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교수)
벌써 오래 전이지만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던 이태영 여사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남녀평등과 한국 여성들의 권익을 신장해야 한다는 것이 강연의 주된 내용이었고, 이것들은 가정에서부터 실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질문 시간이 되자 앞에 앉아있던 중년 신사 한 분이 질문을 했다. “혹시 변호사님께서는 부군(남편)의 밥상을 직접 차려주시나요?” 대답은 물론 손수 차려드린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생선을 상에 올리실 때, 가운데 토막을 부군께 드리시나요, 아니면…” 미소를 머금은 채 질문자를 한참 쳐다보던 이태영 여사는 되물었다.
“혹시 어두일미 (漁頭一味)라는 말을 아시나요? 생선은 머리가 가장 맛이 좋다는 뜻이겠지요? 부군의 상에는 생선 가운데 토막을 올리고 저는 머리를 먹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바른 예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절을 지키면서 또 가장 맛있는 부분을 먹을 수 있으니 큰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예절을 지키지 않는 평등은 혼란을 초래할 뿐 입니다.”
한국의 여성 지도자로서는 첫 세대였던 이태영 여사의 모습은 당당하면서 겸손하고, 권리를 주장하면서도 예절을 지키는 그런 분이었다. 세상이 변해서 한국도 첫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고, 남녀평등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제도적으로는 크게 개선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외적인 변화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에서 남녀의 평등이나 기회균등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여성에 대한 존중이나 적절한 예절을 지키는 것은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과 중국을 방문한 후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가 크게 올라갔다고 한다.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지도자가 가지는 당당함과 또 여성으로 보여준 겸손함이 미국과 중국의 지도층은 물론 한국 국민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준 결과라고 행각한다. 상대적으로 야당에 대한 지지도는 13% 정도라고 하니 한심한 일이다. 이 또한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적으로 처리해야 할 산처럼 쌓인 문제는 뒷전으로 미루고, 입에 담지 못 할 욕설로 쓸데없는 정쟁이나 일삼고 있으니 지지도가 낮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대통령에 대한 인신공격이 상식을 넘고 있다. 여성 지도자에 대한 남성 우월주의자들의 신경질적인 반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정당한 정책대립으로 자신들을 선출한 국민들에게 보답하고 국가에 봉사하기는커녕,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흙탕물처럼 흐리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며 이 사람들이 국가를 무너뜨리는 장본인들이 아닌가 생각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서로 예절을 지키지 않는 평등은 혼란을 초래 할 뿐”이라던 이태영 여사가 다시 생각난다. 정치적 견해와 입장이 서로 다르더라도 국가나 사회의 지도자들에게 지켜야 할 예절을 지키는 것은 성숙한 인격을 가진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이다. 생선 가운데 토막을 남편에게 드리고, 자신은 어두일미를 즐기던 여성 지도자는 지켜야 할 예절과 실질적인 이득이 무엇인지 아는 분이었다.
예절은 사람을 모으는 힘이 있다. 정치가 사람이 모인 곳에서 이루어지는 공익(公益) 창출과 배분 행위라면, 서로 예절을 지켜 모인 곳에서 이익을 찾아내는 지혜가 자신과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 이다. 여야가 서로 예절을 지키고, 사람을 모으는 너그러움을 편안한 옷처럼 입는 그런 지도자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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