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미 (용커스 거주)
살다보면 착각이나 성급함으로 인해 참으로 예기치 못한 일들과 마주하게 된다. 아니 ‘일’이라기보다는 ‘사람’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당한 표현일 것 같은, 인간만이 갖는 따스한 온기를 느꼈던 ‘일’이 최근에 있었다.
그로서리 샤핑을 마치고 집에 와 정리하는데 분명 샤핑리스트에 적어갔던 야채 하나가 없다. 올 들어 처음 가는 캠핑을 이틀 앞둔 터라 , 나름 꼼꼼히 챙겨 적고 구입을 했는데… 영수증을 살펴 하나하나 대조해보니 지불은 했는데 없는 품목이 하나 있었다. 당장 마트로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니 전화를 받은 담당자가 친절히 응대를 한다. 계산대 마다 CCTV가 설치되어 있으니 언제든지 영수증을 가지고 오면 확인해 줄 수 있다고 말한다.
다음 날 마트에 가서 전날 전화를 받은 듯 한 커스터머 서비스 담당자에게 영수증을 보이니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잠시 기다리란다. 영수증에 찍힌 시간을 확인한 뒤 체크해야 한다고. 그런데, 제과점에 가서 커피를 한잔 마시고 오니 썩 반갑지 않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CCTV를 확인해 보니 캐시어가 그 야채를 분명히 내 장바구니에 넣었다는 것이다. 다른 두 가지 물품과 함께 먼저 마트용 플라스틱 백에 담은 후에 다시 내 장바구니에 넣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있다고 했다.
아니 어째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그럼 그 물건은 차에 싣고 집으로 오는 도중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난감한 얼굴의 나를 그 담당자는 마치 자신의 일 인양,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아 준다. 절대로 집에는 없다고 버티고 있는 나에게 그럴 수만 있다면 그 야채를 그냥이라도 주고 싶은 눈빛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생각 같아서는 그 CCTV를 직접 확인해보고 싶었다. 10여 달러나 되는 물건인데… 석연치 않은 마음으로 집에 돌아와 하릴없이 부엌 이곳저곳을 살피던 중 언뜻 캠핑 가서 풀 요량으로 장바구니 하나를 덱에 내다놓은 사실이 생각났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그걸 살펴보니, 어머나!
캠핑 가서 구워먹을 버섯과 함께 그 물건이 마트용 백 맨 밑에 얌전히 담겨있다. 아니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나? 잃어버렸던 물건을 찾은 기쁨보다 앞서 우선 마트의 그 담당자에게 곧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담당자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금세 알아차린다. 또 무슨 일로 전화를 걸었을까 걱정스러울 텐데도 그의 목소리에서 친절한 느낌이 전해진다. 나는 반갑고도 미안한 톤으로 얼른 목소리를 바꾸어, 미처 챙겨보지 못한 백에서 그 물건을 찾았노라고 번거롭게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그러자 그는 마치 자신의 일인 양 기뻐해준다.
그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일이었을 수도 있고 어쩌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참으로 고맙고 친절한 이런 분들이 주변에 있기에 삭막해졌다느니 인정이 메말랐다느니 하는 세상이 그래도 온기를 품은 채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록 내 덤벙거리는 성격이 이런 불필요한 상황을 만들긴 했어도 아주 오랜만에 마음 한 구석이 훈훈해지는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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