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온하고 쾌적한 분위기 일반 ER과는 완전 딴판 병원들“응급실 환자 20%가 노인, 특화 마케팅 당연” “치료엔 별로 도움 안되는 상술에 불과”비난도 일어
뉴욕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의 노인전용 응급실.
하루 종일 분주하게 돌아가는 병원 응급실은 도떼기시장을 연상시키기에 족하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정신머리 사나울 정도로 어수선하고 산만하다.
긴급 치료를 필요로 하는 환자가 들어오는 곳이다 보니 진료 절차 역시 정상적인 진행속도보다 두어 템포 빠르게 돌아간다.
그러나 맨해턴에서 가장 붐비는 병원 가운데 한 곳인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의 노인 전용 응급실 분위기는 전혀 딴판이다. 마치 외계에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조용하고 평온하다.
삑삑대는 의료기 소음도 들리지 않고, 기계작동을 알리는 깜빡거리는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종종걸음을 치는 수련의들의 모습 역시 눈에 띄지 않는다.
단 한 명의 자원봉사자가 마치 여객기 기내 승무원처럼 환자들 사이를 오가며 부드러운 대화로 긴장을 풀어주거나 수도쿠 퍼즐과 보청기 따위를 건네준다.
노인 전용 응급실에는 침대에 누운 환자들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도록 천창(skylight)이 설치되어 있다. 천창에는 뭉게구름이 한가로이 떠 있는 청록색 하늘이 한가득 펼쳐져 있다. 무성한 나뭇잎을 달고 서 있는 나무들도 보인다.
이곳의 천창은 실제 창이 아니라 천장에 붙여놓은 사진이다. 사진 뒤쪽에 달아 놓은 조명등이 인조태양의 역할을 해주는 탓에 낮에는 환한 청록색을 띠고 밤이면 불을 꺼 어두워진다.
이곳의 스카이라이트는 밤낮을 거꾸로 사는 노인들의 황혼증후군(sundowning)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설치한 일종의 조명치료 장치다.
상당수의 치매환자들은 밤과 낮을 혼동, 낮 시간대에 줄기차게 잠을 자고 밤에는 말똥말똥하게 깨어난다. 이렇게 되면 주변 환경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생체리듬이 완전히 뒤바뀌면서 치매기가 악화된다.
이제까지 나온 연구결과에 따르면 청록색 조명에 노출된 환자는 황혼증후군 증상이 둔화된다. 조명치료의 효과를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이 설치한 천창은 환자와 보호자들로부터 호의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
갑작스레 다리의 힘을 잃고 쓰러진 후 구급차 편으로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 응급실로 실려 온 필리스 스필버거도 노인 전용 ER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아름다운 천창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80대 중반인 필리스는 “다른 응급실과 달리 분위기 자체가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천창만 특별난 게 아니다. 응급실 바닥에 미끄럼방지 자재를 깔아 환자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했고 침대 매트리스도 욕창을 줄이기 위해 두껍게 만들었다.
또한 응급병실 커튼의 고리와 막대를 금속이 아닌 플래스틱으로 교체해 커튼을 여닫을 때마다 귀에 거슬리는 금속성 마찰음이 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했다.
환자는 병원 측이 제공한 아이패드로 간호사와 수시로 쌍방향 영상대화를 나누고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식사나 진통제 등을 요청할 수 있다.
2개월 전에 문을 연 마운트 사이나이의 노인 응급실은 뉴저지주 패터슨 소재 세인트 조셉스 리저널 메디칼 센터가 2009년에 개원한 노인 전용 ER을 본 따 만든 것이다.
그러나 노인 ER의 원조는 따로 있다. 메릴랜드주 실버스프링의 홀리크로스 하스피틀이 2008년 설립한 ‘시니어스 이머전시 센터’(Seniors Emergency Center)가 노인 응급실의 효시에 해당한다.
이 병원의 모그룹인 ‘트리니티 헬스 시스템’(Trinity Health System)은 중서부를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12개의 노인 응급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오는 6월까지 6곳을 추가로 오픈할 예정이다.
마운트 사이나이를 비롯한 병원들이 노인 전용 응급실을 운영하는 이유는 역시 재정적인 고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선 응급실에 들어오는 노인 환자의 비중이 크다. 마운트 사이나이 병원 관계자들에 따르면 응급실 환자의 15~20%가 65세 이상이다. 게다가 빠른 속도로 인구 고령화가 진행 중이라 노인 환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앞으로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아닌 말로 병원에서 이윤 마진이 가장 높다는 응급실의 주된 고객이 노인층이니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마케팅에 힘이 실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10년 연방 의회를 통과한 의료개혁법에 규정된 메디케어 수가 산정방식도 병원 측이 노인 환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의료개혁법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만족도 검사에서 나온 점수와 치료를 받고 퇴원한 환자의 재입원율 등을 병원 측에 정부가 제공할 의료 수가의 산정기준으로 활용한다.
특화된 서비스로 노인 환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아야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는 결론이다. 마운트 사이나이의 응급실 과장인 앤디 자고다 박사는 “아직 개원한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노인 전용 응급실에 대한 평가는 이미 고공행진을 펼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 병원의 노인 응급실로 들어가려면 65세 이상으로 자신의 이름을 확실히 기억해야 하며 1에서 5까지의 표준 응급상태지수에서 3이상의 판정을 받아야 한다. 가장 심각한 중증 환자지수는 1이다. 또한 응급실로 찾아오기 전날까지 자력보행이 가능했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는다.
노인 전용 응급실에 대한 희의론이 큰 것도 사실이다.
뉴저지 캄튼 소재 ‘아워 레이디 오브 로드 메디칼 센터’의 응급서비스 과장 알프레드 샤체티 박사는 “노인 전용 병동이 환자 치료에 보탬이 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며 “실질적인 치료결과 개선 효과 없이 포시즌 호텔 같은 시설을 갖추었다는 사실만을 앞세워 환자 잡기에 나서는 것은 얄팍한 상술에 불과하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마운트 사이나이의 울라 황 박사는 노인 전용 응급실은 치료 결과를 개선하는 확실한 효과를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응급실 치료를 기점삼아 고령자들의 건강은 가파른 하강곡선을 그린다. 통계에 따르면 응급실에서 나간 환자들의 27%가 3개월 이내에 ER에 다시 들어오거나, 병원에 입원하거나 혹은 숨진다.
황 박사는 일반 ER의 경우 ‘신속한 처리’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고령 환자들을 치료하는데 종종 과실과 오류가 범하게 된다고 말했다. 상당수의 노인들이 여러 가지 약을 한꺼번에 복용하고, 한 가지 이상의 질환을 앓는 경우가 많지만 ER 스태프가 이와 관련한 상세한 정보를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급하게 시술과 처방이 진행돼 문제를 일으키거나 의도된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황 박사는 노인 전용 응급실을 운용할 경우 이같은 과오를 줄일 수 있어 ER 재방문율을 기존의 20% 수준에서 1%선까지 낮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노인전용 응급실에 대한 찬반논쟁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이를 설립하는 병원의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다른 무엇보다 돈이 보이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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