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에 인격 있듯이 그림엔 화격이...격 갖추려 노력”
일곱살 때부터 명필가 조부로부터 서예 배워...30대 중반에 그림 시작
호연회 30여명 제자들에 그림지도, 제자들 국전 당선될때 보람
미국에 살면서 한국 전통의 맥을 잇는 일은 쉽지 않다. 중년여성들이 우리 그림에 빠져들면서 모든 걱정근심에서 놓여났다는 점에서 이 ‘행복 바이러스’를 전파한 김주상 동양화가는 충분히 존경받을 만하다. 호연 김주상 화백의 화력 40여년과 동양화 지도 30여년의 길을 들어본다.
▲‘마음 가는대로’
호연 김주상의 그림에는 칸나, 석류, 연꽃, 해바라기, 감, 포도가 손만 내밀면 잡힐 듯하다. 84년 미국에 와 뉴욕 땅에 국화의 뿌리를 내려 30여년 세월이 지난 후 활짝 만개시킨 김주상, 그는 주위사람들에게 ‘뉴욕의 문익점’이란 말을 듣는다. 현대회화의 중심지인 뉴욕에 붓과 먹, 화선지를 들고 와 당당하게 동양화의 세계를 개척한 공이다. 지난 5월 4일부터 6월4일까지 롱아일랜드 셸터락 갤러리에서는 제8회 호연회전이 열렸다.
“15년, 20년, 40년동안 그린 작가들이 전시회에 참여했다. 28~30명 회원 중에 15명 정도가 한달에 한번 모여 그동안 그린 작품을 놓고 공부한다. 각자 봉사센터, 문화센터에서 개인지도 하며 전문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자연을 소재로 한 45점의 작품을 그린 제자들은 서양학과 출신도 있지만 대부분 이민와서 고생 끝에 자리잡은 다음 내 인생 찾아 그림을 배운 주부도 많다. 호연회 이름은 김주상의 호인 호연(浩然, 마음이 넓고 뜻이 크다)을 따서 지었고 1987년부터 배움이 시작되어 1994년 모임으로 발전, 25년 세월이 지났다.
“가장 감사한 것이 제자들이 국전에 당선되고 한국의 공모전, 문인화 대전에 입상하는 일이다. 국전에 서너 번이나 당선된 제자에게는 내가 절 할게 하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고마웠다.”그동안 호연회는 개인전, 해외전으로 기량을 발휘해왔고 한인사회 이벤트, 시연과 그림 그려주기, 퀸즈 이스트 웨스트 공립학교 한국어반 동양화 그리기 지도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24일에는 제자들과 지인 100여명이 모여 호연 김주상 산수연(傘壽宴)을 열었다. 제자들은 서프라이즈로 ‘당신없이 못살아’를 불렀다. 평소 제자와 지인들과 따스한 정을 주고받고 있는 스승은 이 날도 말없이 속정을 내보이며 고개 숙여 이 노래를 들었다.
▲격이 있는 그림을 그리라
1933년 서울에서 출생한 김주상은 일곱 살 어린시절부터 어머님이 준비해주신 붓을 가지고 안방으로 들어가 조부로부터 서예를 배웠다. 조부는 유명한 서예가이자 전서로는 우리나라 최고 명필인 성제(惺齊) 김태석(金台錫)씨. 조부는 글씨에 임하는 마음가짐, 자세, 벼루에 물 붓고 가는 법, 붓 쥐는 법 순으로 가르쳐주었다.
“초등학교 6학년때 해방이 되었다. 1946년 경기여고에 들어가서 한글을 배웠다. 집에 책이 많아 늘 책을 읽었고 어려서부터 붓, 먹은 가까이 있었다. 늘 그림에 대한 미련을 갖고 있다가 결혼 후에 시부모님의 배려와 도움으로 그림을 개인지도 받았다.” 1955년 한국 외국어대 불문과를 다니다가 함께 유학하자는 계획과 희망으로 서둘러 이규섭씨와 결혼, 시어른을 모시고 살면서 이상영, 이진배, 이상금 1남2녀를 낳아 키웠다.
“인생의 만남이 참으로 오묘한 것이 남편은 영문학 전공의 문학에 심취된 사람인데 시부모님이 고서화 골동에 매료되어 많은 소장품을 갖고 있으면서 늘 꺼내어 감상하고 연구하고 즐기는 분이셨다” 서예의 두 번째 스승은 성균관 유림회 관장인 취암 선생으로 이분으로부터 호를 받았다. 김주상의 필치가 힘있고 시원하다며 호연지기(浩然之氣)에서 따온 호연(浩然)이다.
세 번째 스승은 조부의 제자인 심당선생으로 이 스승은 호가 여자로서 너무 거하다고 하정(荷汀)이란 호를 지어주었는데 중국에서 연을 하화(荷花)라고 하니 ‘연꽃정자’라는 뜻이다. 10년간 서예를 한 다음 30대 중반에 시작한 그림은 이대 미대 학장인 현초 이유태, 소산 김, 유산 민경갑 선생에게 사군자부터 시작하여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특히 황량한 산하를 갈필의 미점으로 묘사한 청전의 산수화에는 흠뻑 빠졌다.
선비다운 간결한 느낌, 문인화다운 절제미 등, 그 계열의 스승을 모시고 좋은 영향을 받아 그분들의 풍도 따르게 되었다. 스승은 “사람에게 인격이 잇듯이 그림에도 화격이 있다. 격이 있는 그림을 그려라”고 강조했고 삶의 지침이 되었다.
“나름대로 어떤 격을 지키려고 애썼고 지도하면서도 격을 어떻게 전달할 까 고심하여 애써왔다. 늦게 시작한 그림공부에서도 연은 유독 마음을 끌었다. 사군자 다음 팔군자에서 그려본 묵 연잎으로 가슴이 후련하도록 필력을 다할 수 있어 무척 즐겨 그렸다.”
▲50넘어 미국으로
김주상은 50이 넘은 나이에 선박회사를 경영하다가 은퇴한 남편과 함께 1984년 미국으로 이민왔다. 큰딸은 결혼했고 군대 갔다온 아들, 대학 다니는 막내딸을 데리고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프린스턴 정션 지역에서 큰딸 부부가 유학 중이라서 미국생활의 첫발은 프린스턴으로 디디게 되었다.
1년후 뉴욕으로 이사 오면서 당시 뉴욕한국일보에서 어린이판을 맡아 일하던 허병렬 선생을 만나게 되었다. “허병렬 선생이 평생의 스승이다. 글을 써보라, 그림을 그리라고 격려하고 습작도 도와주셨다.”김주상은 뉴욕한국일보 현상문예 수필부문 입선, 한국 ‘한국수필’로 등단했고 1994년에는 첫 수필집 ‘풀이면 마땅히 난초가 되고’, 2007년 수필집 ‘나무일 바에야’ 출간했다. 한편으로 1986년부터 1992년까지 한성한국학교, 1987년~89년 코리안 시니어 센터에서 동양화를 가르쳤다.
이민 전반 10년은 낮에 일하고 밤에 틈틈이 그림을 지도하면서 무리 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면서 뇌혈관이 파열되어 3일간의 혼수 끝에 왼쪽이 마비되었다. 퇴원 후 1년간 긴 휴양을 했다. ‘젊어 그렇게 원하던 유학을 못했다면 나이 들어 찾아온 미국에서 남은 소망이라도 이뤄줘야지 이 병신이 무엇인가’ 울고 또 울며 매일을 보내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지금껏 어찌 살았나, 나 자신, 가족만 생각하지 않았나, 이민 와 힘들게 살면서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서로 돕고 위로하는 분들, 소학교만 나와도 사람됨됨이 훌륭한 분들을 만나면서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다. 차차 몸이 회복되면서 이런 눈을 열어 주고 새생명 주심에 감사했다.
1993년 병으로 남편을 보내고 1993년은 이민 후반의 홀로서기 시작이었다. 아들이 이민생활에 자리를 잡고 분가해 나가면서 혼자 살게된 김주상은 한인여성들에게 그림지도를 본격적으로 하면서 본인의 그림도 열심히 그렸다.
1984년 한국출판문화회관에서 개인전을 했던 김주상은 뉴욕 캠브리지갤러리, 플러싱 메인라이브러리 등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다수 참여했고 퀸즈 페스티벌 등에서 타인종에게 동양화 시범 및 지도했다. “그림에 몰입하다보면 무아지경에 이른다. 세월이 그냥 간다, 그림은 나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행복한 시간이다. 하루종일 그리기도 한다. ”대작을 그릴 때는 먹을 것을 하나 가득 옆에 놓아두고 아침부터 밤까지 그리기도 했다.
“그동안 살면서 4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50대 중반에 오른쪽 뇌혈관이 터져 왼쪽이 모두 마비 되었는 가 하면 교통사고로 길바닥에 던져졌고 일어나다가 벽에 머리가 부딪쳐 목뼈가 부러지는 등 이 모든 중상을 이겨내고 몸이 다 나으니 앞으로 더 잘 가르치고 싶다.” 김주상은 현재 한미현대예술협회 회원, 미동부한국문인협회와 한국수필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반드시 나쁘기만 한 것도 아니다. 늙어가면서 산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그는 책임감을 벗어난 홀가분함, 인간의 도리를 다해온 뿌듯함, 홀로 삶의 즐거움과 편안함 등 좋은 점도 수없이 있다고 한다.김주상이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마음 가는대로’ 는 남은 인생은 여유로움과 노닐고 싶은 마음에서다.
‘묵향에 묻혀 열심히 그렸고 후회 없는 삶이 그저 감사하다‘는 그는 한국인의 얼을 보여주고 맥을 이어가는 일을 오늘도 계속 하고 있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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