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 세계은행 총재 지명자·성김 주한미국대
▶ 김종훈 벨연구소 사장·석지영 하버드 법대교수 등
김용 세계은행총재 지명자.
세계은행 총재에 지명된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 한국인 최초로 주한
미국대사에 임명된 성 김, 벨연구소 역대 최연소 및 최초 외부인 출신
사장 김종훈, 석지영 하버드 로스쿨종신교수.
최근 눈부신 성공과 활약상을 보여 주고 있는 이들은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이민와 미국서 자란 한인 1.5세들이다.
김 총장의 세계은행 총재 지명을 계기로 한인 1.5세대들의 성공 스토
리가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청소년기에 한국·미국 어느 쪽에도 완전
히 속하지 못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하지만, 부모 세대와 달리 언어장벽이 없고, 한미 양국의 문화를 고루 이해해 사고의 폭이 넓다는 장점을 성공에 대한 의지로 발전시켜 미 주류사회의 핵심에 진출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부친을 따라 미국에 이민 온 성 김 주한 미대사는
35년만에 한미 수교 129년 역사상 첫 한국계 주한대사에 발탁됐다. 펜
실베니아대, 로욜라 법대를 거쳐 검사로 활동했던 그는 외교관으로 전
직한 뒤 한국계로서 첫 국무부 한국과장, 첫 대사급(6자회담 특사) 발탁 등 늘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13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벨 연구소를 이끌고 있는 김종훈 소장
역시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를 따라 미국에 온 1.5세. 밤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 하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를 거쳐 메릴랜드대에서 통상 4~6년 걸리는 공학박사 학위를 2년 만에 마쳤다. 그가 창업한 ATM 통신장비 벤처기업 유리시스템즈는 루슨트 테크놀로지스가 10억 달러에 사들였고, 이는 김 소장을 미국 내 400대 부자 반열에 올려놨다.
6세 때 미국에 석지영 하버드 법대 교수는 2006년 33세의 나이로 하
버드 법대의 첫 한국인 교수가 됐다. 2010년에는 아시아계 여성으로는 이 대학의 첫 종신교수가 됐다.
지난해 머리에 총상을 입은 가브리엘 기퍼즈 하원의원의 수술 집도를
맡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애리조나대 의대 외상외과전문의 피터 리
박사, 이명박 대통령 국빈 만찬 때 미셸 오바마 여사의 드레스를 만든 차세대 디자이너 두리 정, 민주당이 선정한 ‘떠오르는 정치인 10인’에 선정 된 마크 김 버지니아주 하원의원 등도 모두 한인 1.5세들. 1.5세대들이 이처럼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이민 1세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과 동기부여가 긍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1세들은 고생하면서도 자식들에게“ 너만은 꼭 성공해야 한다”며 교육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언어장벽이 없는 1.5세대들이 성공의지로 무장하고 한미 문화를 동시에 접한 문화적 배경으로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것이다.
■ 김용 성공 스토리
“살아남으려면 기술을 배워라 하지만 위대한 것에 대한 도전을 멈추
지 마라”아시안계 첫 아이비리그 대학 총장에 이어 비백인 최초의 세계은행 총재로 지명된 김용(53) 다트머스대 총장은 눈부신 성공 이면을 들여다보면 부친 김낙희씨와 모친 전옥숙씨의 영향이 절대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매우 실용적이었던 부친과 동양철학을 전공한 모친 등 실용적이고 가치 지향적인 삶을 각기 강조했던 부모의 상반된 가치가 오늘의 김용
총장을 있게 했다는 것이다. 김 총장은 의사가 된 이유를 설명할 때마다 대학 시절 부친과의 대화를 소개한다.
마틴 루터 킹 목사 암살 사건이 났던 아홉살 때 ‘세상의 불평등을
없애겠다’고 다짐하며 철학이나 정치학을 공부할 생각이었던 그가 의
대에 진학했던 것은 아버지의 절대적인 영향때문이었다. 브라운대 2
학년 방학 때 아들이 아이오와 머스카틴의 집을 찾자 아버지 김낙희
(1987년 별세)씨는“ 무슨 일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김 총장은 평소 소신대로 “철학이나 정치학을 하고 싶다”고 답하자 아버지 김낙희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슨 일을 해도 좋지만 우선 (의대)인턴이나 끝마쳐라. 한국계로서 미국에서 살려면 기술이 꼭 필요하다.”
반면, 퇴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모친은 거대 담론을 즐겨 얘기했
다. 모친 전옥숙씨는 경기여고 졸업 후 아이오와대에서 퇴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총장은 모친으로부터‘ 너는 누구인가’‘ 위대한 것에 도전하라’는 질문과 주문을 받았다고 했다.
“부모의 상반된 두 가치가 나를 만들었다”는 것이 김 총장의 고백이
다. 김 총장의 부친은 6·25 전쟁 당시 17세 나이로 고향인 북한 남포
를 떠나 홀로 월남해 서울대 치대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
내륙의 작은 백인 농촌마을 머스카틴에 정착해 아이오와대 치대 교수
로 일했다.
김 총장의 외조부는 평북 선천출신인 시조시인 전병택씨(2010년별세)로, 애국지사 원호회 등에서 활동했다. 외조모는 이경자 시인이다. 또, 그의 정신적 스승이 되어줬던 전헌(70) 성균관대 유학동양학부
교수가 외삼촌이다. 전 교수는 서울대 철학과, 프린스턴 신학교(석사)를 나와 뉴욕주립대 교수를 지냈다. 그는 뉴욕주립대를 거쳐 2004년부터 성균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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