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의 터전 커피샵 화마에 잃고 어떻게 사나 막막 결국 집도 차도 뺏기고 20년 간 무수한 일 겪어 상처 딛고 잘 자란 자녀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울뿐…
▶ 그날의 그 현장을 가다 6가와 웨스턴 - 유제성씨의 경우
1992년 4월29일, 6가와 웨스턴의 현재 미스터 커피 자리에서 ‘PD 커피샵’을 운영하고 있었던 유제성씨는 사우스 LA 지역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유씨는 다음날 자신의 업소가 모두 불에 탈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1992년 4월30일 그때 제 나이가 서른 아홉 살이었죠. 이곳 상가에는 한인업소 10곳이 비즈니스를 하고 있었어요. 정오 무렵이 되자 웨스턴 남쪽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더니 상가 남쪽에 불이 붙더군요. 뭐 어떻게 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유씨는 그날 오후 자신이 운영하던 커피샵이 잿더미가 되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다. 집기를 챙길 시간도 없었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 당했다”는 그는 시 당국의 행태를 생각하면 지금도 화가 난다.
“소방차, 응급차가 한인타운에 있었어요. 한데 우리 상가가 불나는 것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더군요. 새까만 잿더미만 남은 가게를 보는 심정이 어땠겠어요”
자신의 커피샵이 불탄 자리에서 20년 만에 커피를 마시는 유제성씨 모습은 담담했다. 폭동이 잠잠해진 뒤 보상은 제대로 이뤄졌을까. 유씨는 “스몰 비즈니스론은 가능했지만 제대로 된 보상은 받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4.29 폭동 직후 유명 정치인들이 LA 한인타운을 찾았다.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도 LA 한인타운을 방문해 한인사회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한인사회가 정치력을 펼치기엔 미력했다.
유제성씨 가게를 찾은 댄 퀘일 부통령의 부인은 “보험은 들었느냐”고 물었다. 유씨는 “불에 탄 가게를 본 한인들은 마음의 상처가 컸다”며 “주류 정치인들이 계산적으로 위로를 하던 모습에서 아쉬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유씨는 폭동 후 20년이 지났지만 잊지 못하는 정치인이 한 명 있다. 당시 한인 정치인 중 가장 먼저 폭동 현장을 찾아온 김대중 전 대통령이 건넨 말은 지금도 힘이 된다고 유씨는 말했다. 유씨는 “주류 정치인들이 형식적인 위로였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진심이었다”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으니 낙담하지 말라’는 위로에 따뜻한 정을 느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제성씨 가족은 재기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다. 상가 재건축이 시간을 끌자 유씨는 부동산 에이전트로 나섰다. 집 몇 채가 에스크로가 진행 중이었는데 노스리지 지진이 발생했다. 결국 손님들이 안전문제로 에스크로를 취소했고 유씨는 수입이 전무한 상황에 놓이게 됐다.
“가정에 수입이 없으니 집과 자동차를 뺏겼죠. 남매가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하더군요. 너무 답답해 혼자 차를 몰고 새크라멘토까지 무작정 달려보기도 했습니다…”
유씨는 이렇게 폭동 후 수많은 일을 겪고 어느새 20년이 흘렀다. 유제성씨는 “폭동은 없는 사람들의 분노”였다며 “그들의 분노로 한국인의 아메리칸 드림이 빼앗긴 사실은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씨는 “이민사회에서 한인사회가 서로 돕고 정을 나누는 공동체로 화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힘든 사람에게 따뜻한 손길을 건네고 한인 2세들의 성공을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제성씨는 폭동 당시 청소년기를 보낸 한인 1.5세, 2세들을 생각하면 늘 미안함이 앞선다. 아빠 엄마 가게가 불에 타고 갑자기 무일푼이 된 가정의 몰락을 바라본 아이들에겐 ‘평생 상처’로 남았기 때문이다.
“4.29 폭동이 이제는 빛바랜 아픔이고 상처지요. 하지만 당시 아이들 마음의 생채기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어요. 이민 1세대의 꿈인 ‘새싹’들이 많이 아팠습니다. 눈부신 발전을 한 한인사회가 다시는 그런 아픔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에서 교훈을 찾기 바랍니다”
유제성씨는 현재 LA 한인타운에서 ‘포니운전 교통위반자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20년 전 당시 초등학생이던 남매는 장성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했다. 초등학교 때 불에 탄 가게 그림을 그려 부모의 마음을 졸이게 했던 딸은 UC 샌디에고 사회학과를 수석으로 졸업, 로스쿨 진학을 앞두고 있다.
유제성씨는 “폭동 후 20년이란 삶은 비극도 아니고 희극도 아니었다”며 “남매가 반듯하게 자라준 모습을 볼 때마다 인생이란 것이 ‘인내’가 필요한 긴 여정이라는 생각을 자주한다”며 웃었다.
<김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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