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양인 판사로 인정받기 위해 남들보다 몇 배 더 노력”
최연소 맨하탄 한인검사.최초 뉴욕주 한인판사 등 수식어
성가대 지휘자로 큰 보람, 26년째 합창단원으로 활동
Y-KAN. KACF등 잠재력 큰 한인2세들에 큰 기대
지난 1980년대 뉴욕한인 이민사회에서 사춘기 한국 청소년들이 겪는 문화충격과 갈등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그들의 내면적인 고통을 함께 나누며 안타까워하던 청년검사는 어느덧 50고개를 넘은 뉴욕주 법원의 중견판사로 자리잡고 있었다. 또한 머지않은 장래에 지방법원장이나 종신직이 보장되는 연방판사로서의 승진이 기대되는 유망주로 굳게 서있었다.
최연소 맨하탄 한인검사, 최초의 뉴욕주 한인판사, 2세들의 롤모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던 전경배(Danny K, Chun) 판사의 현직은 뉴욕주 지방법원 판사. 브루클린 형사법원에서 주로 중범죄를 다루는 판사로 정평이 나있다. 사형제가 없는 뉴욕주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선고되는 무거운 범죄를 배당받는 판사로서 법원측의 신뢰를 한몸에 받고 있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연세대 겸임교수로 5주간의 여름휴가를 후진들을 위해 투자하고 있다. 또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믿음으로 사는 교회(LFCC)’의 성가대 지휘자이자 브니엘 합창단의 일원으로 연말 메시아 공연 준비에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실은 인터뷰에 응하기를 꺼리다가 자랑할 것이 좀 있어서 나왔습니다.” 머뭇거리듯 그가 하고 싶은 자랑이라는게 출석하는 교회와 합창단이었다. 노진산 목사가 개척한지 2년된 교회와 자신이 지휘하는 성가대에 큰 보람을 느끼는 한편 메시야 공연으로 유명한 브니엘합창단에도 그가 사명감을 갖고 26년째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열한살때 부모 손에 이끌려 이민 왔던 그는 금년으로 미국 생활 39년을 맞았다. 비교적 일찍 자리잡은 1,5세의 맏형쯤 되는 위치지만 그에게도 한때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고등학교부터 대학교 초반, 갈등 속에 반항적인 태도를 보였던 자신을 향해 “부모님 속을 많이 썩혀드렸죠. 대학원서 낼 때도 타자 치기 귀찮아서 손으로 직직 긁어 써보내고. 자식들한테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도 큰 것 아닙니까. 그때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그때 마음잡았다면 지금 훨씬 나은 인물이 되어있을 거예요.”
그래도 공부는 잘 했다. 뉴욕 최고의 명문 스타이브슨트고와 존스 합킨스대를 졸업한 것을 보면 성적은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 무렵 심한 갈등을 겪던 청소년들에 비하면 요즘 환경은 많이 호전되었다고 부러워한다.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많이 편하고, 특히 뉴욕 같은 지역은 동양인들이 마이노리티가 아니잖아요. 저는 엘름허스트에서 자랐는데 동양사람을 보면 뛰어가서 반가워할 정도였죠. 그때에 비하면 훨씬 편하고 좋은 환경이 되었지만 옛날처럼 배고픈 헝그리 정신은 많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포댐대 로스쿨을 마치고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면서 그 힘들다는 검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변론과 구술능력을 특별히 필요로 하는 검사직을 맨하탄 지방검찰청에서 수행하면서 그는 남들보다 몇 배나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태생이 아닌터라 법정 변론하면서 네이티브 영어를 구사하는데도 애를 먹었고 동양인 검사가 능력이 뒤진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집에서 피나는 연습도 했다.
동양계 갱단사건을 많이 다루는 검사로서 매스컴에 이름이 오르내리던 시기, 그는 한인 커뮤니티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2세들이 주축이 된 YKAN, CKAV, 그리고 한인변호사협회 등에 능동적으로 참여했다. 패기있는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던져주고, 좌절을 겪는 2세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들려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이때를 가리켜 그는 ‘조금 앞서 가면서 뭘 보여주려고 노력했던 시절’로 회고했다.
신앙심이 깊은 부모님(전병천, 구난서)의 전통교육에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는 조국에도 애정을 쏟았다. 검사생활 12년을 마감하고 1999년 뉴욕시 형사법원 판사로 임명되고부터는 한국 법무부 초청으로 여러차례 한국을 방문, 세계법조인 심포지엄에서 모더레이터를 담당했고 대법원 행정처, 대검찰청 등에서 특강도 했다. 서울대, 고려대 로스쿨에서 특강을 했고 지금은 5년째 연세대 겸임교수다.
최근 향상되는듯한 한인들의 정치력에 대해서는 아직도 부정적이다. 이제 로칼 정치인이 나오기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하고 히스패닉이나, 흑인, 유대계, 중국계에 따라가려면 갈 길이 멀다는 시각이다. “미국 정치인들이 관심을 두는 것은 딱 두가지죠. 표, 아니면 돈인데 돈을 엄청나게 많이 기부하던지, 표를 많이 행사하던지, 간단한데 한인들은 개인적으로 우수하지만 몰표를 만드는 단체행동에는 취약해요”
대신 잠재력이 큰 2세들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다. 뉴욕일원 단체 가운데 KACF(한인커뮤니티재단)는 모금을 통해 꽤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고, KAFSC(뉴욕가정상담소), 민권센터 등의 활동에 후한 점수를 주었다.
법정에 서기 전 그가 늘 마음속으로 되새기는 문귀가 있다. 법대에 새겨진 ‘In God we trust’란 문귀에 초점을 맞춘다. 미국의 공식표어이기도 한 이 문귀를 그는 ‘오늘 저에게 배당된 모든 사건을 잘 처리할수 있도록 지혜를 내려주십시요’란 뜻으로 나름 해석하고 올바른 판결을 내리도록 최선을 다 한다.
뉴욕주 법원에는 현재 한인 판사가 셋이다. 자신 외에 정범진, 홍찬기 판사 등이 후배로서 열심히 뒤따르고 있다. 이들이 매일 재판에 임할 때 피고인, 증인, 방청객들은 모두 동양인이 법대에 서있는 모습을 보고 일단 놀라워한다. 아직도 동양인이 법대에 올라 서있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동양계도 누구 못지않게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주는 게 최선의 방법임을 그들은 알고있다.
뉴욕대 신문방송과 전공의 CNN방송 PD 출신 김윤정과 1994년에 결혼, 현재 스타이브슨트고교에 재학 중인 딸(혜련, 조세핀)과 아들(종수, 필립)을 두었고 매주말 테니스를 제법 잘 치는 아들과 함께 운동하는 게 최고의 낙이라고 할만큼 그는 가정적이다. 아직도 젊고 갈길이 먼 그로부터 언젠가 법원장, 또는 연방판사가 되었다는 소식에 접할 날을 기대해 본다. 조종무<뉴저지고문. 국사편찬위 해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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