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맨체스터 대학 교수)
커네티컷은 살기 좋은 곳이다. 깊은 역사 속에서 우러나오는 문화의 깊이와 정결한 삶의 환경이 바로 커네티컷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요인이라고 나는 생각 한다. 고색창연한 예일 대학교의 고딕 건축물이 커네티컷의 한 모습이라면, 곳곳에 산재한 크고 작은 대학, 도서관, 미술관, 박물관들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적 영양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주말 하트포드에 있는 박물관 (Wadsworth Atheneum Museum of Art) 에 다녀왔다. 카라바지오 (Caravaggio)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몇 년 전 런던에서 열렸던 카라바지오 특별전을 제한된 시간 때문에 건너뛰었던 기억을 떠 올리며, 이번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시간을 내어 준비했다. 특별전을 보기 위해 미리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한 기초 지식을 쌓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속설이 나는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은 거의 같은 시대를 산 천재들이었다. 카라바지오가 태어났을 때, 그들은 벌써 세상을 떠난 후였다. 그는 소위 바로크 르네상스 시대를 산 화가였다. 이태리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이 이룩한 장엄한 예술적 성취는, 뒤에 오는 예술가들이 앞서 간 거장들의 업적을 넘어 설 수 있는 여지를 별로 남겨 놓지 않았다. 예술적 감수성과 기법과 이를 표현하는 예술적 언어가 소진되어, 그들의 것을 모방하고 답습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때에 카라바지오라는 천재가 등장했다.
그는 빛과 그림자의 드라마틱한 대칭과 사실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인물들의 움직임을 새로운 예술 언어로 화폭에 표현하여, 앞서 간 거장들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화집과 인터넷으로만 보던 그림을 직접 대하는 감동은 실로 표현하기가 어려웠다. 오매불망 (寤寐不忘)하던 사람이 마치 바로 눈앞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근원을 알 수 없는 빛이 화폭을 가르고 그 뒤로 밀려난 그림자가 충격적이었다. 인물들의 움직임과 감정이 날카로운 생명으로 살아나는 그의 그림들이, 왜 카라바지오가 짧은 삶을 살았음에도 후대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그에게 영향을 받은 라투르(Georges de La Tour)의 막달라 마리아(The Magdalene with the Smoking Flame)도 전시되어 있었다. 작은 테이블 위에 촛불이 타고 있었다. 한 손으로 턱을 고인 젊은 여인의 고뇌에 찬 명상이 유한한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무릎 위에 놓인 해골과 이를 쓰다듬는 다른 손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리스도의 수난과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일까? 카라바지오의 영향이 눈부시게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극적으로 대칭을 이루는 빛과 그림자, 그리고 굵은 동아줄을 허리에 두른 단순함이 이 여인을 세속으로 부터 벗어나게 하는 듯하였다. 그런 적막함이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해 늦은 오후 하트포드의 거리는 쾌적하고 조용하였다. 박물관 옆의 야외 조각들이 기우는 햇빛 속에 긴 그림자들을 던지고 있었다. 그림 속의 빛과 그림자는 우리 인생의 명암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 속의 즐거움과 고통, 희망과 좌절, 유한과 무한을 그려내는 예술적 언어가 바로 그림 속의 빛과 그림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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