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호 주유엔 북한 대사가 지난 달 21일 맨하탄 유엔본부에서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가졌다.
북한이 유엔 사무국 의전실 공보처에 청원해서 세계 192개 회원국 언론을 상대로 입장을 공식 발표한 것은 꼬박 3년 만이다.
북한은 2010년 천암함 폭침에 대해 국제사회가 일제히 규탄하고 나서자 억울하다며 해명 차원에서 나선 적이 있다.
한국은 그 해 6월4일 천안함 사건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했고 북한은 이에 맞서 같은 달 15일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신 대사는 당시 “천안함 조사결과는 남한 정부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A부터 Z까지 날조한 것”이라며 “남한이 지방 선거를 위해 이 사건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에 대해서도 “(미군의) 오키나와 주둔을 연장시키고 진보적인 하토야마 정권의 퇴진을 유도해 한 개의 돌로 두 마리의 새를 잡는 효과를 얻었다”며 “천안함 조사결과를 통해 가장 많은 이익을 봤다”고 화살을 돌렸다.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던 70여명의 기자들이 국제사회의 조사를 통해 명백하게 사실로 드러난 사건을 놓고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들과는 무관하다는 발표를 하는 신 대사를 어이 없이 바라본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번에는 신 대사가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에 주둔하는 ‘유엔군사령부’를 문제 삼았다.
그는 ‘남조선주둔 ‘유엔군사령부‘를 해체하는 것은 조선반도와 아시아태평양지역의 긴장완화와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구’라는 제목의 장문 성명을 약 30분에 걸쳐 낭독했다.
그가 늘어놓은 ‘유엔군사령부의 조작경위와 그 본질’, ‘유엔군 사령부 해체의 필요성’,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기 위한 우리 공화국정부의 립장’ 등은 북한이 그동안 꾸준히 주장해온 내용들이다.
실제로 유엔은 수차례에 걸쳐 공식·비공식 차원에서 ‘유엔군사령부’가 유엔군이 아니라는 입장을 취한 바 있어 나름대로 설득력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이슈다.
그리고 이날 회견장에 참석한 100여명 기자들에게도 유엔이 무려 60여년 전 북한의 남침에 대응하기 위해 안보리 결의로 탄생시킨 ‘유엔군사령부’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는 현실에 전쟁의 비극과 한반도의 심각한 상태를 재차 되새기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회견장에는 북한의 ‘억울함’ 호소에 동정심이 이는 느낌마저 도는 듯 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성명발표가 끝난 뒤 곧바로 이어진 질의응답 순서에서 급변했다.
신 대사가 북한의 인권문제를 질문하는 한 기자에게 “북한에는 그 어떠한 인권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 것.
기자들은 당연히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았고 그 순간 신 대사가 앞서 발표한 모든 내용에 대한 신빙성도 기자들이 내뱉은 피식하는 조소에 담겨 날려 버려지는 듯 했다.
문제는 북한이 이날 회견을 성공적으로 자평하고 있다는 점이다.
내용이야 어떻든 많은 기자들이 참석해 자신들의 입장을 널리 알렸다는 착각에서다. 국제사회가 북한을 이해하지 못하고 북한이 국제사회를 모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신용일 기획취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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