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갑헌 (맨체스터 대학 교수)
‘여성상위 시대’라는 영화가 있었다. 여성의 사회적 위상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던 시대를 풍자로 비유한 영화였다. 오랜 인습과 대결하여 승리하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신상옥 감독이 영화로 그려낸 것 이었다. 세월이 변해서 한국도 여성 대통령을 선출 했다. 여성 대통령의 방문을 맞은 미국과 중국의 반응도 전 보다 훨씬 친근하고 우호적이었던 것을 볼 수 있었다.
여성이 지도자가 되고 정치와 사회의 결정권을 갖는다면 보다 평화로운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 옛날 그리스에 있었다. 여성이 가진 성적관능미와 모성애는, 남자들의 투쟁과 모험 정신 때문에 일어나는 전쟁이나 파괴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원전 5세기 중반에서부터 4세기 초반에 활동한 그리스의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 (Aristophanes) 는 리시스트라타 (Lysistrata)라는 희극을 썼다.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편을 갈라 싸우던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이 배경이다. 이 전쟁은 무려 27년이나 계속되어 찬란하던 고대 그리스의 문명을 무너뜨린 요인이었다. 이 소모적인 전쟁을 지겨워하던 여인들이 전쟁을 끝내는 수단으로 생각한 것이 섹스 스트라이크 (Sex Strike) 였다.
리시스트라타라는 여인이 주도하고 조직한 반전 운동이었던 것 이다. 전 그리스의 모든 여인들이 참여하는 이 섹스 스트라이크가 희극 속의 풍자이기는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는 단호하게 전쟁을 끝내는 한 여성 지도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비극은 이 희극이 가져다주는 평화를 끝내 성취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여성 지도자를 세우면 과연 보다 평화로운 세상이 될 수 있을까?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10명 중에 4명이 여성이라니 ‘여성상위 시대’가 임박한 느낌이다. 커네티컷은 미국에서 여성 주지사를 선출한 첫 주였다.
뉴햄프셔 주는 주지사가 여성이다. 두 명의 연방 상원의원도 여성이고 주의회의 의장도 여성이 맡고 있다. 섬세하고 자상한 여성 지도자들이 주 정부를 잘 이끌어 나가는 것을 보면서, 여성 대통령이 선출되어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는 행복한 미국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섬세한 여성적 지도력이 인정받는 세상이 아닌 듯하다. 골다 메이어 전 이스라엘 수상,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수상이나 앙겔라 메켈 현 독일 수상이 여성 지도자이기는 하지만 그 정책이나 통치 스타일이 섬세한 여성이라기보다는 남자보다 더 남자 같은 여성이었고, 남자처럼 과단성 있는 결정력과 집행력을 보이지 않는 한 지도자로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성별에 관계없이 능력이 있으면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남녀평등은 어느 정도 이루어 졌으나, 진정한 의미에서 여성만이 갖는 지도력이 무엇인지 또 지도자가 되려는 여성들이 어떻게 남성 지도자와 확연하게 다른 지도력을 보여줄 수 있는 지는 확실치 않다. 19세기 남녀평등을 주장하던 밀 (John. S. Mill) 이나 월스톤크래프트 (Mary Wollstonecraft) 가 환생한다면, 이슬람 세계를 포함한 대부분의 세계가 아직도 ‘여성하위 시대’에 머물고 있는 현실을 보고 무엇이라 말 할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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