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이카 자와드(23)는 뉴욕의 사라토가 스프링스에 거주하고 있다. 그녀는 올 봄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뒤 집중적인 항암치료를 받으며 골수이식 수술을 기다리고 있다.
싱그럽고 역동적인 나이
친구들은 들떠 출발하는데
나는 느닷없는‘빨간 신호등’
내 미래는 있기나 하는걸까
한창 거침없어야 할 20대 초반에 수레이카 자와드의 삶은 풀기 힘든 실타래처럼 헝클어졌다. 자와드의 인생에 난폭하게 끼어든 골수암은 마치 채권자처럼 그녀의 미래에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섰다. 멋대로 자와드의 삶을 압류한 셈이다. 암과 동거해야 하는 20대의 삶은 심리적으로, 물리적으로 감당하기 버거운 도전의 연속이다. 뉴욕타임스에‘방해 받은 인생’(Life Interrupted)이라는 제목으로 주간 칼럼을 연재중인 자와드의 이야기를 정리한다. <편집자주>
내 앞길에 놓인 미래는 탄탄대로처럼 보였다. 그 미래를 향해 프랑스로 떠나던 날, 난 공항까지 따라 나온 엄마·아빠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하는 것조차 깜빡 잊어버릴 정도로 잔뜩 들떠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첫 일자리를 잡아 파리행 여객기 몸을 실었을 때, 난 세상의 그 어떤 일도 능히 감당해낼 준비가 되어 있다고 굳게 믿었다. 충만한 자신감 속에 새로운 미래를 향해 첫 발을 내딛는 나의 발에는 세상 끝까지라도 달릴 수 있다는 결의를 보여주듯 새 구두가 신겨져 있었다.
그렇게 푸른 꿈을 안고 자신만만하게 뉴욕 공항을 떠난 내가 불과 7개월 만에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다시 출발지로 돌아올 것이라고는 그 당시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귀환은 초라하고, 쓸쓸했다. 부모님은 출국 때와 달리 사진을 찍지 않았고, 앞으로의 계획 따위를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파리에서의 7개월의 시간은 거의 모두 병원을 드나드는 것으로 채워졌다.
현지의 의사들은 갑작스레 찾아온 심한 빈혈과 피로감, 끈질기게 이어지는 감염 증상의 원인을 파악하느라 애를 썼지만 허사였다.
1주일간 입원까지 해가며 종합검사를 받았으나 결과는 불완전했다.
끝내 확실한 원인을 잡아내는데 실패한 의사들은 아무래도 ‘탈진증후군’ 같다며 한 달간의 휴식 처방을 내렸다. 한창 푸르러야 할 스물두 살에 벌써 녹초가 되어버렸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휴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답답한 노릇이었다.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내 몸 속에 꽁꽁 숨은 병의 정체를 직접 밝히기 위해 구글로 내 증상을 검색해 보았다.
‘돌팔이 박사’인 구글은 흔히 볼거리라 일컫는 유행성 이하선염에서 당뇨병, 심지어 고양이 발톱에 심하게 할퀴어졌을 때 나타나는 묘소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진단을 제시했다. 그 중에는 암도 끼여 있었다.
미국에 돌아온 후 처음 나를 진찰한 의사들도 처음엔 우울증이라며 항울제 복용을 권했다. 그러나 나는 항울제 복용을 거부한 채 보다 확실한 병인을 잡기 위해 검사를 계속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내 마음속 한켠에 자리 잡고 있던 두려운 예감이 현실로 확인됐다. 의사는 내가 백혈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는 그의 말은 내 머리 속에서 폭탄처럼 터졌다.
나를 담당하게 된 종양학 의료팀은 집중적인 항암치료와 골수이식 수술을 받아야 생명을 부지할 수 있다고 했다.
암에 관한 한 적절한 타이밍이란 없다. 80대에 암에 걸려도 두렵고 참담한 심정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20대의 나이에 생명을 위협하는 병에 걸릴 경우 보다 특별한 심리적, 사회적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20대에 찾아온 암은 ‘정상적인 것’에 대한 우리의 정의를 통째로 바수어버린다.
청춘과 건강은 동의어가 되어야 마땅하다. 푸릇푸릇한 스물세 살의 나이에 죽음의 그늘 아래로 들어간다는 것은 누가 뭐래도 정상이 아니다.
암 판정을 받고 나서 할 수만 있다는 자연의 순리를 어긴 내 몸을 계약위반으로 고소하고 싶었다.
암은 20대 초반의 어정쩡함을 확대해 보여준다. 분명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성인들의 세계에서 살아갈 완전한 준비가 갖추어진 상태도 아니다.
암 진단을 받고 난 후 부모님에게 몸을 의탁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병세는 악화됐고, 엄마·아빠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나 역시 속성으로 성장해야 했다. 동년배들이 적어도 앞으로 여러 해 동안 생각할 필요조차 없는 일들이 내게는 긴급하고도 일상적인 근심거리로 다가왔다.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보험을 유지해야 하는지, 회복된다면 아기를 가질 수 있는 것인지, 내게 남겨진 시간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야 했다.
암 병동에서도 20대 환자는 어울리지 않는 존재다. 소아과 암 병동으로 가기엔 너무 나이가 많지만 성인 종양병동에서도 여전히 어색하게 보이긴 마찬가지다.
난 성인 암 병동의 환자들 중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담당의도 그가 이제까지 치료한 급성 골수성 백혈병 환자들 가운데 내가 가장 어리다고 했다. 사실 이 병에 걸린 대다수의 환자들은 60대다.
2006년에 나온 연방 보건후생부 자료에 따르면 대부분 암 환자들에 대한 치료방법이 크게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15~39세 환자들의 생존율은 지난 수십 년간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의사들은 이 연령대의 환자들을 검사할 때 암의 가능성을 크게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래서 내 경우처럼 증상을 잘못 짚거나 아예 놓치기도 한다. 암일 가능성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기엔 너무 젊은 나이이기 때문이다.
스물 몇 살의 나이와 아무래도 적절한 조합이 아니다. 물론 나이 들어 암에 걸리는 것이 그나마 낫다는 뜻이 아니다. 거듭 말하지만 암에 걸리기 적합한 타이밍 따위란 없다. 나이에 상관없이 암은 늘 무례한 불청객이다.
그러나 골수암 진단을 받은 이후 9개월 동안 여덟 차례의 입원과 일곱 번의 항암치료를 거치면서 난 나이와 암에 대한 경험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암은 내 인생을 멈춰 세운 정지 버튼이었다. 친구들이 본격적으로 그들의 삶을 시작하는 시간에 내 인생은 예기치 못하게 정지됐다.
대부분 20대 초반인 내 친구들은 인생의 가장 싱그럽고, 역동적이며 흥미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거나, 배낭을 꾸려 세계 구석구석을 떠돌기도 한다. 파티장을 누비고, 사랑을 찾는다. 모두가 성인기 초반의 크고 작은 이정표가 될 일들이다.
내 동년배 친구들처럼 나 역시 앞으로 무엇이 될 것인지 확실히 정하지 못했다. 그들은 아직 정하지 않은 것이지만, 나는 결정하지 못한 것이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싸워야 하는 젊은 암 환자가 앞날을 설계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난 내게 예비된 미래를 알지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그저 그 미래에 내가 계속 존재하기 원한다는 사실 뿐이다.
<뉴욕타임스 특약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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