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우리말과 글로 먹고 사는 글쟁이인데, 우리말 맞춤법 때문에 늘 애를 먹곤 한다. 왜 그렇게 어려운지, 왜 그렇게 자주 바뀌는지, 도대체 누가 바꾸는지… 다른 나라도 이렇게 나라말을 자주 바꾸는지…?
맞춤법이란 그저 글쓰기의 약속이요 기준일 따름일 텐데 그것이 마치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는 바람에 답답할 때가 많다. 신문 잡지에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그동안은 가령 내가 원고에 ‘짜장면’이라고 써서 보내면 편집자가 친절하게 ‘자장면’이라고 고치면서 ‘무식한 놈, 철자법도 모르는 게 무슨 글쟁이람!’라고 중얼거리는 식이다. 나는 짜장면은 역시 짜장면이라고 써야 짜장면의 쫄깃한 제 맛이 산다고 여겨 줄기차게 짜장면이라고 고집하는데, 편집자는 맞춤법에 맞게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 짜장면이 어느 날 갑자기 자장면으로 변했을까? 그렇게 고친 분들의 말씀에 따르면 원어 발음에 충실하고 된소리를 되도록 피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인데, 납득하기가 어렵다. 국민의 대다수가 짜장면이라고 하면 짜장면이 맞는 것이다. 된소리를 피한다면 짬뽕도 ‘잠봉’으로 써야 할 것 아닌가?
믿거나 말거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수다에 따르면, 이렇게 수시로 바꿔야 학자들도 할 일이 생기고, 교과서나 참고서 출판업자들이 먹고 살고, 그 바람에 담당 공무원 주머니도 두둑해지고, 그래야 술집 장사가 잘 되고, 그래야 나라 경제가 성장 발전하고… 뭐 그렇게 뱅글뱅글 돌아간다는데, 그거야 터무니없는 헛소리일 테고!
외래어 표기법은 더 골치 아프다. 뉴욕, 뉴-욕, 뉴우욕, 뉴우요오크… 도쿄, 토오쿄, 도꾜, 동경… 벌몬, 버몬, 버몬트, 얼바인, 어바인… 레건, 레이건, 리건… 도무지 정신이 한 개도 없을 지경이다. 요새는 중국사람 이름이나 도시 이름을 원어 발음으로 쓰는 통에 몇 번이나 읽어봐도 잘 모른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괄호 치고 한자를 써넣는다. 중국사람 이름은 중국식으로 쓰면서 일본사람 이름은 여전히 풍신수길, 이등박문이다.
게다가 일본식 엉터리 영어에 콩글리시까지 판을 치는 바람에 더 정신이 없다. 테레비, 파스콤, 리모콩, 매스콤… 이런 것은 일본식 영어고, 핸드폰, 개그맨, 알바… 요런 것은 콩글리시다. 게다가 요새는 영어는 이미 한 물 갔고, 불어나 독어를 씨부려야 멋쟁이 축에 든다나… 노블리스 오블리제, 까르페 디엠, 메멘토 모리… 뭐 이런 식이다.
“언어는 정신의 표상이다”라는 말이 맞는 말이라면, 지금 우리의 정신세계를 아주 좋게 표현하면 세계화가 활발하게 진행중이고, 정확하게 말하면 아수라판인 셈이다. 완전히 주체성 포기 상태다.
사람 이름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결혼한 아줌마가 영어 이름을 가지면 아예 딴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엘리자벳 제갈 여사의 본명은 맹끝순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국사회에서 살자면, 미국사람들이 발음하기 좋고 기억하기 쉬운 영어 이름이 필요하다고들 말한다. 글쎄 꼭 그럴까?
오래 전에 지휘자 정명훈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 때 정명훈이라는 이름을 서양 사람들이 발음하기 아주 어려울 텐데, 주위 사람들이 영어 이름 하나 만들라고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정명훈의 대답은 아주 간단했다.
“필요하면 자기들이 연습하겠죠, 뭐”
어찌나 통쾌하던지!
장 소 현 <극작가, 시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