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물건’은 자칭 괴짜교수라 칭하는 김정운 교수의 책이름이다.
괜시리 사람들은 책 이름을 보고 엉큼한 상상을 하면서 책을 들춰 보겠지만 이 책은 말 그대로 남자들이 가지고 있는, 소중히 여기는 자신의 물건들, 예를 들면 커피 그라인더, 만년필, 모자 같은 ‘물건’에 대한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작가가 남자라서 그런지 책은 제목 그대로 ‘남자들의 물건’에 대한 이야기만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여자들의 물건은 뭐가 있을까? 생각해 봤다. 샤넬가방? 어릴 때부터 모아둔 마론 인형? 여행을 갈 때마다 사는 미니향수? 그런 것들에게서 어떤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내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한테 나의 물건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미친듯이 모아 놓은 영화음악들과 아키아 책장을 가득매운 책들이 있다. 언제부터 그 두 가지에 집착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그 중 책의 경우는 어릴 때 사촌 언니 집에 있던 ABE전집이나 신동우 화백의 한국의 역사 만화책들이나 친구 집에 있던 세계 명작 전집을 보면서 시작된 것 같다. 물론, 절대로 전집을 안 사기로 한 친정 부모님의 책에 대한 원칙 덕분에 책 한권, 한권을 소중하게 열심히 읽은 것도 책에 대한 나의 애착과 집착을 키우는데 기여한 것 같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쥐덫에서 부터 윌리엄 아이리시의 환상의 여인까지 추리 소설에 빠질 때는 런던에서 장기 공연하는 쥐덫 공연을 보기 위해 런던을 열심히 지도로 공부했었고, ‘환상의 여인’속에 나오는 완전 범죄를 파헤치는 탐정이 되는 상상을 했다. 만화책인 수라왕과 공작왕을 보다가 신화에 빠져서, 신화들에 관한 책을 읽다보니 일본이라는 나라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그냥 만화가 아닌 철학과 신화적인 이야기가 들어 있는 작품이며, 그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일본이 전 세계의 신화에 관련된 정보를 철저히 수집한 무서운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어 놀랐었다. 독도문제가 생기기 수십년 전인 그 때부터 나는 이미 일본에 대해서 경계를 시작했다.
피천득님의 수필을 읽으면서 ‘가슴 잔잔한 수필을 언젠가는 써봐야지’라는 소망을 키우고 윤동주님의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기를…’를 읽으면 그 시의 말 그 대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야지’ 하는 삶의 좌표를 얻었다. 이렇게 책은 나에게 꿈을 주고, 지식을 일깨워 주고, 삶의 희망과 목표를 주며 그리고 수없이 많은 나의 이야기를 생산해 내는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물건’이다. 그래서 이제는 유행하는 코트나 바지를 못 사더라도 그해 베스트셀러를 못 사면 불안할 정도까지 되었다. 덕분에 나에게는 도서관이나 서점이 안식처고 휴식처이면서 삶의 희망 충전소가 되었다.
서점 주인에게 가을이라서 책이 많이 팔리는지를 물었다. 불행히도 가을이라서 책이 더 많이 팔리진 않는다고 했다. 만년필, 모자 같은 것이 ‘남자의 물건’이고 화장품, 액세사리, 옷 등이 여자의 ‘물건’이라면, 책은 사실 남자나 여자가 다 같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특별히 ‘나의 물건’이 없으신 분이 있다면 이 가을이 가기 전에 나의 ‘물건’으로 책을 택해 보시면 어떨까 권해 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