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 초기 이민 선조들이 정착했던 리들리에 조성된 ‘한인 이민 역사 기념각’의 모습. 리들리 시정부가 무상 제공한 부지에 독립문과 애국지사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 리들리 공원묘지에는 1900년대 초 미 본토로 이주해 와 중가주에 정착했던 한인 선조 190여명이 영면해 있다<장지훈 기자>
1905년부터 미 본토로 이주를 시작한 한인 초기 이민선조들은 중가주 다뉴바에 터를 잡은 뒤 약 5마일 떨어진 리들리에도 한인타운을 만들었다. 일제 강점기 동안 도산 안창호, 이승만 전 대통령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다뉴바와 리들리를 찾았다. 현재 리들리는‘한인 이민선조 공원묘지, 한인장로교회’를 잘 보존하고 2010년‘한인 이민역사 기념각’을 세우는 등 한인 방문객들을 환영하고 있다. 리들리시 한인 주요 유적을 둘러봤다.
■리들리 공원묘지
‘리들리 공원묘지’(1850 S Reed Dr. Reedley)는 도시 남서쪽 강가에 위치해 있다. 넓은 평원에 잔디도 잘 관리돼 지역 주민들도 자주 찾는다. 이 공원묘지 6구역 중 남쪽 2~3구역에는 한인 이민선조 약 190명이 영면해 있다. 구한 말 고향을 떠난 이민선조들은 끝내 고향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이역만리 떨어진 리들리에 잠든 것.
고향을 그리워한 이민선조들은 같은 구역에 안치돼 자신들이 ‘한인’이란 사실을 알리고 있다. 1870~80년에 태어나 1945년 광복 전후 세상을 떠난 이들 묘비에는 ‘한글’로 적힌 이름이 또렷하다. 때문에 이 지역을 찾은 한인들은 100여년 전 선조들의 삶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구학조(1877년 5월17일~1947년 5월16일, 한국 통영 출생), 남범(1882년~1947년 7월15일, 하만 출생), 고응도(1884년-1947년 10월31일, 강동 출생), 김현석(1887년 8월18일~1954년 11월19일, 평양 출생) 등 수많은 한글 이름을 보노라면 선조들의 웃음과 눈물이 담긴 이야기가 들리는 듯하다.
현재 한인 묘역에 안치된 선조들을 찾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이를 보다 못한 재미 중가주 해병전우회는 ‘중가주 애국선열 추모위원회’(회장 김명수)를 꾸려 20년째 매년 메모리얼 데이와 8.15 광복절에 추모식을 열고 있다. 40여회원은 방문객이 한인 묘역을 찾기 쉽도록 태극기와 고향의 봄 등 민요가 새겨진 대리석 의자 11개도 묘역 대로변에 설치했다.
■한인 이민역사 기념각
2010년 11월 리들리시(시장 메리 패스트)와 중가주 한인역사연구회(회장 차만재)는 일제 강점기 당시 한인 거주지에 ‘한인 이민역사 기념각’(Korean Heritage Pavilion·196 N Reed Ave. Reedley)을 세웠다. 이민역사 기념각은 리들리시 부지 무상제공(10만달러), 한국 국가보훈처 9만달러, 한인 모금 3만달러로 만들어졌다.
리들리시가 제공한 650여야드 부지에는 14피트 높이의 독립문을 중심으로 애국지사 10인의 기념비가 두 줄로 늘어서 있다. 서대문 독립문을 4분의 1로 축소한 모형 상단에는 ‘독립문’이란 한글이 뚜렷하고 양옆 국기 게양대에는 성조기와 태극기가 365일 휘날리고 있다.
독립문 앞 작은 광장에 늘어선 애국지사 10인 기념비는 ‘이승만, 안창호, 윤병구, 이재수, 김종림, 김호, 한시대, 김형순, 송철, 김용중’ 선생의 사진과 활동상을 영어와 한글로 알리고 있다. 이들은 모두 다뉴바, 리들리를 중심으로 윌로우스, 맥스웰, 핸포드, 델레노, 프레즈노 등 중가주 일대에서 농사를 지으며 상해 임시정부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해외 독립지사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안혜련 여사는 1910년대 매년 여름 다뉴바를 찾아 포도를 땄고 리들리와 다뉴바 한인들은 1935년 이곳을 찾은 이승만·프란체스카 신혼부부를 위해 피로연을 열어줬을 정도다.
특히 이민역사 기념각은 한인 최초 백만장자가 된 애국지사 김형순ㆍ김호 선생의 ‘김 형제상회’(KIM Brothers)가 있던 자리에 위치해 있다. 기념각 바로 옆에는 김형순ㆍ김호 선생 선생이 살던 저택과 김 형제상회 한인 노동자 기숙사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민 초기 발자취 풍성
리들리시 박물관(1752 10th Street, Reedley)에는 한인 이민선조들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보관돼 있다.
박물관은 1903년 고종이 하와이 사탕수수 노동자를 지원한 이재수에게 발급한 여권, 1920년 쌀부자가 된 한인 김종림이 조국의 독립군 비생사를 양성하기 위해 한인 전투비행사 양성소를 설립했다는 윌로우스 페일리 신문, 한인 독립운동 각종 문서, 대한인국민회 보급 1920년 독립기념일 기념 리번 등 한국 현대사 사료를 전시 중이다.
박물관 맞은편 버게스 호텔(Hotel Burgess)에는 당시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머물고 간 2층 방이 현재도 프레지던트 룸으로 대여 중이다. 호텔 입구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과 이승만 전 대통령 활동을 알리는 동판이 새겨져 있다.
이밖에 김형순 선생이 헌납한 대지에 1938년 한인들이 새운 ‘한인장로교회’(1408 J St. Reedley)도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지금은 지역 주민들의 예배당으로 사용되는 이 교회는 당시 한인들이 자금을 모아 건립했다. <끝>
인터뷰
한인 커뮤니티 대변자역 자긍심
- 지역 ABC 방송 앵커 크리스틴 박
프레즈노 ABC 방송 메인앵커로 활약 중인 한인 2세 크리스틴 박씨(사진) 는 이 지역 한인사회의 자랑이다. 박씨는 다뉴바, 리들리 한인 뿌리 현장에서 선조들을 기리는 행사가 열리면 반드시 참석한다. 지역사회 유명 인사인 그는 한인사회 행사 사회를 전담한다. 한인들은 주류사회 인사들이 그와 사진촬영을 청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해 한다.
크리스틴 박씨는 “한인을 만날 때마다 제게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하신다”며 “한인 인구가 적은 프레즈노와 중가주에서 그분들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이 무한한 영광”이라고 말했다.
크리스틴 박씨는 여러 한인 행사의 사회자로 나서는 이유를 ‘한인 역사와 뿌리교육’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씨는 “우리가 미국 땅에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듯이 한인사회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며 “우리의 증조부, 고조부인 이민 선조들이 중가주에서 얼마나 열심히 일했고 미국 발전에 이바지했는지 모두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통영시와 자매결연 흐뭇”
- 메리 패스트 리들리 시장
리들리시는 지난 2004 경남 통영시와 자매도시 결연을 맺었다. 리들리시 역사와 한국 독립운동사에 빼놓을 수 없는 김 형제상회 공동창업자 김형순 선생의 고향이 통영인 점이 인연이 됐다. 통영시는 2010년 한인 이민역사 기념각 건립 당시 김형순 선생의 기념비를 헌정했다.
메리 패스트 시장(사진)은 “리들리시가 한인사회 뿌리 현장을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점에 긍지를 느낀다”며 “특히 한국 정부가 시의 역사인 기념각 건립에 재정을 지원해줘 고맙다”고 말했다. 패스트 시장은 “한국 이민 선조들의 삶을 우리 시도 잘 기억하고 있다”며 “인근 지역 한인들이 스스로 나서 공원묘지 한인 묘역을 가꾸고 매년 이들을 기리는 행사를 열어 참 감사하다”고 강조했다.
패스트 시장은 “한인사회 구성원들이 선조의 삶을 통해 오늘을 되돌아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인 부모와 자녀들이 이곳을 꼭 한번 방문해 그곳에 잠들어 계신 분들의 삶과 여러분의 역사를 직접 느끼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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