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고기의 세계 독특한‘경고신호’
▶ 화학물질 배출로 동료에 알려 농도따라 두려움 크기도 달라
오스트리아 출신의 생태학자 카를 폰 프리슈 박사는 1930년대에 피라미 연구를 통해 상처를 입은 물고기가 냄새로 전달되는 화학물질을 분비해 다른 동료들에게 경고신호를 보낸다는 가설을 세웠다.
물고기 한 마리가 상처를 입으면 근처의 다른‘동료’들은 갑작스레 앞으로 내닫거나 얼어붙은 듯 제자리에 멈춰 서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 엉키듯 한 곳으로 몰린다든지 수면 위로 뛰어오르기도 한다. 무리 가운데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안다는 얘기다. 도대체 이들은 어떻게 사고나 위험을 감지하는 것일까.
물고기의 이상 행동을 가장 먼저 알아챈 인물은 오스트리아 출신의 생태학자 카를 폰 프리슈였다.
1930년대에 피라미 연구를 통해 이 같은 현상에 주목한 그는 상처를 입은 물고기가 냄새로 전달되는 화학물질을 분비해 다른 동료들에게 경고신호를 보낸다는 가설을 세웠다.
그러나 폰 프리슈 박사는 위험신호를 보내는 화학물질의 성분을 끝내 규명하지 못했다. 대신 그는 이 물질에 슈렉스토프(schreckstoff)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슈렉스토프는 영어로 scary stuff, 즉 ‘무서운 것’이라는 의미다.
프리슈 박사가 밝혀내지 못한 슈렉스토프의 정체가 최근 싱가포르 소재 ‘바이오메디칼 사이언스 인스티튜트’의 신경과학자 수레쉬 제수사산에 의해 부분적으로 드러났다.
제수사산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제브라 피시(zebra fish)의 피부점막에서 콘드로이틴이라는 당분자(sugar molecules)를 추출했다. 이들은 피부 손상으로 파편화된 당분자가 물과 결합해 다른 물고기들에게 ‘냄새’로 전달되면서 ‘경고행동’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냄새의 농도가 낮을 경우, 물고기들은 다소 불안스런 반응을 보인 반면 높은 농도에서는 움직임을 완전히 멈춘 채 한 시간 이상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제수사산 박사 팀은 또 당분자 조각에 노출됐을 때 물고기의 후각 신경구가 작동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이는 물고기가 ‘위험의 냄새’를 맡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다.
많은 하등 동물은 물고기처럼 냄새에 의존해 같은 종에 속한 무리에게 두려움을 전달한다.
동물세계에서 두려움은 위험신호다. 그러나 위험 신호를 보내는 물질이 무엇이고 어떻게 생성되며 어떤 방식으로 동료들에 의해 인지되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누구나 익히 알고 있는 위험신호는 벌과 개미의 것이다.
유럽 꿀벌은 벌침을 쏜 뒤 화학물질 혼합물을 배출한다. 이 혼합물의 주된 성분은 아이소펜틸 아세테이트로 불리는 분자로 다른 꿀벌들에게 냄새의 형태로 전달돼 경계감을 불러일으킨다.
제수사산 박사에 따르면 개미는 포름산과 n-undecane의 복합물을 방출해 동료들에게 위험신호를 보낸다. 이 위험신호 전달물질의 냄새를 감지한 개미들은 일단 움직임을 멈추고 안테나를 움직이다가 이내 급하게 이동한다.
적을 발견하면 이들은 공격적이 된다. 개미들이 위험한 대상에게 보이는 정확한 반응은 혼합물에 섞인 화학물질의 비율에 달려 있다.
성게는 몸이 박살날 때 위험신호 전달 물질을 방출해 동료들을 피신하게 만든다. 바다 달팽이, 멍게와 올챙이들도 유사한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이들이 내뿜는 위험신호 전달물질의 화학성분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2008년 스위스 로젠대학 신경과학자 마리 크리스틴 브로일렛 박사는 ‘사이언스’지에 게재된 논문에서 쥐의 코 끝에 포진한 신경세포 다발, 즉 룬버그 신경절이 경고 신호를 포착하는 시스템이라고 밝혔다.
브로일렛 박사도 위험신호를 잡아내는 시스템은 밝혀냈으나 신호전달 분자를 알아내지는 못했다.
콘드로이틴 파편은 제브라 피시에게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만 다른 동물들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한다.
제수사산 박사 연구실의 신경과학자 아제이 마투루는 ‘공포 페로몬’이 ‘종족 종속적’이라고 밝혔다. 이종간에는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적’에게 포착되지 않은 채 ‘친구’들에게 경고신호를 보내려면 ‘동패’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암호’가 돼야 한다.
독일 마르쿠스 화학생태학 연구소의 마르쿠스 스텐스미르는 “다른 환경에서 생활하는 동물들은 다른 종류의 신호전달분자를 필요로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비교적 덩어리가 큰 콘드로이틴 파편은 수중 여행은 가능하지만 대기를 통해 퍼져나가지 못한다. 다시 말해 육상동물에게 콘드로이틴은 위험전달 물질로서의 효용성이 없다.
사람의 경우 페로몬이 두려움을 일으킨다는 개념은 아직도 논란의 한 복판에 놓여 있다.
듀크 대학 메디칼 센터의 심리학 교수 무라리 도라이스와미 박사는 “과학자들의 99%는 인체에 페로몬이 존재한다는 것조차 믿으려들지 않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인체 페로몬 연구는 극히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딱히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아직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시각적인 신호와 사고, 기억 등이 인간의 공포행동을 유발하는데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도라이스와미 박사는 누군가에게 두려움을 유발시킬 만한 향수를 살포한다 해도 유해한 결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람은 ‘공포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인간은 후각보다는 시각과 경험을 통해 위험을 감지하고, 거기에 반응한다는 또 하나의 증거다.
제브라 피시에게 후각 신경구는 인간의 뇌 구조물인 하베누라와 유사한 해부학적 특성을 지닌다. 이는 물고기의 후각 신경구가 인간의 뇌 속에 자리 잡은 하베누라와 거의 비숫한 기능을 수행함을 뜻한다.
이전 연구에서 도라이스와미 박사와 그의 동료들은 제브라 피시의 하베누라 신호전달이 방해를 받을 경우 물고기들은 전기충격의 전망 앞에 더욱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는 결론을 끌어냈다.
하베누라가 인체 내에서 담당하는 역할은 아직도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다.
하베누라가 워낙 작은데다 뇌 속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자기공명영상(MRI)을 이용한 연구가 힘들다. 이 조직이 정확히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 알아내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뜻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하베누라는 스트레스, 통증, 초조감, 학습과 생식에 관여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기능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어쨌건 물고기에게 위험을 전달하는 위험신호 물질이 당분자라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위험의 냄새는 아무래도 달콤한 모양이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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