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전쟁 종전 60주년 특별기획
▶ “살려달라” 어린 병사 목소리 아직도 생생
올해는 한국 전쟁이 휴전한지 60년이 되는 해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아픈 현실을 가슴에 안고 살고 있는 한민족에게 ‘전쟁’이라는 두 글자가 가진 비극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전쟁이 끝난 지 강산이 6번 넘게 변할 정도로 세월이 흘렀지만 6.25전쟁 참전용사들의 기억 속엔 그날의 동족상잔의 참상이 아직도 생생히 살아있다. 한국전쟁 종전 60주년을 맞으며 뉴욕 일원의 참전용사를 찾아 6.25전쟁의 진정한 의의를 되새겨보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1>낙동강 전투 참전 윤영제 회장
"낙동강변을 수색하던 중 죽어있는 한 농부에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시체를 쪼고 있더군요. 그 광경을 보며 저 농부는 어쩌다 저 지경이 됐나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고개를 돌렸더니 여기저기 시체가 널려 있는 겁니다. ‘아… 이 전쟁이 두 번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겠구나’하는 생각이 뼈저리게 들더군요.“
대한민국 6.25참전유공자 뉴욕지회의 윤영제 회장. 84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활력과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지닌 윤 회장도 한국전쟁 당시의 참상을 떠올리자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하며 금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함경남도 영흥이 고향인 윤 회장은 1946년 2월 38도선 이북 지역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자 그 이듬해인 1947년 3월 남쪽으로 내려왔다. 공산당이 싫어서 18세의 나이에 고향을 떠난 윤 회장은 당시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지배하던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북한계몽대’로 활동했다. 그리고 1950년 6월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한국 전쟁이 발발했다.
"처음엔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만 들었지 전혀 실감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육군정보국장교가 우리 북한계몽대원들을 찾아 나선 겁니다. 애국심이 투철했던 우리대원들을 수색요원들로 쓰기 위한 것이었죠."
그날로 윤 회장을 비롯 북한계몽대원 20여명은 ‘문관’으로 불리는 민간인 신분의 정보대 소속 수색요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사실 명칭만 수색요원이었지 제대로 된 교관도 없었고, 군사훈련 한번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윤 회장 일행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고 밀짚모자에 지게를 짊어지고 적진을 염탐하는 첩보임무 등을 수행했다. 그리고 1950년 8월 남으로 남으로 무섭게 내려오던 북한과 최대 격전을 벌이던 낙동강 전투에 윤 회장이 속해 있던 정보국 문관 요원들이 투입됐다. "8월30일이었죠. 바로 국군의 마지노선이었던 낙동강 전선을 넘어서려는 북한이 총공세를 취하던 날이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문관 5명과 미군 5명이 북한 주둔지 폭격을 위해 적군 위치를 파악하는 임무였습니다. 결국 돌아오는 길에 적군의 총알 세례를 받으며 동료 여러 명을 잃었습니다."
윤 회장은 그날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미군 제2사단이 주둔하고 있던 현풍(지금의 달서군) 유가면 유가초등학교 주위는 코스모스로 뒤덮인 아름다운 곳이었다. 하지만 북한군과 연합군의 전투가 시작되자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연합군의 포격이 끝나고 안개가 걷히자 여기저기 숨어있던 북한군들이 한두 명씩 두리번거리며 나오더군요. 참호 속에서 대기 중이던 우리가 총을 겨누자 살려달라던 어린 적군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윤 회장이 그날 생포한 북한군 병사 대부분은 의용군으로 끌려나온 서울 출신의 어린 학생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빡빡머리 학생들이 총알받이로 내몰리고 어제의 이웃들이 이유도 모른 채 총부리를 겨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미어지는 듯했다.1952년 정식으로 군복을 입은 윤 회장은 전쟁이 끝나고 1957년 중사로 제대했다. 전쟁이 끝난 지 어언 60년이 흘렀지만 윤 회장은 아직도 눈을 감으면 전쟁터에서 함께 돌아오지 못한 ‘문관 수색대’ 동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부터 17년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전투가 벌어졌던 유가초등학교를 다시 방문한 적이 있었지요. 당시 불타 없어졌던 학교건물이 새 건물로 다시 지어진 것만 빼고는 모든 게 그대로였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머릿속에 향긋한 코스모스 내음 보다는 화약냄새와 피비릿내 만 남아 있더군요. 다시는 그 비극이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천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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