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철학교수)
작년 오월 중순 우리 부부는 3주 여정으로 그리스와 터키를 여행했다. 찬란했던 고대 문명의 요람을 방문한다는 흥분 속에 많은 책을 읽었고, 방문 할 곳을 조심스럽게 미리 선정해서 공부하고 여행을 준비했다.
지나간 2000년 서구 문명의 결실은 사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룩한 업적에 기초한 것들이 대부분 이다.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철학, 과학, 수학 등 우리의 실생활과 관련 된 분야에서 그리스인들의 업적을 제외 한다면 남는 것이 별로 없을 정도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걸었던 아고라(Agora)의 폐도를 걸으면서 그들의 목소리가 들릴까 올리브 나무 아래 눈을 감고 명상도 했었다.
그리스 뉴스가 요즘 지면을 덮고 있다. 희망이 없어 보인다. 실질적으로 파산한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자기 정파의 이익만 주장하고 위기를 극복 할 정부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선거를 치른다 해도 형편이 나아 질 것 같지도 않다.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처해있어도 분열을 일삼는 모습에 가슴이 아프다.
민주주의의 산실인 그리스가 이제는 실패한 민주주의 대표적인 표본이 된 셈 이다. 일찌기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경고하던 플라톤의 목소리가 이제야 들리는 듯하다. 플라톤은 민주주의가 어리석은 정부 형태의 표본이라고 생각 했다. 원칙이 아니라 방편으로 국가를 다스리고, 신념이 아니라 무지한 민중들의 인기에 편승하여 국가를 운영하는 제도는 실패 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왜 그리스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에 대해 많은 이론과 의견이 있을 수 있을 것 이다. 그러나 간단히 상식적으로 말하면 인기에 편승한 정부가 수입보다 지출을 많이 하고, 빚으로 빚을 갚은 결과라고 요약 할 수 있다. 크레딧 카드의 빚을 다른 크레딧 카드에서 빌린 돈으로 갚은 들, 수입이 없는 그 빚은 늘어 갈 수 밖에 없었던 것 이다. 인기에 편승한 복지국가의 비극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지난 수십 년 그리스를 이끌어 온 파판드레우스 부자는 좌경 경제학 교수 출신이었다. 그들의 사회당 정부는 대를 이어가면서 근검절약 보다는 소위 ‘퍼주기’식의 복지정책으로 정권을 유지해 왔다. 권력을 잡은 정치인들에게는 그 권력을 유지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는 듯하다. 헛된 구호와 무책임한 정책을 내세워 인기 몰이로 이어온 정권이 파산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수많은 아테네 중심가의 유리창들이 부서져 있었다. 매일 계속되는 노조원들의 데모 때문에 깨어진 것 이다. 그 곳에서 만난 한 한국회사 주재원 부부는 그리스를 희망이 없는 나라로 단정했다. 사람들이 일은 하지 않고 게으르며, 관공서에 가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서 일하기가 힘들다고 했다.
식당에서 여행일정과 기록들을 담은 가방을 잠간 사이에 모두 도둑 맞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호랑이에 물려가도 정신 똑바로 차리면 산다는 옛 말이 그리스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오토만 제국을 쫒아내고 독립한 자랑스럽던 그리스가 아닌가. ‘그리스인 조르바(Zorba the Greek)’가 생각난다. 어려운 오늘의 시련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겨내기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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