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선
새벽 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열흘을 넘게 오락가락하던 비는 오늘도 하루 종일 이어지려나 보다. 짙어진 숲으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서둘러 깨고 싶지 않은 평화로움이다.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 되었다. 지나간 세월을 두고 수없이 많은 수식어를 떠올려 보지만 오늘 이 자리에 서서 어제를 바라보는 내 마음을 .어떤 단어로 대신할 수 있을까….
얼마 전 우연히 무릎나무 이야기를 들으며 내 아버지를 떠올렸었다. 로키 산맥 해발 3000미터 높이에는 수목 한계선인 지대가 있다고 한다. 이곳의 나무들은 매서운 바람으로 인해 곱게 자라지 못하고 모두가 하나같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인데, 세계적으로 가장 공명이 잘되는 명품 바이얼린은 바로 이 무릎을 꿇고 있는 나무로 만든다고 했다.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가 되기까지 눈보라를 맞으며 인내한 나무 이야기를 들으며 내 아버지를 떠올린 것은 팔순도 넘기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늘 일하는 모습이셨다. 그 세대의 아버지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고난의 현대사를 몸소 겪으며 참으로 어렵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장년기를 지나며 가족을 부양해야 했으니, 열심히 일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셨다.
그러나 철없던 나는 가족들과 변변한 휴가 한번 못가고 날마다 일만 하시는 아버지가 참 못마땅했다. 성실과 부지런함으로 나름의 부와 명예를 이루셨지만, 아버지와 공유하는 추억이 없어서인지 그리움 보다는 연민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었다. 그래서 무의식중에 어린 마음에 적어도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이민생활로 더 바쁜 아버지였다. 늘 새벽부터 시작하는 일과로 가족과는 저녁 한 끼 함께하는 게 고작 이어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민은 무엇인 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간간히 아내에게 듣는 소식에 의지하며 미안한 마음으로 용돈 한 번씩 쥐어 주는 것으로 아버지 역할을 대신 했다.
가끔씩 함께 가는 가족여행에서 한 뼘씩 자라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게 그나마 감사한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라 주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생활하는 그들이 아버지날이라고 모든 일을 뒤로하고 그 멀리에서 와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아버지 앞에서는 자라지 않는 아이였다. 지금도 모호한 앞날의 큰 결정을 할 때가 되면 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못마땅해 하던 아버지의 습관까지 고스란히 닮아가고 있는 아버지 나이 때의 나를 만나며 아버지는 자식에게 등대 같은 존재임을 깨닫는다.내가 그렇듯이 내 아이들이 내 등을 바라보며 항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년의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버지가 당신 몫으로 받아들인 거친 세월, 인내하며 완주한 그분의 굽은 뒷모습은 키 작은 무릎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듯 하다. 내 아들이 기억하는 나는 어떤 모습일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서 만감이 교차하는 아버지날…. 새삼스레 감회에 젖는다.
등대…./ 어쩌면 우리 인생의 내비게이션은 한 사람의 등짝인지도 모릅니다./ 좋은 친구, 아름다운 사람, 닮고 싶은 어떤 사람. 그리고 사랑하는 누군가의 등… /그걸 바라보고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향입니다. (이병률님 글 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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