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들 희생양... 괄목성장, 정치력 길러야
▶ 인종주의 ^ 경제적 불만 팽배 로드니 킹사건이 기폭제 역할 LA타임스 등 주류언론 잘못된 보도 자세도 요인으로 작용 커뮤니티 경제력 ^ 한인경관 숫자 당시와는 엄청난 차이 히스패닉과의 관계 개선 등 더불어 사는 인식이 절실
마약에 취해 경찰과 추격전을 벌이던 흑인 로드니 킹이 LADP 소속 백인 경찰들에게 잡혀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인근 주민이 이 장면을 비디오에 담아 한 TV방송을 통해 폭로됐다. 미국의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폭행에 가담한 4명의 백인 경관이 폭행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는 결과가 나왔다.
1992년 4월29일 시미밸리 법정에서 배심원들은 이들 경찰들에게 무죄를 평결했다. 잠시후 흑인 밀집지역인 사우스LA 놀만디와 플로렌스 거리에 몰려든 흑인들은‘톰스 리커’에서 첫 약탈을 시작하며 분노를 폭발시켰다. 인근 흑인교회에서는 탐 브래들리 LA 시장 등 흑인 지도자들이 재판 결과를 비난하는 집회에 참석해 연설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비폭력 항거를 주장했다. 그러나 그들의 비폭력 호소는 인종과 경제, 지역 차별에 지쳐 있던 흑인들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흑인들은 폭력과 방화, 약탈의 수단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그들의 화살은 연방이나 시정부도 아니고 폭력을 가했던 경찰도 아니었다. 어제까지 이웃하며 살아가던 한인들의 심장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LA폭동으로 3일간 2,800여 한인업소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약탈과 방화. 흑인사회의 분노를 틈타 죄의식 없는 덤덤한 얼굴로 버젓이 약탈을 자행하던 히스패닉 이웃들. 이를 지켜만 보던 공권력. 피와 땀으로 일궈왔던 모든 것이 고스란히 무너져내리는 아수라장. 발만 구르며 바라만 봐야 했던 한인들의 절규. 고통스런 암흑의 터널을 지났던 한인들 머릿속에 남아 있는 폭동의 전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기간이라는데 한인사회는 그 때의 소용돌이에서 무엇을 배웠고 어떻게 변모했나‘. 과거, 현재, 미래’를 주제로 전문가들과의 좌담회를 통해 폭동 20년을 재조명 했다.
과거
- 한인을 포함해 53명이 숨졌고 한인 비즈니스만도 2,800여곳이 파괴됐다. 폭동의 원인을 분석한다면.
유 : 폭동의 원인은 미국사회의 구조적인데 있다. 인종 간의 격차, 인종주의가 두루 작용했다. 흑인들은 항상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고 상대적 위치도 어려운 곳에 있다. 미국은 백인들이 주도한다. 백인들은 항상 소수계를 생각하면서도 심리적으로는 우월주의 젖어있다. 흑인사회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높은 실업률, 생활고 등의 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이같은 불균형과 불만이 몇 가지 사건과 겹치면서 폭발하고 만다. 4.29폭동도 로드니 킹 사건을 기폭제삼아 폭발한 것이다.
한 : 61년 발생한 LA 와츠 폭동 때는 흑인 형제에게 고속도로 순찰대
(CHP)가 교통위반 티켓을 발부하는 과정에서 LAPD가 개입되면서 촉발했다. 당시 더운 날씨라서 거리에 나와있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흥분하면서 폭동이 일어나 무려 143시간 동안 무법천지가 됐었다. 항상 못 살고 피해의식에 사로 잡혀 있던 흑인들이 조그만 사건으로도 감정을 폭발시킨 것이다. 4.29폭동도 한인과 흑인 간의 갈등이 아니라 흑인들의 당하고만 있다는 피해의식과 가난에서 오는 사회 불만의 표출이라고 봐야 한다.
- 한인들의 피해가 극심했다.
유 : 비율적으로 한인들이 많이 당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타인종들의 피해도 많았다. 당시 한인 인구는 미국 전체 80만명 정도(90년 센서스)였다. 1980년대 후반들어 매년 3만~4만명의 한인들이 이민 오는 이민 피크를 맞고 있었다. 이민 연령이 5년 남짓한 소규모 한인 상인들이 많았고 이들이 비교적 비즈니스가 용이한 흑인 지역에 모여들었다. 당연히 흑인 문화나 미국사회에 익숙지 못했다. 폭동이 발발하자 흑인들 옆에 있던 한인들이 피해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한인과 흑인간의 인종문제로 인한 것이라는 시각은 잘못이다.
한 : 일하는 한인들의 모습을 보면 대단했다. 주 7일을 일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피해의식을 갖는 흑인들은 한인들이 미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또 한인들이 흑인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고 흑인들도 한인 문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불만의 상대가 이웃에 있던 한인들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다.
- 흑인폭동을 한·흑 갈등에서 비롯됐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유: 미디어의 과정 보도가 문제였다. LA타임스 등 주류사회 기자들은
흑인사회의 속사정을 모른다. 흑인사회에 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했던 백인 기자들도 많다. 이처럼 가보지도 못했던 곳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잘못된 보도를 가져온다. 한인들이 흑인사회에 들어가 어떤 생활을 하고 어떻게 어려움을 당하면서 비즈니스를 하는지 모른다는 말이다. 당연히 한인들에 대한 편견이 있게 된다. 따라서 백인이 보는 시각만을 보도한다. 흑인 소녀를 총으로 쏜 두순자씨 사건 등등 당시 한인 업주들과 흑인 고객들과의 크고 작은 마찰도 잘못 분석 보도한 것이 폭동의 원인을 제공했다.
- 폭동으로 한인사회가 배운 것이 많다.
유 : 4.29를 통해 미국사회에 대해 많이 알게 됐다. 그 후 많은 개선이 이루어졌다. 또 흑인지역을 탈피해 타지역 비즈니스로 눈을 돌리는 사업체 이동의 효과도 얻었다. 잃은 것도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다. 뭉쳐야겠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달았다. 인종과의 관계개선. 주인의식. 정치력 신장의 필요성등 많은 것을 배웠다. 폭동 직후 피해자 돕기 위한 성금이 대거 답지했고 평화대행진에 수만명의 한인들이 참여하는 단합된 모습도 보였다.
강 :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정치력 신장도 절실하게 느꼈다. 당시 웨스트LA의 전자제품 체인점인 서킷시티에서 근무했었다. 15년 전 이민 왔으니 30대 중반의 나이였고 한인들과는 거리가 먼 곳에서 있었다. 미국이라는 국가에서 한 커뮤니티가 전부 없어진다는 생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당시 할 수 있었던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이때 쓰라린 경험이 내가 정치에 뜻을 두는 기회가 됐다. 후에 나의 저서를 통해 92년 폭동이 나의 인생의 변화를 주는 주요 계기가 됐다고 기술했다. 정치력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것이다.
한 : 당시 한인타운을 관할하는 윌셔 경찰서 형사과에 근무 중이었다. 경찰서 옆 한인 밀집 스왑밋이 불에 타고 약탈 당하는 것을 보고 있으면서 울분을 감추지 못했고 답답하기만 했다. 당시 경찰서에는 150여명의 병력이 있었지만 아무 일도 못했다. 그러나 아무리 잘 훈련된 경찰력으로도 대규모 폭동을 막을 수는 없다. 레이커스 경기 때도 보았지만 작은 수의 갱단들이 작은 소요를 벌이는 데도 대처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곤 한다. 소요 진압이 그만큼 어렵다. 스스로 지킬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교훈이었다. 자경의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 지난 20년간 한인사회는 폭동 때 피해 방지를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여 왔다. 또 당시 한인들의 위상이나 비즈니스 패턴도 크게 변했다.
강 : 한인사회가 20년 동안 장족의 발전을 거듭해 왔다. 과거가 짧은 기억으로 남지 않는다. 한인사회의 현주소를 냉철히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를 찾아 잘 대처해 오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한국이 잘 사니, 이곳에서의 위상도 높아졌다. 주류정치인 어느 누구나 ‘안녕하세요’쯤은 할 정도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직도 ‘한인 참석자가 없다’는 주류 정치인들의 불만 섞인 목소리가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미국은 참여를 중요시 하는 나라다.
유 : 당시에는 이민 5~10년 차에 남의 건물에 세들어 장사하는 한인들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건물주도 많아졌고 사업체도 커졌을 뿐 아니라 수적으로도 많아졌다. 예전에 한인들이 많이 했던 노동일들을 이제는 히스패닉 등 타인종들이 맡고 있을 정도로 사업과 생활패턴이 바뀌었다. 다인종 사회에서의 관계개선 노력이 더 필요해 졌다.
한 : 한인 경찰관들도 많아졌다. LAPD만 해도 내가 81년 경찰에 입문
할 당시 한인 경관이 6명 정도에 불과했다. 지금은 200여명이 넘을 것이다. 또 각 지역마다 한인 경찰관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한인들이 문화적 차이로 엉뚱한 피해를 보는 일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폭동 재발 가능성은 있는가.
강 : 4.29폭동 때와 같은 한인들의 피해는 없다고 본다. 커뮤니티가 많이 성숙해졌고 남들을 고려하는 것도 달라졌다. 정치력도 아직은 부족하지만 20년 전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유 : 가능성은 항상 있다. 특히 최근과 같이 경기가 안 좋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상대적으로 가난한 지역 주민들의 불만이 간단한 사건만으로도 엉뚱하게 폭발할 수 있다. 예전에는 흑인들과의 문제가 있었다면 이제는 히스패닉계 등 타인종 고용도 늘어나 그들과의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
- 한인사회 현주소를 진단한다면.
강 : 정치적 부분이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곳곳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어바인 시의회에는 나를 포함해 2명의 시의원이 있다. 세리토스에도 한인 시의원이 탄생했었고 주류사회 곳곳에 진출한 한인 정치인들이 상당히 많아졌다. 한인사회의 목소리뿐 아니라 한인 문화까지도 대변할 수 있게 됐다. 어바인시만 하더라도 8년 전 한인 마켓이 한 곳도 없었지만 이제는 소수계 마켓이 4개나 된다. 20년동안 장족의
발전을 했다.
유 : 한인 이민은 1963년 존슨 대통령의 이민 개혁법 이후 1960년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으니 이민 역사는 불과 40년 정도에 불과한 젊은 커뮤니티다. 1850년부터 시작된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훨씬 역사가 짧지만 그들 못지않게 의욕이 넘치고 있다. 앞으로 미국 내 최고라는 유대인 커뮤니티까지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다. 1,000송이 꽃들이 한꺼번에 피어나는것 같다. 대단히 긍정적이다.
한 : 당시나 지금이나 주요 변화는 없다고 본다. 폭동 후 이민 온 한인들이 많다. 이들은 폭동에 대해 잘 모를 수밖에 없다. 다인종 화합과 융화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아무리 설명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인종 간의 문제가 한 두 사람의 그릇된 행동으로 발발할 수도 있다. 당시의 참혹한 현장을 알리는 사진 전시회하는 등 뼈아프게 배운 교
훈을 되새기는 범 커뮤니티적 교육이 필요하다. 과거를 잊는다면 과거는 되풀이 된다.
미래
- 리커, 마켓 등 폭동 피해를 당한 한인들에게 LA 시의회는 각종 규제
를 만들어 이들의 재기를 막았다. 정치력 부족을 절감했다. 한인 정치력신장은 잘되고 있는가.
강 : 1.5세 단체들이 더 성숙해졌고 또 주류 법조계나 정치계에 진출하는 2세들도 많아졌다. 정치는 아직 1세가 우세하지만 2세들은 연령적으로 발전해 가는 단계에 있다. 정치는 돈이 안 된다. 이때문에 정치입문을 꿈꾸는 많은 2세들이 경제적문제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에게 경제적 지원을 할 방법이 아직은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양적으로 기대할 시기가 아직 못된다.
유 : 2세 정치인들이 나오기는 아직 이르다. 한인 2세들의 중심 연령이 이제 40세 정도다. 1970년 전후 출생이지만 당시 한인 이민자들은 많지 않았을 때다. 10년 후면 될 것이다. 평균 연령이 50세에 가까우면 많은 한인 2세들이 정계에 진출할 것이다. 그래도 주류 비영리단체에 상당히 많이 활약하고 있다. 검사도 많고 정치계에도 진출이 크게 늘고 있다. 현재는 과도기다.
- 한인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유 : 인종간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이제 다수는 라티노가 됐다. 한인타운은 한인만의 것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좀 더 주인의식을 갖고 타커뮤니티를 받아줘야 한다. 한인타운 북서쪽에 자리 잡은 방글라데시 커뮤니티까지도 환영하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더불어 사는 사회가 돼야 한다. 일만 열심히 하고 영어도 못하고 돈만 아는 사회는 이제 그만해야 한다. 이제는 미국사회의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돼야 한다. 더 이상 외국인으로 살아가면 안된다.
강 : 내일만 하면 된다는 의식은 버려야 한다. 더불어 사는 모습이 잘 조명돼야 한다. 우리들 스스로의 냉철한 비판, 문제점 지적. 한인들의 현 모습을 정립해야 한다. 코리안 아메리칸으로서가 아니라 지역을 더 넓혀 아시안 아메리칸이라는, 더 큰 커뮤니티로서 생각해야 한다. 오픈 마인드가 필요하다. 동참 융화의식을 가져야 할 때다.
한 : 아직도 한인사회의 목소리가 LA 시의회 등 주류 정치계에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지각 있게 목소리를 모아 전달할 사람이나 단체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개인적으로 경찰 후원회장직을 맡게 됐는데 맡게 된 동기도 돈만 주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요구해야 겠다는 생각에 맡게 됐다. 경찰은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폭동같은 소요가 일어나도 한인 경찰관들이 나와 한인타운만 지킬 수는 없다. 한인 스스로가 지키는 자경단이 필요하다. 폭동 당시 9가와 웨스턴 샤핑몰에서 총들고 지키던 사진을 보면서 감격해 하는 외국인도 많아. 지진 등 재해 때 모든 것이 마비될 때를 대비해야 한다. 커뮤니티의 숙제라고 본다.
< 김 정 섭 기 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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