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약물로 정신 잃으면 대부분 구급차 도착 전 사망 경관·중독자 가족에 지급… 지금까지 1만여명 구해 “사회가 마약남용 수용하는 셈” 반대론도 만만찮아
▶ 뉴욕·샌프란시스코 등 188개 지역서 시행
그는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왔다. 어머니의 응급조치가 조금만 늦었어도 마약에 찌든 워렌의 삶은 28년 만에 속절없이 막을 내렸을 것이다. 마약 과용으로 정신을 잃게 되면 이미 절반은 죽은 목숨이다. 급격한 호흡저하 현상이 뒤따르기 때문에 곧바로 응급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숨이 끊어지게 된다. 관련 통계가 보여주듯 헤로인이나 옥시콘틴 등 마약성분의 처방약을 과다하게 복용한 후 실신상태에 빠진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구급차가 도착하기 전에 사망한다. 이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은 그야말로 촌각을 다투는 시간과의 싸움이다.
린다가 아들 워렌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은 카운티보건소가 제공한 마약 해독제 덕분이었다.
“운 좋게도” 헤로인을 과다하게 흡입한 아들이 집 마당에 썩은 고목처럼 나뒹구는 광경을 목격한 린다는 책상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해독제 분사기를 꺼내들고 한달음에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아들 곁에 쪼그리고 앉아 펜처럼 생긴 소형 분사기를 그의 콧구멍 안에 집어넣은 뒤 두 차례 해독제 분말을 쏘아주자 불과 수분 만에 워렌이 눈을 떴다. 의식회복과 동시에 사라졌던 얼굴의 핏기도 돌아왔다.
린다가 아들에게 사용한 해독제는 나르칸(Narcan)
이라는 브랜드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소비자들에게는 날록손(naloxone)이라는 제네릭 명칭이 더욱 친숙하다. 날록손은 헤로인과 옥시콘틴을 비롯한 강력한 진통제의 영향을 상쇄하는 효과를 낸다.
나르칸이나 날록손은 구급차 요원들과 병원 응급실 의료진이 마약 중독자들에게 지난 수십년간 정기적으로 사용해온 약품이다.
그러나 공중보건 관리들은 수년 전부터 이 약을 일부지역의 경관과 소방관은 물론 마약중독자의 가족에게도 무료로 제공해 오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약을 과다하게 사용한 환자들에게 신속한 응급처치를 하기 위해서다.
의식을 잃은 마약 중독자는 응급실에 도착하거나 신고를 받은 응급구조팀이 현장에 도착하기 이전에 호흡곤란으로 숨질 위험이 높다. 따라서 중독자의 가족에게 해독제를 무료로 제공해 줌으로써 발생 가능성이 높은 비상사태에 대비하자는 의도다.
경관이나 소방관에게 날록손을 지니고 다니도록 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언제 어디서 의식을 잃은 마약 중독자와 맞닥뜨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마약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결성된 전국 그룹인 ‘함 리덕션 코올리션’(Harn Reduction Coalition)의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지난 1996년 시카고에서 처음으로 해독제 무료 배부가 시작된 이후 1만여명이 이 프로그램 덕에 목숨을 건졌다.
물론 저항이 없을 리 만무하다.
반대론자들은 중독자들이 해독제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마약사용을 수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입장을 보였다.
오래 전 AIDS 확산을 막기 위해 마약 중독자들에게 깨끗한 주사기를 배부해 주기로 했을 때 제기됐던 반대논리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워렌과 그의 어머니는 생각이 다르다. 린다는 “카운티 보건국에서 해독제를 주지 않았더라면 그 날 아들은 관 속으로 들어가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에 위치한 베스 이스라엘 메디칼 센터의 진통의학 과장인 러셀 포테노이 박사는 “집에서 약물과용으로 쓰러진 환자를 응급실까지 데려올 시간이 없다”며 “따라서 어떻게 해야 환자가 호흡저하로 숨지기 전에 치료를 할 수 있을까가 늘 고민거리였다”고 털어놓았다.
1999년에서 2009년에 이르는 지난 10년 사이에 헤로인 과용에 따른 사망자 수가 1,725명에서 3,278명으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는 점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확대하는데 힘을 보탰다. 연방질병통제센터(CDC)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같은 기간 아편 성분의 진통제 과용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4,030명에서 1만5,597명으로 거의 네 배나 증가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나온 결론이 바로 해독제 배포였다. 1996년 시카고에서 첫 선을 보인 이 프로그램은 현재 볼티모어, 뉴욕, 샌프란시스코, 등 전국 188개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다.
날록손은 알콜이나 코케인에는 효과가 없지만 옥시콘틴, 퍼코세트, 바이코딘 등 강력한 처방 진통제의 치명적 영향을 씻어준다.
미국 이외에 영국, 우크라이나, 러시아와 카자흐스탄 등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미국에서 해독제 무료 배포는 주정부와 지방자치 단체의 보건국, 혹은 중독자들을 돕기 위한 지원그룹이 담당한다.
매서추세츠 약물남용 방지국의 힐러리 제이콥스 부국장은 “약물과용으로 아이가 쓰러지는 광경을 목격한 부모와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매서추세츠에서는 2007년에 시작된 날록손 무료 배포 프로그램으로 1,300명이 목숨을 보존했다.
날록손의 1회분 가격은 16달러. 매서추세츠주 공중보건국이 매년 무료로 공급하는 날록손은 84만1,000달러어치에 해당한다.
매서추세츠주 퀸시의 경관들은 2010년 말부터 날록손을 지니고 다닌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후 퀸스 경관들은 69명의 목숨을 건져냈다.
순찰경관인 마이클 브랜도리니는 하루에 두 명의 목숨을 구한 적도 있다고 자랑했다.
그 가운데 한 명은 자신의 방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로 어머니에 의해 발견됐다. 두 번째 남성은 길 가에 쌓아둔 눈 더미 위에 누워 있었다.
둘 모두 해독제 사용이 단 몇 분만 지체됐어도 확실히 죽은 목숨이었다.
브랜도리니는 소방관과 경관, 패러메딕 등 이른바 1차 대응자들에게 날록손을 지급하는 것은 현명한 조치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중독자들과 가족에게 이를 나눠주는 것은 잘못된 처사라는 견해를 밝혔다. 해독제가 수중에 있으니 안전하게 마약을 사용할 수 있다는 그릇된 메시지를 전달할까 우려되기 때문이다.
2년 전 어머니에 의해 ‘구조’된 월렌은 “당시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을 때 고맙다는 생각보다는 화가 났다”고 실토했다. 마약이 제공하는 황홀감 대신 심한 독감 증상 같은 금단 증상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패스트푸드점을 털었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후 마약 흡입이 문제가 돼 재수감된 그는 최근 옥중 인터뷰에서 “현재 난방기 배관기술 훈련을 받고 있다”며 “어머니와 날록손이 내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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