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정체성은 미국에 살고잇는 영원한 한국인”
어찌 보면 그는 중부뉴저지의 작고 평화로운 마을 럼슨에 37년째 살면서 넵튠에 사무실을 둔 평범한 신경내과 의사로 보일런지 모른다. 주말이면 정원을 가꾸고, 가족과 함께 세일보트를 타고 낚시를 가고, 취미인 카메라에 미국의 이름다운 자연을 담기도 하는 가정적인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이민 1세로서 미국사회와 한인사회 양쪽에 적극 참여하는 봉사자이기도 하다. 한가지 자기영역에만 충실하기도 힘든 세상에 두 커뮤니티를 향해 봉사한다는 것, 양립시키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만큼 양쪽 소사이어티에 대한 이해와 식견을 지니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그는 미국에 살고 있는 영원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놓지 않는다. 또한 인술을 다루는 의사로서 갖추어야 할 윤리의식으로 무장한 전문의 이상철이다.
우선 그는 미국의 로칼 정치, 사회, 문화 부문에 낯설지 않은 착실한 시민이다. 본인이 속해있는 뉴저지 먼머스 카운티 메디칼 소사이어티의 전 회장으로서 주정부 및 지역정치인들과 깊숙한 교류를 해왔다. 의사들이 많이 지지하고 있는 공화당원으로서 미국정치에도 참여하고 있다. 미국에서 인턴, 레지던트 과정을 두루 거치고 대학병원 임상교수와 개업의로서 내후년이면 미국생활 50년을 맞는다.
지역 한인사회에 대한 참여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70년대 중반 먼머스카운티 이튼타운을 중심으로 결성된 동포친목회 한미상협회 창립멤버로 시작해 뉴저지중앙한인회, 1980년에는 뉴저지한인회(뉴저지총연의 전신) 4대 회장을 역임했다. 브랜단 번 주지사 시절 8월15일을 한국의 날로 지정하면서 맺은 뉴저지 주정부와의 인연을 살려 후임 짐 플로리오 주지사 등과 자연스레 교류하며 6년간 뉴저지 소수민족 자문위원으로 한인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노력했다.
크리스틴 휘트먼 주지사 시절엔 뉴저지 주립의대인 로버트 우드 잔슨 대학 정교수로서 뉴저지의사회의 추천에 따라 주 의료감독관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한인회장 직함을 갖고 주지사와 독대 한번 못하고 2년 임기를 마치는 요즘 한인회장들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소수민족 자문위원 시절 그는 리버티 스테이트 팍에서 열린 민속축제와 남부 뉴저지 글라스보로 칼리지서 열린 소수민족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이때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친지들과 함께 한민족 문화교육재단이라는 단체를 창립해 초대회장을 맡았다. 동포들의 민원이 있을 때는 언제고 지역 정치인들과의 네트웍을 이용해 해결노력을 기울였다. 한인사회에 관한 일이라면 무리를 해가면서 참여하는 의리파였다.
전문분야인 신경내과 계통 환자들을 돌보는 일 외에 주일이면 교회에 처방전을 한웅큼 들고나가 어려운 교인들에게 무료인술을 펼치는 봉사를 35년째 하고 있다. 초창기 고 임영진을 비롯, 방수영, 최충선, 고창선, 하재선, 김기섭 등 지역동포 8인이 창립한 맘모스은혜연합감리교회를 통해서다. 3년전 장로는 은퇴했지만 선교를 위한 무료진료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환자는 그가 누구든, 어떤 환경에 처해 있든 치료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는 지론을 굳게 지켜나가고 있는 그는 창립시부터 참여해온 재미한인의사들의 전국조직 미주한인의학협회(KAMA) 23대 회장으로서 그의 임기 중인 지난 1998년 12월 임원진과 함께 의약품과 의료기구, 항생제와 소화제, 비타민, 혈압약 등을 북한에 전달하고 돌아온 일이 있다. 이때 당국과 의학교류 및 학술세미나를 함께 열기로 약속했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지속되지는 못했다.
KAMA는 요즘도 가족을 동반한 1,000여 한인의사들이 매년 12월말 미 전역을 돌아가며 주최하고 있는 종합 학술대회를 통해 상호 정보교환과 친목을 다지고 있다. 이상철은 지난해 이 단체가 출판한 ‘재미 한인의사 1백년사(The Centennial History of KOREAN-AMERICAN Physicians in America)’의 6인 편찬위원 중 한사람으로 참여했다.
지역사회 활동으로 그는 먼머스카운티 미국의사회 회장으로서 전미주 한인신경내과학회를 창설하는 한편 한국의 신경내과 전문의들과 교류를 하면서 대한민국신경내과학회 공로상도 수상했고 1991년에는 해외동포에게 수여하는 국무총리 표창 등 여러 부문 상을 받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는 성공한 이민자들에게 수여하는 엘리스 아일랜드상을 2001년에 받은 것을 영예롭게 생각하고 있다. 이런 과정들을 거치며 그는 자신이 속해있는 지역사회와 한인 커뮤니티 리더로서, 봉사자로서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올해로 미국생활 48년을 맞는 그로서 반세기가 되는 2년 후 쯤 의미있는 무언가를 생각해 보기도 한다. 한국에서 가톨릭의대를 마치고 1964년 인턴과정으로 미국에 도착한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처음 워싱턴에 떨어져 프리드맨 병원에서 인턴을 수료하던 일, 뉴욕의대 및 주립대학 병원에서 신경내과 레지던트 및 수석 레지던트 수료. 컬럼비아대 신경내과 연구원 수료. 퀸즈종합병원 일반내과 수료 중 아내 다이애나를 만나 43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현재, 80년대 중국으로 날아가 침술을 배우면서 양의학에 한의술을 접합시키려 노력하던 일, 자신의 사진 취미를 살려 ‘닥터스 아트 전시회’의 오가나이저로서 11년째 미술전시회 개최하고 있는 상황, 암투병의 시아버님을 극진하게 간호했던 파란 눈의 부인 다이애나와 든든한 두아들 데이빗(비주얼 아티스트)과 빌(의사)에 거는 기대, 이런 것들이 타고난 봉사자 이상철의 현주소이다.
▲2002년 워싱턴 의사당 앞에서 벌인 미국 의사들의 시위에 참가한 이상철. 의료소송법의 부적절한 법안에 반대한 이 사진은 6월14일자 뉴욕타임스, 스타레저, 애스버리팍 프레스 등에 실렸다.
▲1973년 주미한인의학협회 창립 준비위원들, 앞줄 왼쪽부터 이형모, 초대회장 최제창, 현봉학, 조기옥, 뒷줄 왼쪽부터 첫번째가 이상철, 안봉환, 정래관, 김윤범, 노용면, 이호영, 김재호.
조종무<국사편찬위 해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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