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명 중 2명이 졸업과 동시에 빚만 3만달러 육박 아무리 두드려도 취업은 허사 신용불량자 될판 일부는 부모집 신세, 파트타임 일하며 기회 엿봐
▶ 대졸 백수들 “학비융자 상환 막막”
나타샤 수마바트가 웨스트우드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서 사각모를 조정하고 있다. 이번 달에 UCLA를 졸업하는 수마바트는 일단 그녀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꽃가게 일을 거들 예정이다.
대학 졸업은 학창시절의 성과를 정리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시간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졸업은 학비 융자금을 계산하고 상환 방법을 궁리해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해마다 미국의 대학 졸업생들 가운데 3분의 2는 1인당 평균 2만5,000~2만7,000달러의 빚을 짊어진 채 학교 문을 나선다. 이들 가운데 10%는 무려 5만달러 이상의 대출금을 꺼나가야 하는‘청년 빚쟁이’들이다.
사실 졸업 직전 대출금 내역을 요약한 고지서가 날아들기 전까지 빌려 쓴 돈 때문에 애를 끓이는 학생은 거의 없다.
일단 고지서를 손에 쥔 학생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패닉이다. 불경기로 취업전망이 어두울수록 호들갑스런 반응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반면 졸업장이 취업문을 활짝 열어줄 것으로 확신하는 쪽은 비교적 차분한 반응을 보인다.
지난달 남가주의 사립대학 옥시덴탈 칼리지를 졸업한 벤 헤링턴-길모어(22)는 첫 번째 그룹에 속한다.
“재학 중에는 내가 빚쟁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는 그는 “학자금 고지서를 받아든 후 큰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미네소타 출신으로 국제관계를 전공한 벤은 변리사(legal assistant)나 행정보좌관으로 일하기 위해 20여개 법률회사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허사였다. 당장 올해 겨울부터 2만7,000달러에 달하는 학비 융자금의 만기가 돌아오는데 변변한 일자리조차 구하지 못했으니 바작바작 속이 탈 수밖에 없다.
그는 ‘대졸 백수’가 될 현실적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만큼 불안감도 커져간다며 “그렇게 많은 액수도 아니고, 고리대금도 아니지만 상환할 방도가 없다보니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게 된다”며 한숨지었다.
벤은 퍼킨스 론(Perkins Loan)과 스태포드 론(Stafford Loan) 등 연방 정부 학비융자 프로그램을 이용했다. 이 가운데 일부는 정부 보조로 재학기간에는 이자가 붙지 않지만 나머지 비보조(unsubsidized)융자금에는 차곡차곡 이자가 쌓인다.
정부보조 융자금은 대학 졸업시점으로부터 6개월 뒤에 만기가 돌아온다. 따라서 학자금 상환 연체로 일찌감치 신용을 망치지 않으려면 졸업 후 반년 이내에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
벤의 경우 나름대로 학교 측으로부터 재정 지원도 받고 양호한 학업 성적으로 장학금도 따냈지만 사립학교 등록금을 온전히 감당해 내기는 역부족이었다.
올해 옥시덴탈의 등록금은 무려 4만1860달러. 여기에 기숙사비와 식대, 소소한 경비까지 감안하면 거의 5만달러가 필요하다. 미국의 연평균 가구 소득에 해당하는 이 많은 돈을 학자금 융자에 의지하지 않고 자력으로 조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벤은 일단 코네티컷의 아버지 집으로 들어간 후 뉴욕 쪽의 일자리를 알아볼 계획이다. 그의 부친은 장로교 목사로 목회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남가주 인문계 사립대학 휘티어를 졸업하는 브리앤 오도허티(21) 역시 스태포드와 퍼킨스 융자금으로 3만5,000달러를 썼다. 학교 측의 적지 않은 지원과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고, 교내 일자리를 잡아 종종 주당 20시간씩 일도 했지만 연 3만달러를 훌쩍 넘는 학비를 마련하려니 어쩔 수 없이 대출을 할 수밖에 없었다. 올해 휘티어의 등록금은 3만6,632달러다.
졸업 후 한동안 시카고 교외의 부모님 댁에 얹혀살던 오도허티는 다행히 텍사스 오스틴 소재 첨단 기술업체의 영업개발부 직원으로 채용됐다. 마케팅과 영상통신을 전공한 그녀에게 딱 맞는 일자리다.
취업까지의 과정은 험난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온라인을 뒤졌고, 어디건 멀다않고 구직박람회를 쫓아다녔으며 얼굴에 철판을 깔고 동문회 연줄을 잡아당겼다.
오도허티는 앞으로 “다른 무엇보다 학자금 대출을 상환하는데 최우선 순위를 둘 것”이라며 졸업 후 10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연방 정부 융자금을 5년 이내에 청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달 UCLA를 졸업하는 나타샤 수마바트(22)의 빚은 2만9,000달러. 병리학을 전공한 그녀는 취업이 여의치 않다는 판단 하에 일단 아테시아의 부모님에게로 돌아가 꽃가게 일을 거들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졸업장을 따려면 올 여름방학에 필수전공 두 과목을 더 들어야 한다. 캘리포니아주정부의 공립대학 예산삭감에 정원 초과현상까지 겹쳐 전공과목을 제때에 이수하지 못했고, 이 때문에 추가 경비가 들어가게 됐다.
수마바트는 UC 장학금에 주정부 학비 보조금인 캘그랜트와 연방정부 무상 장학금 펠그랜트까지 받아 UCLA 등록금 1만2,192달러를 크게 줄이고 캠퍼스 커피샵 현금 출납원과 병원 접수창구 보조원으로 주당 15시간을 일해 생활비를 충당했지만 그 정도로 필요한 경비를 모두 조달할 수는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곧바로 대학원에 진학, 어려운 경제상황을 우회하며 학비 융자금 상환을 연기 받는 것이 최상의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는 수마바트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면 전공분야에서 그까짓 취업 하나 못하겠느냐”며 “상황을 보아가며 1~2년 뒤 대학원에 진학해 위생행정학을 공부할 요량”이라고 말했다.
옥시덴탈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크리스토퍼 베스트(21)는 무려 4만5,000달러에 달하는 연방학비 융자금과 민간 대출금을 갚기 위해 ‘티치 포 아메리카’ 프로그램에 참여, 미시시피의 공립학교에서 2년간 수학을 가르치기로 했다.
이 프로그램에 가입해 교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근무를 하면 ‘티치 포 아메리카’ 측에서 정부 학비 보조금의 이자를 대체해 주고, 상환기한도 연기된다. 게다가 3만달러의 연봉 외에 2년에 걸쳐 학비변제 지원금으로 1만700달러의 보너스를 제공받는다.
커리어를 쌓아갈 만한 일자리를 잡지 못한 대졸자에게는 그리 나쁘지 대안이다.
베스트는 시애틀에서 건설현장 십장으로 근무하던 부친이 실직으로 학비 지원이 중단되자 크레딧 유니언으로부터 1만1,000달러의 대출을 받았다. 당시 그는 퍼킨스 론과 스태포드 론 등 연방 학비 융자금으로 이미 3만4,000달러를 끌어다 쓴 상태였다.
현재 센추리시티의 투자관리 사업체에서 파트타임 직원으로 근무 중인 그는 최근 두 군데의 재정전문 기업들로부터 졸업 후 입사하라는 취업 제의를 받았지만 2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조건이야 아무래도 기업 쪽이 훨씬 낫지만 돈보다는 보람을 맛보고 싶기 때문이다. 베스트는 솔직히 재정쪽이 내가 원하는 분야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진로에 대해 좀 더 고민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학 교육은 단순한 취업수단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며 “나중에 전공분야로 돌아갈지 몰라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원치 않는 직종에서 일하기는 싫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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