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연끊기 이벤트’ 커플들 증가
▶ 친지와 떠들썩하게… 단 둘이서… 자녀와 함께… 방법은 제각각이나 심리적 끝내기 효과는 확실 언젠가 이혼식 초청장이 보편화되는 날 올 지도
행위 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오른쪽)와 울레이. 이들은 지난 1988년‘관계정리’를 위한 공동 퍼포먼스를 마련했다.
행위 예술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레이는 지난 1988년 관계정리를 위한 공동 퍼포먼스를 마련했다. 12년간의 동반자 관계가 끝났음을 보여주는 의식이었다. 무대는 중국의 만리장성. 각자 만리장성의 양쪽 끝에서 출발, 서로를 향한 길고 고생스런 도보여행에 나선 이들은 90일 후 만리장성의 중간지점에서 만나 뜨거운 포옹을 나눈 뒤 쿨하게 갈라섰다. 이들의 이별의식은‘연인들: 만리장성 걷기’(The Lovers: The Great Wall Walk)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져 식자층의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아브라모비치는 후일 인터뷰에서“대단히 극적이고 몹시 고통스런 끝맺음이었다”고 회고했다.
인연이 끝났음을 알리기 위해 2,000마일을 행군할 정도의 시간과 기력, 열의를 가진 파경 커플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지만 나름대로 ‘갈라서기 의식’을 갖는 부부와 동거인들의 수는 뚜렷한 증가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렇다고 글로리아 게이노의 ‘난 괜찮아’(I Will Survive)가 주제곡처럼 반복해서 울려 퍼지는 가운데 웨딩가운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마가리타를 물마시듯 들이키는 난장판 ‘쫑파티’를 떠올려선 곤란하다.
대부분의 이별의식은 대단히 개인적이고 영적이며, 갈라선 커플과 그들의 가족이 실망과 분노, 상처를 떨치고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데 주안점이 놓여진다.
결혼주례 전문가인 바브라 비죠는 “새로 연분을 맺을 때 신랑과 신부는 성혼서약을 하고 서로 평생 함께 할 것을 약속하는 의식을 치른다”며 “이렇게 맺은 관계가 해체될 경우 이들을 이전의 서약에서 풀어주기 위한 또 다른 제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비죠는 자신도 이혼한지 15년 만에 끝내기 이벤트를 가졌다고 밝혔다. 파리 여행을 하던 중 그동안 차마 정리하지 못한 채 간직해온 결혼 팔찌를 세느강에 던져버린 것.
비죠는 “명치를 주먹으로 얻어맞은 듯 늘 묵직하게 늘러 붙어 있던 고통이 팔찌를 버리고나서 말끔히 사라졌다”며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갖는데 대한 거부감이 수그러들었다”고 말했다.
일부 종교는 이혼과 관련한 의식을 마련해 두었다. 유대교는 랍비의 주재 하에 진행되는 예식이 있고, 유니테리언 유니버설리스트 처치는 ‘희망 의례’가 있다. 연합감리교도 이혼 의식을 제공한다.
가정문제 치료사인 리사 말렌은 “의식과 세리머니로 시작하는 결혼은 같은 방식으로 끝을 맺어야 한다”며 “인간의 심리는 끝맺음을 필요로 한다”고 강조했다.
2010년 퓨리서치 센터의 자료에 따르면 18세 이상 미국인 성인의 14%는 현재 이혼, 혹은 별거 상태에 있다. 이혼했거나 별거중인 미국인 성인들의 비율은 1970년대의 6%, 1980년대의 9%, 1990년대의 11%로 꾸준히 늘어났다.
이혼 의식은 다양하다. 친구와 가족들이 대거 증인으로 참석해 떠들썩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있고, 결별 커플의 남녀, 혹은 이들 가운데 어느 한 명이 이혼선서를 하는 단출한 방식도 있다. 가끔 이들의 자녀가 의식에 참석하기도 한다.
이런 의식은 법적인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이혼수속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심리적 끝내기 효과는 확실하다는 게 중론이다.
맨해턴에서 도서관 사서로 일하다 은퇴한 진 앤도(71)는 40년간의 결혼생활을 그들이 오랫동안 기거해온 아파트 인근의 미로에서 조촐한 세리머니를 갖는 것으로 마감했다. 각자 다른 통로로 입장해 미로의 중앙에서 만난 이들은 함께 한 긴 세월을 추억한 뒤 서로의 행운을 기원해 주었다.
앤도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정확히 어떤 얘기가 오갔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우리의 조촐한 끝막음 의식은 포옹으로 시작해 악수로 끝났다”고 말했다. 세리머니를 마친 이들은 이제 서로의 길을 간다는 의미에서 각자 다른 방향으로 미로를 빠져나갔다.
앤도 부부와 달리 샬롯 엘루에트의 이혼식은 유난스러웠다.
그로 그럴 것이 그녀는 뉴저지 몬트클레어에 위치한 ‘셀러브런트 파운데이션 앤 이스티튜트’의 원장이다. 이 단체는 크고 작은 각종 개인적 기념의식을 담당하는 전문 주례 인증기관이다.
7년 전 엘루에트는 자신이 이혼의 후유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 사람들의 지적대로 11년간의 결혼생활에 대한 깔끔한 뒷정리가 안 된 엉거주춤한 삶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위한 이혼식을 하기로 결심했다. “사실 이혼으로 심한 내상을 입었다”는 그녀는 “결혼 실패를 부끄러워해야 할 그 무엇으로 규정하지 않고 결혼기간을 내 삶의 귀중한 시간으로 간직한 채 새로운 삶을 향해 나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엘루에트는 뉴욕의 한 나이트클럽으로 80명의 친지를 초대했다. 참석자들이 미리 지급받은 형광봉을 흔드는 가운데 은은하게 반짝이는 칵테일 드레스를 떨쳐입은 엘루에트는 힘찬 드럼 소리에 맞춰 행사장에 입장했다.
단상에 오른 엘루에트가 전 남편의 성을 버리고 처녀시절 친가의 성을 되찾았음을 선언하자 그녀의 어머니가 “너에 대한 우리의 끝도 시작도 없는 사랑의 증표”라며 결혼반지 손가락에 ‘가족 반지’를 끼워주었다.
이어 참석자들은 한데 어울려 울고 웃고, 박수치고, 노래하고, 춤추며 묵은 체증을 덜어내는 방출의 시간을 가졌다.
소셜 미디어 사업판촉 상담원인 샤론 쇼어스(58)는 한 달 전 레드 록스 노천극장을 굽어보는 콜로라도 레익우드의 한 라지에서 전문 주례의 주재로 전 남편과 함께 이혼식을 가졌다.
지난 4월 10년간의 결혼생활에 마침표를 찍은 쇼어스가 전 남편에게 “감정정리를 위한 관계해체 의식에 참석해 달라”고 부탁해 마련한 자리였다.
이별 의식은 이글거리는 장작불 앞에 선 두 사람에게 주례가 두 가지 색실로 짠 끈을 하나씩 건네주는 것으로 시작됐다. 이어 주례의 지시대로 두 사람은 각자 돌아가며 마음속의 감정을 털어냈고 그 때마다 가위로 끈을 조금씩 잘라냈다.
두 사람이 마음속을 다 털어놓았을 때 그들의 끝은 반 토막이 되어 있었다. 주례는 가닥이 풀어진 끈을 가리키며 “이제 여러분의 삶은 말 그대로 실밥이 풀어졌다”며 “이제 각자 풀어진 실을 차근차근 다시 짜야 한다”고 말했다.
쇼어스는 의식을 마친 후 “감정소모가 생각보다 심했지만 해방감도 컸다”며 “둘이 함께 한 좋은 시간도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하고 상대의 미래를 축원해 주는 기회를 가졌다”고 만족해했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있는 경우 ‘인연풀이’ 의식이 더욱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였다.
열 살 때 부모의 이혼을 겪은 스테파니 데도비치(27)는 “당시 내 심장은 두 쪽으로 찢어졌다”며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고, 엄마가 도대체 왜 저렇게 행동하는지 혼란스러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나도 동생도 당시 확실한 끝맺음이 있었다면 조금은 견뎌내기가 수월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추세라면 언젠가 결혼식 초청장만큼이나 이혼식 초청장이 보편화되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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