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지기능 저하 보이면 다른 가능성 무조건 배제 탓 정밀검사 후 우울증·수면 무호흡증 등으로 밝혀져 가족이나 담당의사만의 성급한 치매 단정 자제해야
▶ 노인의 이상 행동 ‘알츠하이머’ 오해 많아
심각한 무호흡 수면증에 시달려온 마틴 로젠펠드(90·가운데)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으로 오해를 받았다.
마틴 로젠펠드(90)는 정확하기가 시계추 같은 사람이었다. 봉제업체 패턴사였던 그는 매사에 꼼꼼했다. 정리정돈 잘하고, 일처리도 빈틈없이 반듯했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했다. 우선 시간관념이 헝클어졌다. 예배를 드리려 한밤중에 시노고그로 달려갔다가 허탕을 친 후 집으로 전화를 걸어 식구들을 깨우는 소동이 몇 차례 반복됐다. 일상적인 태도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대화를 나누다 깜빡깜빡 졸았고 툭하면 물을 엎지르고 물건을 흘렸다. 말수가 적고 입이 무겁던 그가 끊임없이 구시렁대기 시작했다. 딱히 누구에게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웅얼웅얼 혼잣말로 중얼댔다.
아버지의 변화를 지켜본 셸리 로젠버그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셸리는 아버지가 가장 흔한 형태의 노인성 치매인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확신했다. 알츠하이머협회 그레이터 미시간 지부 회장인 그녀의 남편도 그렇게 믿었다.
그러나 정밀검사 결과는 달랐다. 마틴 로젠펠드를 변화시킨 가장 주된 요인은 수면 무호흡증이었다.
웨인 스테이트 유니버시티의 노인병연구소 소장인 피터 릭텐버그는 로젠펠드처럼 알츠하이머에 걸린 것으로 오해를 받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고 말한다. 병원의 오진도 늘어나는 추세다.
알츠하이머는 노년기에 찾아드는 ‘최악의 질환’으로 꼽힌다. 알츠하이머를 의심케 하는 조그마한 조짐만 보여도 일찌감치 폐인 취급을 당한다. 일단 현저한 인지력 기능 저하가 나타나면 다른 건강 이상일 가능성은 곧바로 배제된다.
릭텐버그는 지난해 12월 ‘임상 노인병학 저널’에 게재한 보고서에서 알츠하이머 환자로 오인된 노인 두 명의 사례를 소개했다.
이 가운데 한 명은 70세 후반의 남성으로 심한 정신적 혼란과 초조감을 보였다. 그러나 검사결과 알츠하이머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질환과 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세포염이 합작해 만들어낸 증상인 것으로 판명됐다. 87세의 여성도 갑작스런 혼란을 일으킨 후 주변사람들에 의해 치매에 걸린 것으로 치부됐으나 우울증이라는 진단이 떨어졌다.
릭텐버그는 자신의 보고서에서 증상만으로는 알츠하이머를 정확히 짚어내기가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오진이 자주 발생한다고 말했다.
국립보건원의 부속기관인 국립노화연구원의 지원 하에 진행중인 장기 연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알츠하이머 판정 가운데 3분의 1이 오진인 것으로 드러났다.
호놀룰루-아시아 노화연구로 명명된 이 프로젝트에 연구원으로 참여중인 론 화이트는 “이제까지 검토한 알츠하이머 케이스 가운데 3분의 1은 완전한 오진으로 판명됐고, 또 다른 3분의 1은 부분적으로 잘못된 진단이었으며 나머지 3분의 1만이 정확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이 프로젝트는 1900년에서 1919년 사이에 태어난 남성 852명의 뇌 조직에서 알츠하이머와 관계가 있는 병소를 관찰하는 방식으로 지난 1991년 이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이들 852명 가운데 20%는 숨지기 전에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환자들이었다.
화이트를 비롯한 병리학자들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은 환자들의 뇌 가운데 3분의 2에서 노인성 치매와 밀접하게 연결된 병소를 확인했다.
그러나 이들 중 절반은 기억을 담당하는 뇌부분인 해마(hippocampus)에 상처를 입는 등 다른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화이트는 “우리가 알츠하이머라고 부르는 것은 종종 여러 질환들의 혼합된 진행상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웨인 스테이트 유니버시티 교육공학(instructional engineering) 교수이자 ‘암 생존자’인 알 엘더슨의 케이스도 여기에 속한다. 그가 처음 문제를 일으킨 것은 70대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지적이고 활기발랄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엘더슨은 아내인 조안나와 여행하기를 즐겼다.
그러나 호화 유람선 ‘퀸 메리’ 2호 편으로 영국으로 출발하기 전날 밤,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조바심을 쳤고, 다음날 새벽 2시 조안나에게 예약을 취소할 것을 요구했다.
조안나는 배가 새벽 5시에 출항 예정인데 무슨 소리냐며 그의 말을 묵살했다. 남편이 두어 달 전부터 밖으로 나돌기를 부쩍 꺼려하는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다른 특이증상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잠을 못자 짜증이 난 정도로 생각했던 것.
그런데 항해를 하는 동안 남편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사람들의 낯을 심하게 가렸고 불안증세를 보였다. 종합 진단 결과 그는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았다.
조안나는 “나이가 들고 여러 가지 건강문제를 지닌 환자의 경우 담당의사는 다른 의사들과 상의하지 않은 채 단독으로 결론을 내리는 경향을 보인다”며 “남편에게 알츠하이머 진단이 떨어진 것도 결국 같은 이유에서였다”고 말했다.
조안나는 다른 의사들의 의견을 구했고, 남편이 이런 저런 병증으로 한꺼번에 복용하던 18가지 처방약이 문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전문의들과의 상담을 거쳐 복용 약을 줄이자 그의 상태는 급속히 호전됐다. 조안나는 남편이 “마치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엘더슨은 80이 되던 해 알츠하이머가 아닌 폐렴으로 사망했다.
알츠하이머협회는 미국인들 가운데 540만명이 이 병에 걸린 채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한다. 릭텐버그의 할머니도 확진 판정을 받은 알츠하이머 환자다.
하지만 집계에서 누락된 진성 환자들도 상당수에 달한다. 가족들이 증상을 눈치 채지 못했거나, 치매가 의심되는 확실한 증상에도 불구하고 이를 확인하기 두려워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가지 않은 사례가 적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렇게 누락된 숫자보다는 오진이나 오해로 보태진 숫자가 더 많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앞서 소개된 로젠펠드의 가장 심각한 병증은 중증 수면 무호흡증이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초기 검사에서 의료진이 놓친 루이바디 치매증상이 무호흡증으로 크게 악화된 상태였다.
루이바디 치매는 시각처리 장애를 불러오는 동시에 정리정돈이라든지, 일을 계획하고 정신을 집중하는 능력을 저하시킨다. 또한 수면장애와 환각상태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츠하이머에 비하면 ‘관리’가 훨씬 수월한 편이다.
로젠펠드의 상태는 밤에 호흡기를 착용하는 간단한 조치만으로 극적인 변화를 보였다. 그의 딸 셸리 로젠버그는 “예전의 아버지를 되찾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알츠하이머를 짚어내기는 전문 의료인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다. 전문의들은 환자의 병증을 기초로 의심 가는 질환의 목록을 작성한 뒤 하나씩 범위를 좁혀가는 접근방식을 사용한다. 기억력이 흐려지고 인지능력에 이상이 생겼다고 무조건 치매로 단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 탓에 알츠하이머협회는 ‘균형 유지’에 신경을 써야 한다. 치매에 대한 일반의 경각심을 높이고 조기 치료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을 확신시키는 작업과 함께 환자의 가족과 의료인들을 대상으로 성급한 치매 단정을 자제토록 유도하는 캠페인을 동시에 벌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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