 컬러에 담는다” 는 그녀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도 프로정신이 넘쳐 난다.
그녀만큼 모발의 상태와 헤어 컬러에 관해 철저하게 연구하는 사람도 드물다. 화학작용을 예술로 바꾸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는 그녀. 비달 사순 아카데미 출신의 헤어디자이너들에게‘선생님’으로 불리는 색채 의 마술사이자 90년대 중반 할리웃 최고의 에이전시 ‘클루티에 르믹스’가 영입한 최초의 컬러리스트 프리 랜서 패티 송씨를 인터뷰했다.
“내 사전에‘트렌드’란 없습니다. 내 고객들은‘트렌드 팔로워’(trend follower)가 아니거든요”
그녀의 손길에 헤어 컬러를 맡기는 월드스타는 니콜 키드만, 데미 무어, 나오미 캠벨, 페넬로프 크루즈, 그리 고 레이디 가가 등이다. 아무리 무대 위 카리스마를 내뿜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스타라도 그녀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귀를 기울인다. 트렌드를 따르 지도 않고 고객이 원하는 스타일로 타협하지도 않는다.
레이디 가가를 처음 만났을 때도 레이디 가가의 헤어 상태부터 유심히 살펴보고 그녀만이 할 수 있는 조언을 했을 정도다. “2008년 레이디 가가를 만났어요. 영국, 캐나다, 독일, 스페인 등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가 레이디 가가의 음 악과 퍼포먼스에 열광했고, 미국 무대 에 첫 선을 보이는 아주 중요한 시기 였죠” 아주 심플한 블랙 스테이지 공연을 기획했던 레이디 가가는 그녀만의 거 침없는 퍼포먼스를 위해 헤어 브리치를 원했다.
그러나 당시 레이디 가가 의 머릿결은 지나치게 상해 있는 상태였고 브리치 톤도 들쭉날쭉했다. 그 래서 브리치를 하기보다는 손상된 모발부터 잘라내길 권했다. 인생일대의 빅 무대를 앞둔 가수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지만, 레이디 가가는 그녀 의 의견에 전적으로 따랐다고 한다.
레이디 가가하면 떠오르는 화이트, 바이올렛 헤어 컬러도 그녀의 작품이 다. 최근 들어 레이디 가가가 가발을 쓰기 시작하면서 잠시 그녀의 손길을 벗어났지만 레이디 가가에게 그녀는 컬러리스트일 뿐 아니라 마음을 터놓는 친구나 다름없다.
“레이디 가가는 감수성이 예민 고 스마트하죠. 그 자체로 아티스트 에요. 공연 모습이나 평상시 모습이 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적인 자리 에서 레이디 가가를 숱하게 접했지만 레이디 가가가 청바지를 입는다는 건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아요.”
스스로를 ‘최고의 결정자’(best decision- maker)라고 자부하는 그녀는 손상된 모발복구 전문가다. 유명 살롱의 컬러리스트들조차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비상사태에는 ‘모발 해결사 패티 송’을 찾는다. 케미컬(화학약품) 로 인한 3도 화상에 대한 법정 자문 을 구해 오는 변호사도 있다. 영화촬영장에서 여배우의 헤어 컬러가 조금이라도 달라지면 그 이후 촬영은 전면 중지다.
콘서트를 앞둔 가수가 조명 지식이 없는 헤어컬러리 스트에게 헤어 컬러를 맡길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래서 그녀는 헤어컬러리 스트를 과장되긴 해도 외과수술 전문 의에 비유한다. 70파운드에 달하는 그녀의 트렁크 만 있으면 어디서든‘작업 모드’에 들 어간다. 시간도 장소도 구애받지 않는다.
스케줄에 쫓기는 스타들을 위해 새벽 3시에 달려갈 때도 있다. 항공기 내건 프리웨이 선상이건 상관없다. 얼 마 전에는 베를린에서 해외로케 중인 여배우의 헤어 컬러를 위해 비행기를 타고 반나절을 날아가 1시간 작업을 하고 다시 LA로 돌아오기도 했다. “항공여행을 할 때면 수화물 검색에 늘 걸리죠.
트렁크 속이 색색깔의 염색약 등 케미컬로 가득하거든요” 그녀의 라이프스타일은 헤어 살롱 에서 일하는 컬러리스트와 차별화된다.
고객들 대부분이 유명인이다 보니 사적인 공간을 선호하게 되고, 늘 혼자 작업하기 때문에 외로움을 느낄 때도 있지만, 자택으로 찾아갈 때가 많아 그들과 사적인 대화를 마음껏 나눌 수 있어서 좋다. 또, 헤어 컬러를 전문으로 하다 보니 예상 외로 경쟁 도 심하지 않다고 한다.
최초의 컬러리스트 프리랜서 패티 송씨는 1907년 7월 헤이그 평화회의에 참석한 밀사의 통역관으 로 활약했던 프린스턴 대학 박사과정 출신 송헌수씨의 손녀다. 1.5세 아버지와 2세 어머니 슬하 2 녀1남 중 차녀인 그녀는 말보로 중학 교와 페어팩스 고교를 다녔다. 어려서 부터 인형 머리를 만지작거렸고 CBS 스튜디오가 그녀의 학창시절 생활터 전이다.
고교를 졸업할 무렵 비달 사 순 아카데미로 진로를 정했지만 부모 의 반대에 부딪혀 졸업과 동시에 독립을 했다.
베벌리힐스 친구 집에 기 거하며 리셉셔니스트로 일해 학비를 모았고 자동차도 장만했다. 헤어스타 일리스트의 꿈을 버릴 수 없었고 1년 만에 부모를 설득시켜 비달 사순 아 카데미에 입학해 그녀가 원하던 헤 어스타일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헤어컷보다는 케미컬을 취급하는 게 좋아 헤어컬러리스트가 됐고 이후 10년 동안 비달 사순 아카데미에서 컬러링 강의를 하며 비달 사순 살롱 에서 일했다. ‘
헤어 케미컬’에 대한 그녀의 전문성과 진지한 접근이 입소 문이 나면서 1995년 할리웃 최고의 에이전시 ‘클루티에 르믹스’(Cloutier- Remix)로부터 프리랜서 스카웃 제의 를 받았다. 이후 16년 동안 프리랜서 컬러리스트로 광고, 영화, 뮤직 비디 오 등에서 할리웃 스타들의 헤어 컬 러를 책임지고 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사람들과 시간 을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적 여 유가 생길 때마다 자선 행사에 참여 하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홈페이지 www.cloutierremix.com/ pattisong
< 하은선 기자 >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