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배운 작문 기술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며칠 밤을 지새며 정성껏 에세이를 써내도 C학점이 고작이다. 대학에서 요구하는 에세이가 고등학교 것과 어떻게 다른지 도대체 모르겠다.”
세미나 식으로 진행되는 수업에서 쏟아지는 에세이 과제물로 난항을 겪는 올해 대학 초년생의 고백이다.
10페이지짜리 에세이 과제를 2페이지는 글로 쓰고 나머지 8페이지는 그림과 사진을 채워 제출한 대학 초년생도 있었다. 이유를 묻는 교수 질문에 “에세이를 3장 이상 써본 경험이 없어 무엇으로 채울까 고민 끝에 그렇게 했다”고 학생은 대답했다.
에세이를 쓰는데 있어서 고등학교와 대학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무엇일까. 고등학교에서는 읽은 내용을 요약하고 그것에 대한 학생의 의견을 제시하면 된다. 하지만 대학이란 곳은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고등학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학은 지식을 창의적으로 생산하는 곳이다. 교수의 강의를 듣고, 과제물로 내준 책을 읽고, 그들의 이론이나 주장에 수동적으로 동의한다면 새로운 지식이 생산될까. 대학 에세이는 수용ㆍ요약ㆍ동의가 아니라 능동적인 비평ㆍ비판을 통해 반영되는 학생의 사고 기술(reasoning skill) 여부를 묻는다. 즉 동의하지 않겠다는 것을 동의(agree to disagree)하고, 듣고 읽은 내용이나 이론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고 조목조목 따지는 추론 기술을 보여야 제대로 된 에세이다.
그런데 “대학 수준에 걸맞은 에세이를 쓰는 학생이 드물다”라며 대학교수 10명중 8명이 불평하고, 공립대학에서는 연간 30억 달러를 들여가며 글쓰기가 안되는 대학생들에게 보충수업을 제공하고 있다. 교수는 짜증으로, 주민은 세금 낭비로, 학생은 시간낭비로 이만저만한 손실이 아니다. 누구의 책임일까. 물론 노력부족인 학생이 문제지만 학교도 면피할 수 없다. 초등학생이 학교에서 글쓰기를 배우는 시간은 일주일에 평균 3시간, 그것은 집에서 TV시청하는 시간의 15%도 안된다. 또한 고등학교에서는 역사와 사회과목의 75%가 에세이 과제가 없다.
대학에서조차 글쓰기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다. 글쓰기를 집중 지도해야 하는 영문학부가 이데올로기 전쟁터로 변질된 것이 주된 이유다. 1966년 다트머스 대학에서 열린 작문지도 교수 국제회의는 글쓰기를 문법ㆍ논리ㆍ형식으로부터 해방시켰다. “학생이 엉터리로 에세이를 쓰더라도 교정하지 말고 그대로 두어라. 그것도 학생의 자유다”라는 자유방임의 목소리가 주도권을 쥐었다. 학생의 자부심을 건드리지 않고, 그저 “잘한다”는 격려 일변도로 몰고 간 결과는 학생들로 하여금 “나는 글쓰기를 잘한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었다.
70년대에 들어서는 데리다, 푸코, 폴드만 같은 해체주의 사상가들이 주창한 ‘주체의 소멸’을 받아들여 “작가는 죽었다”는 이념으로 글쓰는 사람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고 주지시켰다. 80년대는 다문화주의 영향으로 인종차별ㆍ성차별ㆍ계급차별 등을 강조하여 “언어가 어떻게 사람을 차별하는가”라는 토론에 몰두하는 바람에 글쓰기 교육은 자연스럽게 뒷전으로 밀렸다.
대학에서 글쓰기 지도를 팽개치고 이데올로기 싸움으로 학생을 기만하는 동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디지털이 만든 바보세대’가 찾아왔다. 즉 유튜브가 주도하는 동영상과 이미지에 학생들은 빠졌고, 그들은 더 이상 말과 글을 의사소통의 주요 매체로 여기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말과 글로써 평가하는 대학에서 유튜브 세대가 글쓰기에 부담을 느끼고, 심지어 자신이 쓴 에세이를 낙제학점으로 처리한 교수를 소송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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