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 때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하이든의 피아노협주곡을 협연하며 천재 피아니스트로 데뷔했던 정명훈은 그로부터 45년 후 서울시향의 상임지휘자가 되어 귀향했다. 로스앤젤레스는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지휘자로서 다시 태어난 곳, 그가 스승 칼로 마리아 줄리니를 따라 LA 필하모닉에서 부지휘자로 활동하며 자신의 음악 진로를 확정한 곳이 바로 LA다. 그러기에 이곳에서의 연주회가 특별하다는 정 감독은 LA 한인들에게 시향의 연주를 꼭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와의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LA필 부지휘자로 3년간 활동한 적 있어
많은 한인 청중들 만나볼 일 아주 설레”
-LA 필하모닉 초청으로 갖는 서울시향의 데뷔 연주입니다. 소감과 기대가 어떤지요?
▲LA라는 곳이 워낙 한국 분들이 많은 곳이라 특별히 가까운 느낌이 듭니다. 특히 내가 지휘를 시작한 곳이라 감회가 크지요. LA필 부지휘자로 3년간 활동하고 떠난 후에는 딱 한번 다시 간 적이 있고(2010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UCLA 로이스홀에서 가진 연주회를 말한다),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디즈니 홀의 음향시설이 좋다고 해서 기대가 크고, 시향이 아주 잘하고 있어서 한인 청중들에게 연주를 꼭 들려주고 싶습니다.
-칼로 마리아 줄리니가 LA필 상임지휘자로 있던 1978년부터 부지휘자로 활동했
었는데, 그때의 기억이나 30여년만에 다시 찾는 감회를 들려주세요.
▲당시 LA필 부지휘자로서 연주를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보통 부지휘자는 그렇게 연주를 많이 안 하는데 나는 무척 많이 지휘했고 경험도 많이 쌓았지요.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한인 관객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땐 여유가 없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은 좀 많아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시향은 6년 전 정 감독 부임 후 전체 오디션을 통해 새로운 오케스트라로 거듭났고 연주수준도 크게 향상됐습니다. 시향의 현주소를 평가한다면 어디에 와 있을까요?
▲내가 시작했을 때 생각했던 목표의 반 정도 왔습니다. 진짜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되는 일은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에요. 세계에서도 특별한 오케스트라, 뛰어난 오케스트라는 아주 드문데, 그런 수준으로 만들려면 여러 조건이 맞아야 합니다. 일단 단원 개개인의 수준이 아주 높은 레벨에 올라 있어야 하고, 이들을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는 지휘자가 있어야 하죠. 그리고 뒤에서 지원하는 서포트가 있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가 맞으면 훌륭한 오케스트라 되는 것은 확실하고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힘든 게 오케스트라 서포트 시스템이에요. 이제 시작이라 쉽지 않습니다.
-북한 은하수 오케스트라의 프랑스 공연이 세계적인 뉴스였습니다. 남북 합동공연의 첫 걸음을 뗀 그 감격을 전해 주세요.
▲내가 일평생 원했고 기다렸던 일입니다. 나만 아니라 한국민 전체가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북한 사람들도 마찬가지구요. 인간이란 다 같지 않습니까? 정치적 문제가 있을 뿐인데, 계속 해결 안 되는 부분은 어떻게 할 수가 없네요. 어떻게 해서든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야 하고 만나서 음악을 같이 해야 합니다. 아직은 남북한 합동연주가 이르다고 해서 프랑스에서 한 것이니까 이제 첫 스텝이죠. 앞으로도 계속할 생각이고, 올 여름엔 내가 지휘하는 아시아 필하모닉과 함께 연주하기로 했습니다(아시아 필하모닉은 정 감독이 95년 창단한 아시아 정상급 연주자들의 비상설 연합오케스트라).
-북한과 아시아 필하모닉이 올 여름 합동연주를 한다고요?
▲그러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가봐야지, 누가 알겠어요. 북한과의 일은 장담할 수가 없으니까.
-이번 북미투어 프로그램으로 드뷔시의 라 메르, 라벨의 라 발스, 차이코프스키 6번, 진은숙의 생황협주곡 등을 선정한 이유가 있는지요? 유럽 투어에서도 같은 레퍼터리였던 것 같고, 2년 전 로이스홀에서도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라 메르, 라 발스를 연주했습니다.
▲그랬던가요? 2년 전 연주한 곡들도 생각나지 않는군요. 투어할 때는 많이 연주해 본 곡이나 화려한 곡을 선택하게 됩니다. 시향의 라벨 연주는 레코딩해서 음반이 나왔고, 차이코프스키 비창도 곧 음반이 나올 예정이에요. 그만큼 자신 있는 곡들이지요. 사실은 이 투어를 원래 뉴욕에서 시작할 계획이어서 말러 심포니를 할까도 생각했는데 지난해에 시향에서 말러를 너무 많이 해서 이번에는 넣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시향이 말러 전곡 연주를 끝냈는데 말러 심포니 중에서 몇 번을 좋아하는지요?
▲2번, 3번, 6번, 9번을 특별히 좋아합니다. 4번도 꽤 좋아하고요.
-LA에서만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이 없어서 아쉽습니다. 일부러 뺀 것인지, 아니면 협연자의 일정이 안 맞거나 한 것인지요?
▲투어할 때는 프로그램을 2~3개 가지고 섞어서 하는데 LA 프로그램은 어떻게 선택했는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고, 방문 도시마다 섞어서 짜는데 어떻게 그렇게 됐나 봅니다(밴쿠버, 시애틀, 샌타바바라 연주에는 모두 진은숙의 생황협주곡이 우웨이 협연으로 포함돼있다. 이 곡은 3년 전 두다멜이 LA필 취임 후 첫 콘서트에서 연주한 바 있다) .
-서울시향, 라디오 프랑스, 아시아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이면서 최근엔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수석 객원지휘자로 선정됐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 여러 오케스트라의 수장 역할을 어떻게 매니지 하는지요?
▲다른 지휘자들보다 덜 하는 편이에요. 나는 유럽에서 30년 동안 살았고 지금은 유럽과 한국서 주로 활동하니까 생활의 80%를 한국과 파리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특별히 친한 관계인 드레스덴, 콘서트헤보우, 라스칼라 같은 오케스트라를 객원지휘하고 있죠.
-각 오케스트라의 음색과 특징이 다를 텐데 어떻게 이끌어가나요, 오케스트라 스타일을 존중하는지 아니면 통일된 스타일로 끌고 가는지요?
▲작곡가를 따라갑니다. 음악은 거기서 저절로 나오게 됩니다. 물론 한국 사람이 다르고 프랑스 사람이 달라서 그런 점들이 음악에 나타나긴 하지만 지휘할 때는 음악만 생각합니다.
-몇몇 인터뷰에서 60세에 은퇴한다고 말했는데 정말 내년에 은퇴할 계획입니까?
▲그건 좀 다른 이야깁니다. 나는 평생 음악밖에 없는 사람인데, 지휘를 그만두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다는 얘기였어요. 공식 직함에 얽매이지 않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음악활동만 하고 싶다는 것이고, 실제로도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한국인 가운데 좋은 음악가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지휘자는 아직도 소수입니다.
▲젊은 지휘자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시향도 젊은 지휘자들을 찾고 있어요. 시향은 지금 굉장히 잘하고 있어요. 두 번의 유럽 투어에서 격찬 받았고,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도이치 그라모폰(DG)에서 5년 정식 음반계약을 맺었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어요.
-아들도 지휘자라고 들었습니다.
▲아, 우리 셋째(정민)가 지휘를 해요. 사실은 오늘 예술의 전당에서 우리 부자의 연주가 겹쳤답니다. 나는 오페라하우스에서 시향과 ‘라 보엠’을 연주하는데 아들은 콘서트홀에서 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의 심포니를 지휘하거든요(알로이시오 오케스트라는 소외계층 청소년을 위한 음악교육 프로그램으로 정민은 오래 전부터 이들을 지휘해 왔다).
-LA는 해외 한인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인데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세요.
▲오케스트라를 하나 키우고 세계 수준으로 발전시키는 일은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합니다. 굉장히 힘든 일이죠. 우리나라는 아주 불쌍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시작해 지금은 잘 사는 나라가 됐어요. 여기서 한 단계 올라서 훌륭한 나라가 되려면 두 가지가 필요한데, 얼마나 다른 나라를 도와줄 수가 있나 하는 것과 예술적인 면에서 얼마나 발전할 수 있나 하는 것입니다. LA에 많은 한인들이 있고 성공한 분들도 많이 계시니까 우리나라에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이번에 연주를 들어보시고 서포트해 주길 바랍니다.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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