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 인터뷰
▶ 2012년 카파미술상 수상 설치작가 신진 씨
2012 카파 미술상 수상자인 신진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은호 기자>
헤진 옷-복권티켓-약병 등
버려진 잡동사니 기부 받아
일상의 추억 살려내 호평
“우리 삶은 반복된 일상이지만 매순간‘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쓰는 생활 용품이나 물건을 기부 받아요. 이것을 모아 작품으로 만들면 사람들은 각자의‘추억’을 공유하는 것이죠” 유망한 한인 예술가를 지원하는 카파미술재단(Korean Arts Foundation of America)이 2012년‘카파 미술상’ 수상자로 선정한 설치작가 신진(Jean Shin)씨는 한국에서 태어나 6세 때 동부 메릴랜드 지역으로 이민 온 1.5세로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이 대서특필한 차세대 주자다. 현재 미국화단에서 가장 촉망받는 신진작가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고 있으며 한국 미술계에서도 초청 전시 등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22일 카파 미술상 수상 차 LA에 온 그를 만나 예술과 삶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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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어요. 해진 청바지는 기부 받았죠. 청바지 수십 벌의 밑단만 잘라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작품에 일상을 살아온 이들의 ‘흔적과 이야기’가 모인 셈이죠”
신진 작가의 말은 명쾌하되 한 번쯤 곱씹게 만든다. 예술의 거창한 담론이 아니라 ‘기억’을 이야기했다. ‘너와 내가 살아 왔고 그 흔적에 ‘추억’이 담겨 있지 않느냐’는 단순한 물음이다. 다만 삶을 질주하듯 바쁘게 사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신 작가는 그 흔적을 대신 수집해서 작품으로 내놓는다.
헌옷 옷감을 엮어 만든 그물망, 더 이상 기능을 못 하는 신발, 각 가정에서 쓰던 키보드 자판, 복권티켓 등 쓰레기로 전락하는 일상의 물건과 용품이 예술작품 재료가 된다. 신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면 언뜻 친환경을 강조한 재활용 설치작품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신진 작가의 작품은 잘 다듬어진 시를 음미하듯 ‘함축적 의미’를 찾게 만든다.
여기 무대 위에 수백 개의 빈 약통이 있다. 그 약통이 성을 이루고 조명으로 뭉쳤다. 노란색 통에 흰색 뚜껑. 통 옆 흰색 라벨에 적힌 ‘아무개, 몇월 몇일 구입, 투약효능: 위장약, 두통약, 심장약, 혈압약 등등’ 기록은 한 개인의 투병 역사를 보여준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약통을 따며 바랐을 희망과 좌절, 고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진 작가는 “개인의 흔적인 담긴 버려진 물건에서 추억을 끄집어내 교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 작가는 인생이란 여정의 분비물을 허투루 보지 않았다. 그 점을 높이 산 미술계는 그가 ‘현대사회의 정체성’을 낯설게, 그리고 살갑게 표현했다고 칭찬했다.
결국 예술로 다시 태어난 삶의 흔적들이 우리가 살아온 세상을 기록해 놓은 셈이다. 그는 “추억과 이야기가 담긴 일상용품을 사람들은 잊고 지나친다”며 “우리란 존재, 일상의 모습을 새롭게 돌아보길 바라본다”고 말했다.
신진 작가의 예술작품은 따뜻하다. 신 작가는 사람들이 기부한 헌 물건을 다듬고 정리했을 뿐이다. 생명이 없는 현대사회 물품, 기능을 상실한 생활용품에서 아름다움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군락을 이룬 그 물건들이 이야기를 재잘거린다. “나 좀 봐주세요. 여기 당신이 있어요”
‘로토티켓으로 만든 도시’는 신 작가 유년시절 추억을 담았다. 이민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 땅을 밟았다. 미래 보장이 없는 아메리칸 드림은 인생 한 방 로토와 닮았다. 이민자들이 하루 일과를 끝내고 한인 리커스토어에서 긁은 수십 장의 로토는 아이러니다. 버려진 로토티켓을 쌓아 도심을 만든 신 작가는 “처음에는 아메리칸 드림을 긍정하는 도시를 만들었는데 요즘은 사람들이 물거품 경제를 떠올린다”고 전했다.
각 가정에서 기부한 수백 개의 트로피는 ‘일상의 영웅’으로 거듭났다. “평범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곧 영웅”이라는 신 작가는 트로피를 노동자, 재봉사 등 여러 직업군으로 형상화해 보는 이를 웃게 만든다.
“내 안의 기억이 한국을 표현한다”고 말하는 신진 작가는 공공예술로 한국을 알리고 있다.
뉴욕 거리의 한 기차역 담벼락은 청록색 빛깔을 내뿜는 모자이크 벽화를 자랑한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모자이크 재료는 깨알 같은 한글과 구름 위를 나는 학 등 한국 도자기 조각 모음이다. 신진 작가는 “한국 문화와 정서를 뉴욕 사람들 시각에 맞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거리를 지나던 한인이 이 벽화를 볼 때 자신의 고향을 떠올리길 바랐다.
“한인 이민사회는 미국과 한국을 모두 경험했어요. 그만큼 두 나라 문화를 접목할 수 있죠. 한인 미술가들이 용기를 갖고 가능성을 실현하길 바랍니다. 저는 멘토가 되겠습니다”
<김형재 기자>
■ 신진 작가는
서울에서 태어나 6세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신씨는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가 미술계의 차세대 주자로 집중 조명한 바 있는 전도유망한 아티스트로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이 대학원에서 미술사와 비평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스코웨건 회화조각학교에서 회화와 조각을 공부했다. 헌옷, 신발, 안경, 컴퓨터 자판, 트로피, 복권티켓 등 버려진 사물, 생활 속의 물건들을 모은 대형 조각과 설치작품으로 현대사회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작품활동으로 주목받고 있다.
■ 카파 미술상은
카파 미술재단(KAFA)은 젊은 작가들을 발굴하고 지원하기 위해 1989년 미술애호가들과 컬렉터들이 설립한 비영리단체로, 카파 미술상은 미국에서 활발한 창작활동을 벌이는 코리안 아메리칸 아티스트들을 대상으로 2년에 한 번 실시되는 공모전이다. 역대 수상자들은 유명 설치작가 서도호 등 국제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미술가들이다. 카파상 수상자들은 곧 주류화단에서 인정받는 작가로 부상,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는 카파상이 행운의 상으로 알려져 있을 만큼 큰 영향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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