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년 인수 당시엔 기업관련 특종 팁도 귀띔
‘버펄로 뉴스’의 발행인 스탠포드 립시. 워런 버핏과 같은 80대로 40년 지기다. / 편집국장 마가렛 설리반(왼쪽)이 주재하는 아침 편집회의.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82)이 사양 산업으로 외면당하는 신문사의 주식을 사들여 화제를 모은 것은 지난해부터다. 버핏 자신이 거주하는 오마하의 지역신문인 오마하-월드 헤럴드를 2억 달러에 매입했고 금년 들어서는 63개 지역신문을 거느린 미디어 제너럴의 19.9%의 지분을 1억4,200만달러에 사들였는가 하면 3월말엔 48개 지역 일간지와 300개 주간지를 발행하고 있는 리 엔터프라이즈의 지분 3.2%를 매입했다.
소년시절 신문배달을 했던 이 억만장자의 신문투자는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워싱턴포스트의 상당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1997년엔‘버펄로 뉴스’를 인수한바 있다. 보통사람들이 존경하는 억만장자 버핏을 보스로 모시고 일하는 건 어떤 느낌일까, 뉴욕타임스가 버펄로 뉴스를 찾아갔다.
뉴욕 주 버펄로에 위치한 모래 빛깔 건물의 지역신문 ‘더 버펄로 뉴스’의 사내에는 이렇다 할 버핏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발행인 스탠포드 립시의 사무실에 걸려있는 소유주의 서명이 담긴 작은 사진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버핏이 1977년 사들인 후 지난 8년간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사실로 이 신문에 대한 그의 관심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최근 버핏은 버크셔 해서웨이 산하 모든 일간신문의 발행인과 편집인들에게 서한을 발송했다. 이 서한에서 그는 자신을 신문 “중독자”라고 표현하며 앞으로 더 많은 신문을 매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디지털시대에 흑자신문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선 확실히 모르겠지만 일부 도시의 신문들이 번창할 것은 확신한다고 말했다.
“내가 비법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도 전제했다. “미국엔 1,400개의 일간 신문이 있다. 누군가가 최선의 해답을 찾아낼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모방할 수 있다. 앞으로 2~3년 후면 신문들이 온라인과 인쇄, 양쪽으로 보다 개선된 운영패턴을 갖게 될 것이다”
버핏이 새로 인수한 신문사의 직원들은 벌써 15년 동안 그를 ‘보스’로 모셔온 ‘버펄로 뉴스’의 분위기를 궁금해 한다. 취재에 응해준 전·현직 편집 책임자들의 말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소유주의 간섭 없이 운영되는 흑자 신문”이다.
물론 소유주는 최신 윤전기 구입을 될수록 미루려하고, 편집국은 많은 언론상을 수상해온 질 높은 저널리즘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자원을 투자하기 원한다. 그러나 평소 로컬뉴스 강화를 강조해온 소유주 버핏이 지역언론 활성화와 지역뉴스 커버에 인색한 적은 없었다고 기자들은 입을 모은다.
버크셔 해서웨이 소유라 해서 불황을 피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11년 ‘버펄로 뉴스’의 수익은 930만달러였다고 노조는 말한다. 4반세기만에 처음으로 연수익이 1,000만달러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1980년대엔 연수익이 보통 5,500만달러였다.
수익하락으로 구조조정도 단행했다. 2009년 이후 100개 일자리가 감축됐다. 편집국 인원도 10년전 200명에서 지금은 140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감원 아닌 조기퇴직 등 바이아웃이 대부분이었고 버크셔 해서웨이가 관리하는 연금에 대해 불평하는 퇴직자들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종업원 주차료를 누가 지불하느냐 등에 대해 노사협상이 가열된 적이 있긴 했으나 편집국에 대한 건강보험은 전면 커버되고 있다. 임금도 1%이지만 인상되었다.
“우리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 적자로 피 흘리는 게 아니니까”라고 32년 근무하고 2010년 은퇴한 후 지금은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는 진 워너 기자는 말한다.
버펄로의 인구감소와 함께 신문의 구독도 하락했으나 (현재 주중 15만부, 일요판 23만부) 아직도 주민들의 절대 다수는 신문을 읽는다. 이 지역 가구의 70.9%가 ‘버펄로 뉴스’를 읽거나 본다. 미 전국에서 침투율 2위의 뉴스기관으로 꼽힌다. ‘미디어 오딧’의 데이터에 의하면 침투율 1위는 72.9%의 구독율을 기록한 아이오와의 ‘디 모인 레지스터’다.
1967년부터 1982년까지 ‘버펄로 뉴스’에서 기자로 일한 후 TV 기자, 연방검사, 세인트 보나벤처 저널리즘대학의 학장을 역임한 리 코폴라는 “버핏이 이 신문을 인수한 후 어떤 면으로는 이 도시를 지켜준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문이 없는 도시는 생각하기도 싫다. 그는 신문이 기울 때 수천수백만 달러를 쏟아 부으며 신문을 보호했다”고 말했다.
아직은 배달되는 종이 신문의 독자가 많지만 아이패드를 위한 새 편집을 선보이고 온라인 유료구독을 준비하는 등 디지털 분야의 투자를 늘리고 있으며 상업용 인쇄 사업도 확장 중이다.
아마 내년에는 종업원들이 건강보험료 일부를 부담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우려하는 립시 발행인은 그러나 버핏 회장이 그들을 도울 것을 확신한다고 덧붙였다.
“아마도 ‘버펄로 뉴스’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신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워런이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신문이니까”라고 립시는 말한다. 같은 80대인 두 사람의 우정은 40년 전 립시가 소유했던 오마하의 주간지를 버핏이 매입한 후 립시를 발행인으로 유임시키면서 시작되었다. 1973년 그 주간지 ‘더 선’은 자선단체 ‘보이스 타운’에 대한 심층보도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1977년 버핏이 버펄로 뉴스 인수하면서 립시의 경영팀이 함께 옮겨왔고 버핏도 신문제작에 보다 깊게 관여했다. 당시 취재 기자였던 코폴라에게 대기업 중역들이 회사 전용기를 개인 휴가 때 사용하면서 회사비용으로 처리하는 사례에 관해 기사를 쓰라고 팁을 준 것도 버핏이었다.
버핏은 당시 편집국장에게 노조와의 협상 비결에 대해서 조언했으며 회사 피크닉에 참석, 사원들의 달러 지폐에 서명을 해주기도 했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규모가 커지면서 버핏의 신문사 관여는 줄어들었지만 조언을 구할 때는 반드시 응답했고 신문이 각종 상을 받을 때마다 치하를 잊은 적도 없었으며 심층보도를 위한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편집 측면의 결정에 간섭한 적은 없었다.
워싱턴 ‘데일리 콜러’의 잡 오퍼를 사양하고 버펄로 뉴스를 택한 24세 젊은 기자 찰리 스펙트는 “우리 신문이 워런 버핏의 소유라는 사실이 안도감을 준다. 그분이 200세까지 사시기를…”이라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본보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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