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미<용커스 거주>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교회의 Sunday school이나 한국학교에 다니며 한글을 곧잘 배워 Mother’s Day에는 아주 짧은 문장이지만 한글로 씌여진 편지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삐뚤빼뚤 “엄마 고맙습니다. 사랑해요” 그 감격적인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러다가 학년이 높아질 수록 학교공부에 밀려서 한글공부가 소홀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아이가 대학에 갈 즈음에는 나는 한국어로 아이는 영어로 서로 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가 말하는 한국어를 아이가 알아듣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했다.
대학에 진학한 후 아이는, K-pop을 알게되고,한국 드라마에까지 관심을 갖더니 놀라우리만치 빠른 속도로 한국어를 깨우쳐가고 있었다. 그래서 툭하면 기숙사에서 내게 전화를 걸어. “엄마 ‘관계자’ 가 뭐예요? ‘질서정연’은요? 등등…”뜻을 이해하기 힘들다며 물어오곤 했다. 아이가 발음하기조차 힘들어하는 단어도 많았지만 공자왈 맹자왈 말씀들이 난무하는 퓨전사극드라마도 얼마나 재미나게 보던지…그럴 때 마다 아이에게 그 단어를 우선 영어로 설명해 준 뒤에 그 단어가 가진 배경을 이야기해 주다보니 한자로 사용되는 우리 말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놀라게 되었다.
일전에 가까이 지내는 분들과 담소하는 자리에서 불쑥 불거져나온 주제가, 과연 한자가 우리 생활 속에 얼마나 뿌리를 내리고 있는가라는 것이었다. 우리가 쓰는 말은 토씨만 빼면 거의다 한문이라는 말이었다. 살짝 두통이 수반되는 아주 흥미로운 얘기였다.
내 세대는 다행이도 중학교 3년간 한문시간이 교과과목에 들어 있었다. 그래서 신문을 읽어도 뜻이 막힘없이 이해되곤 하는데, 들어보니 한자교육 자체를 전혀 접해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또한 학교에서 배운 한문으로 한문의 깊은 뜻까지 알기는어렵다. 중학교 1학년 첫 한문시간에 선생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한자로 알아오라는 과제를 주셨었다. 부모님께 여쭤보니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며 아주 복잡하기 짝이 없는 내 이름의 가운데 자를 알려주셨다. 거의 그리다시피 적어서 가져가니 선생님의 표정 또한 묘해지시는 것이었다.
내 이름 석미의 석자는 돌 석자가 아니라, 석가모니(釋迦牟尼)할 때 ‘釋’자다. ‘잘 풀린다’란 뜻이 들어 있다. 딸로 태어난 애기가 못 생겨서 ‘석’자를 끼워 넣으셨다니, 재미있기도 하고 그나마 그 이름 덕에 내가 잘 이렇게 잘 진화된 것이 아닌가 감사하기도 하다.우리가 대화할 때 가끔씩 사용하는 사자성어같은 것은 짧은 단어 안에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어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를 간략하게 표현할 수 있어 좋지만, 대화도중 영어를 통역하듯 단어를 설명해야 하는 웃지못할 촌극이 생기기도 한다. 이래저래 한자를 빼고는 우리의 기본적인 언어생활 조차 곤란하다.
그런데 ,중국과 혈맹인 North Korea는 언제서부터 그렇게 한자를 될수록 배제하며 순수한 한글로 많은 단어를 만들어 쓸 생각을 했을까? 가끔 미디어를 통해 그들이 쓰는 말을 보는데, 익숙하지 않아 웃음도 나면서도 정답게 들리는 건 우리가 피를 함께 나눈 동족이어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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