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미(용커스 거주)
얼마 전, 뉴욕과 뉴저지에 살고 있는 고교동기동창들의 작은 모임이 있었다. 나를 포함해 여자동기 두 명과 남자동기 두 명 그리고 그들의 아내 두 사람. 대기업의 주재원으로 나와 있던 남자동창 하나가 서울 본사발령이 난 때문이다.
그동안 세 번의 송년모임과 몇 번의 골프모임, 개인적인 만남들로 정이 흠뻑 들었었는데 막상 떠난다고 하니 모두의 얼굴에 그리움이 미리 여울진다. 대기업의 임원으로 일하면서도 바쁜 시간을 쪼개어 친구들을 즐겁게 해 주던 동창 녀석. 언제 만나도 ㅅㅁ야! ㅇㄱ아! 하며 허물없이 지내던 친구들…… 나이가 오십이 넘어도 성별에 대한 부담 없이 눈을 맞추며 웃고 서로의 잔에 술을 부어 줄 수 있는 친구로 지낼 수 있는 관계라는 것이 동창만 할까 싶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고등학교를 졸업한지도 30년이 훌쩍 넘었다. 생각하면 다소 멋쩍기도 한 남녀 공학 동기동창생들. 유난이도 추웠던 초봄부터 시작된, 채 녹지 못한 지난겨울 눈사람마냥 어설펐던 고교생활. 남녀공학에 배정된 사실을 안 그 날부터 설익은 내 가슴은 왜그리 콩닥거렸던지…… 아직은 여학교와 남학교로 구분되던 추상같던 그 시절. 한 건물 안에서 남학생들과 요리조리 부딪치며 수업 다니고 동아리 활동을 함께 한다는 사실에 여학교 다니던 중학 동창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었다.
개나리가 노릇노릇 교정을 덮고 대학캠퍼스에 딸린 박물관연못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연잎을 비집고 고개를 들 무렵, 내 사춘기의 감성도 함께 영글어갔었다. 선배오빠언니들의 보살핌은 또 왜그리 자상하던지. 그러나 웬걸! 남학생 규율부의 지각지도 중 얼차려나 기합 등을 목격했을 때는 여린 마음에 울고 불며 항의를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사뭇 마음에 둔 남학생이라도 있으면 운동장에서 혹은 복도 끝에서 마주치기를 바라며 괜스레 눈길과 발길이 바빠지곤 했었지.
그렇게 좌충우돌 남녀 공학생활이 1년을 넘길 즈음 , 아! 솜털이 보송보송한 신입생들이 입학을 했는데 남자후배들이 얼마나 귀엽던지…… 누나 누나하며 따라 다니는 모습들이 마치 어미닭을 따르는 병아리처럼 느껴졌었다. 그 귀엽던 후배들도 이제는 50대 중반을 바라보는 머리칼 희끗희끗한 중년이 되어있겠지.
오랜 세월이 지난 후 4년 전, 고교 졸업30주년이란 큰 행사로 오랜만에 서울에서 다시 그 동창들을 만났었다. 30년이란 시간이 각자에게 남겨준 훈장 같은 새치 머리칼과 잔주름들을 달고 반갑게 서로를 마주했었다.
그새 벌써 며느리와 사위를 맞아 손자를 품에 안은 친구도 있고, 이른 나이에 찾아온 명예퇴직으로 멀쩡한 백수 신세로 전락한 친구도 있고, 험난한 경제 전쟁의 틈바구니에서도 제2의 인생을 설계하며 승승장구하는 친구도 있고. 세월의 덧없음에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이제는 서로의 거울이 되어 친구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니 오히려 친구들에게 비춰질 나의 매무새가 추스려지는 느낌을 받기도 한 묘한 시간들이었다.
지금은 2013년, 뉴욕. 이제 그간 살갑게 지내던 동창 녀석을 서울로 떠나보내는 시간. 모두의 얼굴에 그렁그렁 걸려있는 그리움과 말없음표… 이별주가 씁쓸하다. 본인이 근무하는 회사에선 유능하고 든든한 임원이겠으나 친구들과 만나 술 한 순배 돌면 풍류가 넘치는 , 유난히 동안인 친구의 앞길이 그저 언짢은 일없이 건강하고 편안하기만을 바래본다. 잘 가거라 ! 친구야. 언젠가 또 만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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